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 하고 영감이 떠올라 적어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길이가 좀 될 것 같으니, 방송에서 읽기 힘드시면 나중에 따로 개인적으로 읽어주세요.
두편 써봤습니다.
삘이 온 김에 급하게 쓰는지라 오탈자, 문법오류가 다소 존재할 지 모릅니다.
최대한 퇴고를 한다고 했지만 급하게 하는 바람에 좀 글이 망그러진 점, 먼저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한국 태백산맥의 깊은 곳 어딘가.
사람들은 절대 딛지 못할 높은 산 꼭대기.
구름에 가려진 봉우리 위에 놓인 작은 정자로 바람이 불어왔다.
살랑거리며 날아온 나뭇잎 하나가 홀로 앉은 한 사람의 도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이리 안 오실까.’
홀로 있던 사람이 도포자락을 걷어올렸다.
그의 머리에서 돋아난 작은 떡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품속에 고이 품고 온 작은 호리병을 탁상 위에 올려둔 그는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람에 실려 흘러온 누룩의 향기가 천지에 피나니….”
정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청아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으며 다가오는 자의 도포는 부드러운 깃털처럼 휘날렸다.
푸른 도포를 조심스레 정리한 그녀는 뒷짐을 진채 사뿐사뿐 다가왔다.
“세상의 작은 담소들이 실려 마음을 잃은 중생들에게 전해지니라.”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는 그의 목소리는 대웅전에 퍼져나가는 부드러운 종소리와 같았다.
비오는 날 울적한 마음을 휘감으며 위로하는 바람종 같은 그의 목소리에 정자에서 기다리던 자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가 뒤로 고개를 돌리자, 푸른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걸어온 자의 얼굴이 더욱 선명히 보였다.
머리 위로 돋아난 푸른 귀.
토끼의 영을 받은 그녀의 귀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시조를 읊었다.
“맑은 낙수 안에 이치가 있고 세상의 조화가 있느니.”
정자에서 기다리던 남자는 마음을 놓으며 자신의 호패를 내려두었다.
호패 위에는 ‘처사 토끼풀. 한양’ 이라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내 마음 멎을 수 있으랴, 진리를 향한 갈망이오, 부서진 자들을 위해 남기는 헌사이오다.”
“어서오시지요, 대사님.”
“음양의 조화가…. 아읍!”
세차게 불어온 바람.
시조를 이어가려던 대사의 앞섬이 휘날리며 대사의 입을 막았다.
“아푸푸풉….”
“바람이 거셉니다, 사사 대사님. 빨리 오시지요.”
“아잇, 배움터 뒷방에서 만나도 되지 않았느냐.”
“그곳에서는 스승님께서 보시잖습니까. 기왕 이렇게 작은 밀담을 나누고 대사님께 작게나마 제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하는데… 그 신성한 배움터에서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오는데 열 번을 쉬었다. 이리 높은 곳은 아직 내 법력으로는 도달하기 힘드니라.”
머리카락이 날려 망가진 사사는 황급히 도포자락을 내리고는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부끄러움이 밀려온 사사는 짚신을 벗고는 정자 위로 올라와 양반다리로 앉았다.
토 처사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운동이 부족한게 아니신지요….”
“조용히 하거라.”
근엄함을 찾으려던 사사.
그녀는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개졌다.
토 처사는 말 없이 옷에 품고 있던 호리병을 꺼내었다.
“마음을 푸시지요, 대사님. 마침 좋은 술이 있어 가져와 보았습니다.”
“오!”
사사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서 보여주거라, 어서!”
“대사님 진정하시지요. 그래도 소개는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토 처사가 내려둔 병에 햇빛이 비추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병이 볼품없지만….”
“아름답도다.”
“그게….”
“한잔 줘보거라.”
사사의 눈이 빛났다.
뚜껑을 열기도 전, 사사의 눈동자는 호리병 속 액체의 기대로 가득했다.
난감했던 토 처사.
그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설명은 들어보셔야지요.”
“아 음.”
사사 대사는 평정심을 되찾고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호리병을 힐끔힐끔 보던 그는 눈썹을 으쓱거리곤 부채를 펼쳤다.
“읊어주게나, 토 처사.”
“저기 남쪽 섬의 작은 집에서 한때 유명했던 술도가가 계십니다. 그분께 특히 부탁드렸습니다.”
“호오. 작은 집이라면 주조장은 아닌 것 같구나.”
“예. 은퇴하신 술도가님이신데, 이젠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술을 빚고 계시다고 합니다. 좋은 술이 있다면 내어달라 간곡히 부탁드렸더니 내어주신 술입니다. 전 해에 나온 햇옥수수로 빚은 청주라고 하셨습니다.”
잔을 내놓으며 설명한 토 처사는 조심스럽게 병을 막고 있던 마개를 열었다.
얼큰한 향기가 정자로 퍼져나갔다.
잔을 내려놓은 토 처사는 잔을 반 정도 채우고 사사에게 잔을 건넸다.
토 처사는 잔을 들고는 사사의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수담을 나누시지요.”
“좋구나.”
청아한 소리와 함께 잔이 마주쳤다.
청록색 술잔을 채우고 있던 맑은 청주가 두 사람의 입 속을 채워나갔다.
불타는 듯한 느낌이 조금 가시자 사사는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
“어유… 독하구나.”
“술도가님께서 세다고 하셨습니다. 더 좋고 맑은 술을 만들고 싶다는 당신의 염원을 담으셨다고 하셨지요.”
“좋구나.”
“대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술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알아가기엔 제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도가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요.”
토 처사는 빙긋 웃고는 다시 사사의 잔을 채웠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풍류를 즐기던 때.
그들은 얼큰하게 취해 얼굴이 붉어졌다.
먼 곳에서 떠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던 두 사람은 눈을 감은 채 흘러오는 바람을 느꼈다.
“좋구나, 정말 좋아.”
“대사님이 즐기셔서 다행입니다.”
“세상에 다른 근심 걱정이 무엇 있더냐. 이 참 마음이 풀리니 이 내 입에서 절로 풍류가 흘러 나오는구나.”
사사는 고개를 까딱이며 흥얼거렸다.
토 처사는 다시 잔을 채우고는 사사의 가락에 맞춰 탁상을 툭툭 두드렸다.
“도원이 별것이더냐.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 무릉도원인데.”
“그렇습니다, 대사님.”
사사는 토 처사의 호응에 점점 흥이 무르올랐다.
“좋구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튕기며 몸을 흔드려던 순간.
그녀의 뒤로 그림자가 불쑥 솟아올랐다.
빠악.
고요하던 정자에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토 처사와 사사 대사.
그들은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들의 머리를 쪼개놓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익… 누구….”
울컥한 사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뒤를 보았다.
이내 몸이 얼어붙은 그녀는 숨을 흡 들이마셨다.
하얀 도포자락에 버금갈 정도로 긴 수염을 쓰다듬는 한 늙은 도사가 한심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뒷짐을 진 그의 손에는 곰방대가 들려 있었다.
“고얀놈들.”
“스… 스승님.”
사사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무릎을 꿇었다.
“기침… 기침 하셨사옵니까.”
“또 마신게냐.”
“아니 그… 예….”
“아이고….”
혀를 찬 노선사는 갓을 고쳐쓰는 토 처사를 보며 다시 곰방대를 들었다.
흠칫 놀란 토 처사는 황급히 무릎을 꿇어 앉으며 예를 갖추었다.
노선사는 화가 났는지 곰방대를 토 처사의 머리 위에서 흔들었다,
“거 네놈이 자꾸 와서 부추기니 사사 대사가 자꾸 업을 팽개치지 않느냐!”
“성운 선사님. 오셨습니까.”
“어허…. 풍류를 즐기더라도 수행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고 했거늘, 또또 이놈이 간악한 간계로 마음을 흐리느냐!”
“아이… 선사님 그게 아니라….”
“썩 내려가서 법화경이나 마저 읽거라!”
토 처사는 성운 선사의 불호령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사님.”
“떼끼 이놈아! 어서 돌아 가라니까!”
“죄송합니다, 선사님!”
계단을 따라 후다닥 뛰어내려간 토 처사.
사사는 볼록 올라온 혹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았다.
“선사님 이렇게까지 하시다니오. 잠시… 잠시 풍류를 즐기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않사옵니까.”
“아이고 이놈아.”
뒷짐을 진 채 다가온 성운 선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놈의 풍류를 매일 즐기는 게 문제 아니더냐, 매일.”
“어떻게 매일 입니까, 선사님. 딱… 하루 걸러 하루입니다 선사님.”
“예끼 이놈. 그게 매일이지! 그 거르는 하루에 네 몸에서 술이 돌고있지 않느냐!”
“힝….”
사사는 억울한 마음에 머리를 매만졌다.
“아이구 이놈 진짜 어쩌려고… 거 네가 가르치는 중생들이 있지 않느냐. 거 어제도 한 보살이 기겁을 했다 전해들었다.”
“술냄새 때문이옵니까?”
“이눔아. 네가 음양의 조화가 어쩌구, 음기와 양기 이런 불경한 소리를 하니 기겁을 했지! 울면서 내게 달려왔느니라.”
“아이… 그게 세상의 이치 아니옵니까.”
“아이구 이놈아!”
빡.
성운 선사의 곰방대가 다시 사사의 정수리에 꽂혔다.
억울함과 부아가 치밀어 올랐던 사사는 벌떡 일어나서는 성운 선사에게 달려들었다.
“이이익! 스승님!”
“어허.”
성운 선사는 팔을 뻗어 사사의 머리를 턱 막았다.
사사의 팔이 허공에 휘적거렸다.
“이익! 스승님 진짜!”
“너는 뭇 중생들의 대사이다. 품위를 지키거라.”
“때리실 필요는 없잖습니까앗!”
버둥대던 사사.
그녀의 팔이 닿지 않자 제 풀에 죽은 그녀는 정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머리에 난 혹을 만지작거린 사사는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언제부터 보고 계셨던겝니까.”
“네가 청운각에 올라갈 때부터 따라왔다. 자주 쉬더구나.”
“힝.”
“시조도 다 들었다. 거 참 이리 풍류를 즐기는 걸 좋아해서 어찌할꼬….”
혀를 찬 성운 선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사사를 내려다보았다.
“거 그리해서 세상의 이치를 알겠느냐.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아니되거늘.”
“하지만 이 술이 좋은 걸 어찌합니까, 선사님.”
“그래. 네 시조에도 그리 이야기를 한걸 들었다. 그러니 말이다.”
성운 선사는 긴 시간 마음에 품었던 생각에 마침내 마지막 점 하나를 찍은 것 같았다.
그가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자, 정자를 스치고 지나가던 바람이 사사의 아래에 모이기 시작했다.
“선사님?”
“네가 직접 말을 했지 않느냐. 맑은 낙수 안에 세상의 이치가 있고 조화가 있다고.”
사사는 당황한 눈동자로 성운 선사를 보았다.
성운 선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사사를 보았다.
“그러니 직접 세상으로 나아가 그 이치와 조화를 느끼고 오거라.”
“스승님,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
“그리 술을 좋아하니 네가 직접 내려가서 모든 것을 깨우치기 전까진!”
성운 선사는 다시 곰방대를 들어 정자의 난간을 내려쳤다.
사사를 휘감던 바람이 한데 모이며 구름을 끌어오자, 사사는 허공에 떠올라 버둥거렸다.
그녀는 직감했다.
성운 선사는 사사를 속세로 내려보낼 생각이었다.
영원의 징벌일지도, 혹은 미지의 세계로 보내는 새로운 가르침의 장일지도 모르는 그 어딘가로 사사를 보내려 하고 있었다.
성운 선사의 목소리가 산봉우리에 메아리치며 들려왔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진 돌아올 생각 말거라!”
“스승니이이임!”
사사의 비명은 구름과 안개 속으로 메아리치며 사라졌다.
술과 풍류가 있던 정자에 낙엽 하나가 날아와 사사가 쥐고 있던 술잔에 떨어졌다.
성운 선사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뒷짐을 진 채 다시 돌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간절히 바랬다.
사사가 깨우침을 얻고 돌아오기를.
성운 선사의 도력에 끝도 없는 하늘을 떨어지던 사사.
그녀는 중심이라도 잡아보고자 몸을 버둥거렸다.
“스승네에에에에에엠!”
절박함에 지른 비명이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두려움에 눈물이 터지려던 그 순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멎은 순간.
그녀는 산속 한 길가에서 안개를 걷으며 다시 나타났다.
사사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그녀의 도복도, 도포도 모두 그대로였다.
마치 신선들의 노니는 누각에서 그녀를 그대로 옮겨온 듯, 그녀는 속세의 도로 한가운데 뚝 떨어졌다.
“허엉… 스승님…. 이건 너무하잖습니까….”
그녀는 눈물을 닦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뒤로 고개를 돌리자, 지역이 나뉘는 표시석이 보였다.
낡은 비석 위에 적힌 한자.
사사는 비석을 더듬거리며 돌 위에 남은 흔적을 읽어내려갔다.
“청… 화…. (각주: 포천의 옛 지명. 고려시대 별칭이었음.)”
그녀는 몸을 일으켜 산골짜기 너머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기와집과 초가집들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곳이 보였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었다.
그녀는 긴장이라도 풀어보고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옅은 장작냄새의 사이.
사사는 귀신같이 한 냄새를 맡고는 눈동자가 커졌다.
“누룩… 냄새?”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제서야 성운 선사의 뜻을 이해한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고소한 누룩의 냄새를 따라 살랑살랑 길을 내려갔다.
흔들거리는 그녀의 귀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세상을 느끼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즐거움을.
- 사사 대사의 ‘술’행기 1화 -
***************************************
긴장된다.
하도 일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불안감에 여기저길 알아보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한때 조주기능사에 관심이 있어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자격증을 딴 적은 없다.
다른 곳에서 일하고 진짜 학업에 몰두하느라 마무리를 해보진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진짜 바텐더 일을 구할거라곤….
- 알았지? 그 조심해야 돼 조심.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아 참.
엄마랑 전화중이었지….
“아 알았어 엄마. 아우 그 너무 걱정하지마.”
- 대충 위치라도 좀 문자로 남겨주고 그래. 요즘 들어보니까 막 이상한 애들이 칼들고 돌아다닌다더라.
“아 거 참. 엄마. 엄마 말대로면 난 납치 한번 당했다가 장기 한 두 번 교체당하고 원양어선 세 번 탄 인간이라니깐? 이게 무슨 사람이야, 프랑켄슈타인이지.”
- 에헤이 거 참 말을. 엄마도 걱정되서 그렇지 걱정.
“아유 괜찮아 엄마.”
어느새 바 앞에 도착했다.
엄마도 참 유별나지.
- 아니 근데 무슨 술집이 밤 12시에 면접을 한 대니. 오전시간 놔두고.
“아이 이야기 제대로 들으려면 사장님 멀쩡히 깨신 저녁에 오래.”
- 거 참 이해는 하지만서두….
“엄마 괜찮아 좀. 누가보면 나 무슨 어디 마피아한테 끌려가는 줄 알겠어. 진정좀 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영 망가진 모습으로 갈수는 없으니 대충 앞머리 좀 만지고 들어가야겠다.
“좀있다 전화할게.”
- 힘내고 아들.
“응.”
- 우리 토끼풀 기죽지 마라잉.
“아 알았어 알았어 진짜.”
뚝 전화를 끊으니 다시 거리의 습기가 느껴진다.
차갑디 차가운 동네의 어딘가에 이런 바가 아직 영업하고 있을거라곤 누가 알았을까.
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딸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보인 바의 안.
생각보다 포근했다.
호텔 재즈바에서나 보일 것 같은 목재 벽에 1인용 바 스툴 가득.
말을 하는 사람의 입만 겨우 보일 것 같지만 음침하진 않은 조명.
생각보다 오래 된 바 같다.
“실례합니다.”
인사를 하며 들어가보니 아직 술냄새가 남아있다.
한바탕 손님을 치고 난 후인지 아직까지 정신이 없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이 왔다 갔는지 여러 사람들이 있던 흔적이 남아있다.
바닥을 쓸고 지나간 발자국, 바닥에 흘린 술방울.
바쁜 곳이다.
안을 조금 더 둘러보니 카운터 근처에서 잔을 닦고 남은 치즈를 써는 분이 보인다.
사장님 인 것 같다.
“오늘… 면접보러 온다고 말한 사람인데요. 혹시 사장님….”
조심스럽게 묻자, 카운터에 계시던 분이 고개를 들었다.
어우 놀래라.
되게 딱딱 해보이신다.
그냥 무표정하게 계신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눈 밑에 다크서클이 좀 있으신거 같기도 하다.
밤에 여는 바라서 그런가.
나도 피로랑 싸워 이겨내야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바 스툴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저는 매니저구요. 사장님 곧 나오실거에요. 잠시 이것저것 정리 하신다고 들어가셔서….”
부처상 같았던 분이 이야기하신다.
매니저님이었다.
진짜 사장님은 따로 계신가보다.
잔을 닦던 매니저님이 가게를 슥 가리켰다.
“오실 때까지 둘러보세요. 금방 나오실 거니까.”
“감사… 합니다.”
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몸을 일으켰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 옆에 프릴이 달린 바니걸 복장이 보인다.
설마 아니겠지.
매니저님을 슥 확인해보았다.
사이즈가 아니다.
정말 사장님 건가….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매니저님이 묻는다.
난 흠칫 놀라 몸을 일으키곤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물이면 괜찮습니다.”
고개를 다시 숙이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의자마다 사람이 있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테이블도 소주가 좀 말라붙어 있는 것 같고.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화이트보드 앞에 당도하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여러 글자를 적었다 지웠는지 검게 끌린 자국이 남아있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된 시점에 누가 그림을 그리고 지웠나보다.
난 눈을 가늘게 뜨고는 쓰여진 글을 읽으려 노력했다.
길쭉한 물체와 코뚜레를 낀 네발 달린 동물.
그리고….
자세 왜 이래 이거.
난 조심스럽게 지워진 글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오이…. 소…. 박이….”
옆에 누군가가 ㅋㅋ 라는 글자를 적었다 전부 지웠나보다.
여기 뭐지 대체?
나 진짜 일 해도… 되는거야?
매니저님이 내어주신 물잔 앞에 앉자, 부엌 뒤에서 한 사람이 나온다.
“매니저네엠. 면접 하러 온 사람 도착했어요?”
포근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바탕 손님을 친 후, 땀과 술냄새에 젖은 머리를 잠시 씻고 나오신 것 같다.
체크무니 옷과 모자를 쓴 채 나오는 사람.
목 뒤로 머리를 슥 쓸어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장님은 정말….
매혹….
적이라기보단 되게 귀여운 분이다.
머리 위로 뿅 하고 튀어나온 귀가 흔들린다.
매니저님은 바로 앞에 앉은 나를 가리켰다.
“여기 왔네요.”
“아 이분이구나, 반갑습니다. Bar Sasa 운영하는 사사 라고 해요.”
이 분이 사장님이시구나.
손을 내미시니 악수를 해야지.
어색하게나마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토 끼풀이라 합니다.”
“반가워요 반가워요. 얼른 앉아요.”
너무나 익숙하게 바 테이블 뒤로 돌아간 사장님.
바 뒤에서….
초록 병을 꺼내신다고?
잔은 또 왜 둘이야.
“사장님. 저거 오이 소박이 혹시 몰라서 지웠어요.”
매니저님이 말씀하신다.
“아이 왜 지워요오오.”
“아니 처음 오는 알바가… 저거 보고 견디겠어요?”
“아이 그래도 나름 잘 그렸는데.”
“아휴….”
매니저님이 너무 익숙하게 대하시는 걸 보니 일상인가보다.
그린건 사장님이었구나.
바니걸 옷도 사장님 거고.
목이 탄다.
물이 왜이리 들어가냐….
“그래도 바에 왔는데 한잔 마시고 가야죠. 자.”
어느새 내 앞에 잔을 깔고 술을 따른 사장님.
사장님이 잔을 앞으로 쭉 내밀고는 말한다.
“짠!”
한번 꺾으시긴 하지만… 보자마자 이렇게 술을 마신다고?
“아니 면접… 아니었어요?”
당황스러워 사장님께 물을 수밖에 없다.
요즘 술자리에서 태도를 보는 면접을 하는 곳도 있다고는 하는데… 여기도 그런데야?
“아이 면접도 면접인데, 일단 사람 마음이 편해야죠. 바라서 줄게 물이랑 술밖에 없으니까 한잔 받아요. 자 짠!”
“아 감사… 합니다. 짠.”
원 샷을 때린 나.
목이 타오른다.
소주보다는 맥주파긴 하지만 소주가 그리 나쁘진 않다.
“키야아. 이력서 봤는데 여기저기서 많이 일하신 거 같더라구요?”
사사 사장님이 물으신다.
여기저기서 많이 뛰어다니긴 했다.
편의점에 도서관에 정말 말그대로 닥치는대로 했었다.
이 동네에서 조금이라도 버티고 있으려면 손에 잡히는 뭐든 했었어야 했으니까.
“진짜 멋져요. 진짜 완전 원맨아미에 전천후시잖아요.”
“아니… 그정도는 아닙니다, 사장님.”
“아유 겸손은. 어쩌다 우리 가게를 알게 됐는지 모르지만 와줘서 고마워요. 자 짠!”
사장님이 남은 잔을 비우신다.
“크앙. 매니저님, 우리 에다마메 남았죠?”
“주방에요.”
“코롸아아아. 나에게 에다마메를 바쳐랏!”
“사장님이 가져와주세요. 저 술잔 정리는 해야죠. 재고 관리도 하고….”
“술을 그냥 마시면 안대애엥. 안주 가져올게요.”
사사 사장님이 주방으로 들어가시며 말했다.
메아리치며 사라지는 사장님의 목소리.
당황스럽다.
면접이라고 왔는데 바로 술잔을 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게….
난 조심스럽게 매니저님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사장님… 원래 이런 분이세요?”
“그냥 술… 좋아 하시고 자주 드세요.”
무뚝뚝한 매니저님.
잔 닦는 것을 마친 매니저님은 벽에 가득한 술병 재고들을 정리하신다.
“그래도 가게는 돌려야하니까 한달에 몇 번만 진탕 마시자고 하셨거든요. 직원들한테 허락 맡고. 그게 오늘이 될 거 같네요.”
“어… 예?”
진탕이라니.
나 분명 면접보러 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상황이라도 이해해보려는 순간, 내 앞으로 풋콩이 담긴 접시가 불쑥 나타났다.
어느새 사장님이 나타나 다시 술잔을 따르며 질문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요. 일하는 시간은 오후 8시부터 늦은 밤까지 갈수 있는데 괜찮아요?”
“네. 다른 고깃집 같은데서 했던 스케쥴이라 익숙해요.”
“아유 그러면 됐지. 진짜 열심히 살았던 분인가봐요 끼풀님.”
“아이 그정도는… 아니라….”
“경험이 다에요 경험이. 다 멋지게 이겨낸거죠. 자 짠.”
“짜… 짠….”
절대 밀릴수 없다.
그래도 과에서 꽤 술이 세다고 친구들이 말을 하는데… 밀리면 안될 거 같다.
나를 시험하시는 거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에서 일하는데 내가 꿇릴수는 없다.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에 결국은 나도 달려버렸다.
한 잔, 그리고 두 잔.
잔이 병으로 바뀌고.
병이 내 옆에서 구르고.
죽겠다.
중간중간 내 이력에 대해서 설명을 끼워넣긴 했지만, 점점 내가 살아온 이야기로 바뀌긴 했다.
사장님도 듣고싶다는 말을 남기셨었고.
하지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있자니 나조차도 브레이크가 풀릴 것 같다.
나름 그래도 안주라고 내주시긴 했지만 콩으로 커버가 안되는데 이거.
약간 혀가 풀린 사장님이 다시 물으신다.
“그러며헌 토끼풀 군은요. 왜 우리 가게에서 일하고 싶어요? 흐엥.”
“저요?”
“넴.”
콩알을 위로 던져 먹은 사사 사장님.
무거운 질문이다.
그냥 돈 벌고싶다는 말로는 안될 것 같지만 그게 다니까.
“돈 벌어야죠 저도.”
“왜요?”
“그냥… 그래야 하고싶은걸 하잖아요.”
“그럼 계속 그래떤 거에요? 그 이력 다?”
“그런거죠.”
사사 사장님이 걱정하는 눈치다.
술을 한 잔 더 따라주시고는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리신다.
“어떡해요. 진짜 숨막히게 살아오신건데.”
“그래도 해야하니까요. 그래야….”
내심 씁쓸한 마음도 든다.
마음 속으로 정한 길 하나만 보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달려왔던건 맞으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이뤄질거라고 믿으면서 나아가긴 했지만 내심 지치는건 맞았다.
“걍 숨막히게 바빠도 그래야 살아 남으니까요.”
“많이 힘들엇게따 진짜… 아구….”
점점 혀가 풀리기 시작하는 사장님.
혀가 풀리면서도 그냥 면접 보러온 사람까지 걱정하시는 걸 보니 나쁜 분은 아닌 것 같다.
다시 힐끔 주방 위에 걸린 채 마르는 바니걸 복을 보니… 좀 재미있는 분 같기도 하다.
“그러다 지치면 어떡해여.”
“그럼 링겔 맞고 일하죠 뭐….”
“어뜨케 아구. 우리 가게 사람 많은 건 맞지마는! 손님드리 다 착해여 착해.”
“손님들 그래도 다 유심히 보고 이야기 많이 하시나봐요.”
“다 보죠 다다. 다들 잘됐으면 좋겠구 그래. 그래서 손님들 와서 푸념하고 힘들어 하는거보면 나두 마음아파요. 나도….”
사장님의 자세가 점점 기울어진다.
나도 한계인 것 같긴 하다.
“다 행복해야하는데…. 다들 무리하는거 같아. 다들… 힝….”
결국 고개가 아래로 푹 고꾸라진 사사 사장님.
나도 생각보다 많이 마셨는지 꽤 어지럽다.
면접 결과는 들어야하는데.
“그러려고 일… 하는거죠. 행복하려고. 사장님 그러면 저… 면접 결과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사장님을 보았다.
바 테이블 위에 몸을 누인 채 뭔가 어깨가 들썩이신다.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사장님을 쿡 찔러보았다.
나 결과는 들어야해….
“사장… 님…?”
천천히 고개를 드시는 사장님.
머리가 갑자기 산발이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있….
저게 왜 붙어있지?
아까 하늘하늘 잘 흩날리셨는데.
“흐어어엉 끼풀군….”
운다고?
….
갑자기?
“아휴…. 만취권 발동하셨네 결국.”
매니저님이 한숨을 푹 내쉰다.
너무나 익숙하게 바 스툴 밖으로 걸어나오신다.
“사 사장님. 일어나요. 면접 보러온 애 앞에서 우시면 어떡해요.”
매니저님이 사장님을 깨우려 노력하시는 것 같다.
등을 두드려도 인사불성이시다.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시더라니… 주무시다가 일어나서 저러실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마음 따듯하신분 같다.
코롸아아 하던 때는 장난이었던게 확실하다.
지금 행복행복 하시는걸 보니.
사장님은 아직도 훌쩍이시면서 말씀하신다.
“끼풀아… 끼풀아 진짜. 진짜! 행복이 전부다 행복….”
“아유 그렇죠, 행복이 중요하죠. 자. 얼른 주무시러 갑시다.”
“끼풀아아아앙! 우리 다같이 행복하자 다같이이!”
훌쩍이는 사사 사장님.
당황스럽다.
결국은 매니저님이 사장님을 질질 끌고 나가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매니저님이 끙끙거리며 사장님을 부축한다.
“거 끼풀씨 잠깐 좀 있어봐요. 계약서 가져 올테니까. 사 사장님. 들어가서 빨리 자십시다.”
“끼풀구우우우운. 햄보케야해에에에.”
후에에엥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쪽으로 사라진 바 매니저님과 사사 사장님.
계약서 이야기 하시는걸 보니 합격인가보다.
엄마 걱정하시겠다.
좋은 소식도 전할 겸 전화라도 드려야지.
난 핸드폰을 꺼내 간신히 버튼을 눌렀다.
“어… 엄마.”
- 어 아들? 왜이렇게 목소리가 풀렸어? 너 술마셨니?
“걍 조금….”
- 이눔시끼 떨어졌구나! 아유… 아무리 마음 썩어 들어가도 만취가 되면 어떡해 아이고 속 다 배릴텐데….
“아냐 엄마… 붙었어. 일 하재.”
난 코를 훌쩍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아.
- 어머나 어떡해. 합격한거야?
“응.”
- 아이구 아이구 사장님은 어떤분이셔?
엄마의 질문.
난 들어오고 나서 둘러보았던 화이트보드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냥… 좀 개방적인 분이야.”
- 아이구 그래서 면접도 이 시간에 하고 그랬구나. 혹시 면접 하면서 술 멕이디?
“조금.”
- 아이구 그 참 독특한 사장님이네. 술집이라고 손님들이랑 술잔 나눌 일이 많아서 그런가? 사장님이 간이 세신가 봐.
“그렇다… 치자.”
약간은 걱정은 된다.
나도 이제부터 우루사 챙겨 먹어야하나.
적어도 사장님도 기분 좋게 나가셨던 것… 아니 끌려 나가셨던 거 같고 엄마도 목소리가 많이 편 것 같다.
엄마가 묻는다.
- 그러면 언제부터 일하라는데?
“그건 뭐… 내일부터 같아.”
멋쩍게 웃는거 말고는 할게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적어도 내일부터 지루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이 바 안에서.
- Bar Sasa 에 어서 오세요 1화 -
***********************************
이렇게 두편 써봤습니다.
2화들은 어디있냐구요?
이미 사사님과 토끼풀분들이 5년 전부터 지금까지 1600화 가량을 채워오신 거 아닐까 싶습니다.
한 발자국과 하루가 한 편이 되어 지금이 온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2화 쓰기 싫어서 하는 소리 아니냐구요?
조용히 해주세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독자님.
암튼....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선이라도 다해보았습니다.
글쟁이가 팬심으로 할 수 있는게 이런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적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