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청년을 착취한다는 거짓말
"건설 현장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장악되어 요새 외국인들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분들이 들어 보셨을 것이다. 시대의 테마에 맞게 카르텔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국인데(...) 재미있게도 건설 현장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왜 그럴까?
2022년쯤에 KBS에서 건설현장 노동자의 국적별/연령별/직종별 현황을 분석한 적이 있다. 물론 KBS에서 열심히 했지만, 기초 통계는 다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간하는 「건설근로자 고용복지사업연보」라는 자료이다. 이 자료의 2021년 버전을 보면 건설현장노동자의 내국인 비중은 87.6%, 외국인 비중은 12.4% 이다. 즉 통념과는 달리 아직도 건설현장은 내국인이 대다수다.
하지만,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단체 행동을 하였을 때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왜냐 하면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발생한 사례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명 중 1.2 명 꼴인 그들이 그렇다면 어떻게 현장을 멈출 수 있는 것일까? 이는 건설노동자들을 연령대로 구분하면 바로 답이 보인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은 내국인 고령자 + 외국인 청년 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국인 건설노동자의 연령대별 구성현황은 다소 충격적이다. 40대 이상이 79.8%로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50대가 28.8%, 60대 이상도 무려 22.7% 를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70대도 3.3% 가량이 있다. 즉 장-노년층이 내국인 건설노동자의 절반이 넘는다. 30대는 8.1%, 20대는 7.8%에 불과하다. 즉 청년층이 이 일자리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에, 장노년층이 건설 현장을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나이가 많고 따라서 체력 등이 청년층보다 후달린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고연령 노동자들은 더 힘들고 고된 업무를 기피하고, 이 때문에 내국인 건설노동자들은 대부분 단순노무직인 보통인부 직종에 몰려 있다. 반면 외국인 건설노동자들은 보통인부는 거의 없고, 대부분 형틀/철근공 등 더 힘들고 어렵지만 현장에서는 생산성이 더 높다고 간주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 비중이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는 이들이 일손을 놓으면 당연히 차질이 생긴다. 이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사뭇 기묘하다. 청년층이 건설 일자리를 기피하기 때문에,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이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계속 그 일자리에서 일하고, 이들이 나이를 먹고 힘드니까 청년층이 더 잘 할수 있는 일에는 외국인 청년들이 들어와서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일자리를 기피해서 외국인들이 들어오게끔 만든 것은 구조적 문제이지만, 그 구조에 일조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오늘도 커뮤니티에 모여 외국인이 문제이고 노인이 문제라고 말들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해 어차피 망할 제도라면서 정말 나쁜 선동을 하는 사람들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거짓말이 앞으로 인구가 줄 것이기 때문에 청년이 노인을 수도 없이 부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건축물을 짓는다든지 거리를 청소한다든지 하는, 청년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유지보수 활동은 알고 보면 노인들이나 외국인들이 전부 다 하고 있다.
그럼, 대체 누가 누구를 부양한다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선진국의 기층노동이 점점 더 이민자나 외국인에게 이양되는 이유는, 그 나라 내국인의 교육 수준이 평균적으로 상승하면서 내국인 청년층이 3D 업종을 자연스럽게 기피하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 속력이 빨랐던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가난한 상태로 남아 있던 청년층이 중장년이 되면서 이런 기층 노동을 일시적으로 이양받아 하고 있고, 이는 이제 이들이 세상을 떠날 수록 더 빠르게 외국인들로 채워질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착취를 부르짖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런 식의 택도 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은 청년이 노인을 부양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노인이 기층에서 청년을 부양하고 있다. 586 세대가 청년을 착취한다고 하지만, 고생산성을 자랑하는 상위 대기업에 종사하는 586 세대 중 노동자 신분인 사람들은 벌써 은퇴자가 되어 자영업에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하는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이것이 그냥 -평균- 이다.
이런 식의 선동에 속는 사람들의 행동 양식도 재미있게 모두 일치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스스로가 기피한 일자리에 외국인들이 들어와 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건보 재정을 해치고 카르텔을 구성한다면서 문제를 삼는다. 도서관을 청소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지만, 노인이 청년을 착취한다면서 나이 든 사람들은 죄다 몰아내는 것이 정의라고 한다. 취업자수 통계를 보면 여성은 취업개시시점부터 영세한 저생산성 업종에 몰려 있지만, 양성평등이 청년 남성을 착취한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귀신같이 특정한 커뮤니티에서 특정한 사람을 종교처럼 떠받들어 모시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유니크하다며, 기존의 방식대로 자신들을 해석하려고 시도해봤자 백전백패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무슨 궁극기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뭐 사실 그 말은 맞다. 모든 담론이 모순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대로 해석을 하면 딱히 맞는 결론이 나오지는 못하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에서 누가 누구를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존재들이 있기는 할까? 굳이 따지고 보면 있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의 범위가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배주주 그룹 그 이상으로 넘어가기는 할까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들이야말로 자본시장부터 시작해서 노동시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제도를 왜곡하고 경제적 지대를 빨아먹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인스타에서 '형님' 으로 소비되는 꼴은 봤어도 비판을 받는 모습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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