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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책임을 질 것이라는 궤변


어른은 미성년자와 거동하기도 힘든 노인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경찰은 범죄로부터 시민을 지켜야하며 범죄자를 추적하여 붙잡아 재판에 넘긴다.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따라 보호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못했을 때 그에 마땅한 책임을 당사자가 물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때론 의무가 아니었음에도 모두가 책임을 져야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전세계의 모든 핵무기가 인류의 보금자리를 향해 날아가는 것은 어떤가? 아무런 권력조차 없으며 핵무기를 사용해 인류 문명을 파괴하고자 의견을 내비치지도 않은 소시민 조차 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죽음으로써. 또는 우리 행성계에서 수십 광년 떨어진 어느 중성자 별이 충돌해서 일어난 감마선 폭발이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은? 지구의 모든, 모든 생명들이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지구의 생물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어머니 자연과 아버지 시간은 너무나도 잔혹하고 불평등하여 우리 모두를 무책임하게 두지 않는다. 우리가 막지 못하는 파멸이더래도. 만일 태양이 폭발하여 인류는 물론 지구가 증발해버린다면, 그리고 그 둘이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살고 싶었으면 막았어야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면한다고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맞서봐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도망친데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과 정신의 괴로움으로, 육신의 고통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책임져야 한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을 정복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다루려는 시도에도, 이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다. 아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일개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휘두룰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힘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내가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전쟁광 지도자들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가? 오히려 전장에 끌려 가는 것은 저들이 아니라 내가 될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느그 당선자' 취급하며 남의 나라 지도자 취급할 수 있는가? 아니, 모두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나약하고 힘 없는 생명에 대한 질타 같은 게 아니다. 어차피 네가 아둥바둥 해봐야 뭘 할 수 있냐며 일개 시민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이 아니다. 억울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소중하다면서 왜 대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인가. 개인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그 한 표가 소중하다면서 왜 모두를 위한 결과는 커녕 고통스러운 역사 속으로 끌려가는가.


존재하기 위한 발버둥의 대가가 이것인가? 자연과 시간의 절대적인 파멸과 문명 사회의 올가미? 부정하고 싶어도 앞서 말했듯이 당연하다. 이것은 법칙이다. 삶에는 죽음이, 자유에는 책임이, 존재에는 대가가 따르니 우리 모두가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마치 악몽을 꾼 어린 아이가 자신이 무서운 꿈을 꿨다는 것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우는 것처럼 징징대봐야 소용없다. 이 법칙에 절망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모든 걸 낭비해라. 뭐라도 하고 싶다면 욕이라도 뱉거나 손 발을 아둥바둥 굴리거나 맞서 싸워라.


아니면...


이 법칙은 한 머저리가 머릿 속에서 떠올린 궤변이다. 이 길고 의미 없는 글을 읽은 몹시 감사한 분에게 말씀 드리는데, 아니, 뜬금없이 하늘에 뜬 태양이 갑자기 터져 지구의 모든 생명이 사라지는 데 그걸 누가 책임이라 부르는가? 물론 모두가 죽는다는 결과가 남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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