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이어집니다)
호스피탈리티에서 만났던 분 중 한 분이 자신은 리즈 팬이기도 하지만, 호버리 타운이라는 팀의 장내 아나운서이기도 하기에 한번 자기 팀 경기를 구경해 보러 오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귀국편을 예약한 준야오 항공 + 마이트립의 환장의 콜라보 덕분에 여행 일자가 며칠 더 추가되었는데, 원래는 그 빈 시간에 함부르크라도 갔다올까 했거든요. (미니어처 박물관 보고 싶어했음)
그런데 이런 풀뿌리 축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기회일 듯 싶어서 여행 계획을 바꿔서 호버리 타운 등 영국에서 못 본 것들을 마저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경기는 3시에 시작이니, 아침에 일어나서 심심하니 귀국 때 들고 갈 선물들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저 브랜드가 눈에 띄었네요. 러쉬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지만(그리고 러쉬는 영국직구랑 한국 가격이 큰 차이가 안 나요...) 이런 로컬 브랜드라면 여기 아니면 살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비누 가게인데, 비누나 입욕제 등이 저런 케이크 컨셉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입욕제는 써 봤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배스밤들에 비해서는 좀 오일리한 느낌이긴 합니다. 근데 향이나 디자인이 좋아서 귀국 후에 선물했을 때 대부분 좋아해 주시더군요.
점심을 먹고 기차 - 버스를 이용하여 호버리 타운의 홈경기장인 슬레진저 스포츠 클럽에 도착합니다. 저 회색 건물이 클럽의 오피스입니다. 취재한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서 경기 시작하기 2시간 전에 도착했네요.
홈팀 선수 라커룸 겸 대기실에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티켓 오피스. 티켓 가격은 6파운드였고, 매치데이 북은 1.5파운드였습니다.
10부리그 팀이라고 하더라도 여기도 역사가 50년 넘은 구단이다보니, 팀의 레전드 이름을 붙인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주로 이 공간에서 선수 인터뷰 등을 진행하더라고요.
영국 축구문화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 하나인, 매치데이 북이었습니다. 매 경기마다 기사를 써서 내고, 매치데이 북 안에 경기설명, 선수 인터뷰 등도 들어있는 데다가, 팀 스폰서 및 선수 개인 스폰서 등도 빼놓지 않고 다 적혀 있더라고요. 매 경기마다 저런 책을 내는게 최상위리그 팀들만 하는게 아닌, 이런 작은 팀까지도 한다는게 신기했습니다.
경기장 시트. 대략 250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경기장 시트 개선, 증설 작업중. 현재 9부리그 승격 유력 구단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살짝 들어가보았는데, 모양과는 달리 생각보다 폭신했습니다.
왜 제시 린가드가 상암구장 잔디로 고통받은 뒤에 평소랑 달리 강하게 잔디상태를 비판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더군요.
(참고로 저 날 경기장 기온은 영하 2도였습니다. 린가드가 상암에서 뛰던 날의 한국보다 쪼~끔 덜 추운 정도였어요)
호버리 타운의 매점. 간단한 음료, 주류, 커피 등을 판매합니다. 날도 춥고 해서 1.5파운드를 내고 커피를 한 잔 샀습니다.
절 초대해 준 아나운서분은 홈팀 오피스로 쓰는 컨테이너 건물 2층으로 올라가 경기 준비를 합니다.
팀 감독님이 선수 라인업을 수기로 작성하여 제출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몇몇 레전드 팬분과 인터뷰가 가능했는데, 무려 1970년대 Dirty Leeds Era때 에디 그레이 세대의 선수들과 같은 팀이었다던 어르신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은 마치 절 손자보듯이 해 주시더군요.
호버리 경기 보고 어디 갈 거냐고 하길래 '런던 가서 박물관 보려고 한다' 라고 라니까 '요크셔 사람들은 사람들이 따뜻해서 인종차별도 없고 착한데 런던 깍쟁이들은 인종차별도 많이 하고 언제든지 니 돈 털어갈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꼭 다시 요크셔로 경기보러 돌아와라' 라고 덕담(?)을 남겨주시더군요. ㅎㅎ
(와...이거 지방 야구 팬들이 서울 깍쟁이 이야기할 때 종종 들었는데, 여기서도 듣네요 ㅎㅎ)
근데 실제로도 런던보다 요크셔 사람들이 영어가 안 통하는 저한테 되게 많이 도움주시고 챙겨주신 건 사실이었습니다.
홈경기장 옆에 작은 연습경기장이 두어개 더 있어서 여기서 웜업이 진행됨.
위에서 보는 경기장 풍경. 영국답지 않게 맑은 날씨를 볼 수 있는 좋은 날이었습니다.
아나운서분이 초대해주신 VIP석(이라고 쓰고 컨테이너 2층) 입니다. 궁금해서 하프타임 전후에 잠시 1층에서 보고 오기도 했는데, 왜 2층이 그렇게 좋은지 알겠더군요.
여기서 별 게 다 이루어집니다. 아나운서 1명이 선수 소개, 골 넣으면 득점 음악 재생, 중간중간에 페이스북으로 경기실황 중계 등등...90분동안 넘치는 에너지로 쉴새없이 많은 게 이루어집니다.
경기 직전 팀훈련.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하프라인 쪽에 카메라가 두 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풀경기 영상 녹화, 하이라이트 영상 제작 등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가 시작됩니다. 현재 리그 1위 vs 24위의 경기지만 초반에는 꽤 재미있게 이어집니다.
하프타임 정도에 내려가서 본 관중석 풍경. 저렇게 서서 보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입장료 및 관련 가격 안내. 저기서 판매를 하는 사람 중 한 명은 이 팀의 U-18 선수 중 한 명이라고 하더군요.
하프타임이 되니까 매점에 줄서서 간단한 음료를 구매하러 오는 팬들.
복권입니다. 몇 파운드 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하프타임 때 추첨을 하는데 아쉽게도 떨어짐.
선수들도 다 자기 직업도 있고, 팬들도 다 아는 얼굴이라 그런지 되게 편안한 분위기입니다.
하프라인 뒤에 있는 녹색 장비가 경기촬영용 카메라. 팬들이 섞여있어도 다들 평화로웠습니다.
감독님 바로 옆 직관 가능. 가족단위로 구경오는 팬들도 많았어요.
호버리는 양쪽 윙이 정말 강하더군요. 이번 시즌 리즈처럼 측면에 강력한 윙어 둘이 서서 털어대니까 상대 수비진이 정신없이 흔들렸습니다.
9:1로 깔끔하게 팀이 승리하니 팬들, 선수들 모두 표정이 좋네요.
경기가 끝나니까 팬들이 먼저 퇴장합니다. 저는 아나운서 분께서 역까지 데려다주실거라고 하셔서 잠시 선수들 구경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충격. 팀이 우승해서 얻은 우승컵이 매점 창가에 저렇게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
(처음에는 저게 뭐지...? 했는데, 읽어보니까 컵 우승 기념이었다고 적혀 있었어요 ㄷㄷㄷ)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킷 매니저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뒷 배경은 그날 MOTM 선수가 촬영할 때 쓰는 것이고,
감사하게도 팀의 킷 보관장소까지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체육관 일을 하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팀의 곳곳을 보여주시면서 자기 팀에 대한 애정이 넘치시는 표정을 보니까 되게 대단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직업이라기보다는 반 취미, 반 덕질로 하시는 일이라 행복해 보이신다는 느낌.
(그리고 이 글을 쓰는 타이밍에 수원삼성 유스인 매탄고 출신 유망주 두 놈 - 고가놈, 김가놈 - 이 계약 ㅈ까고 해외 구단으로 런치려다가 실패한 후 다시 수원과 계약했더군요. 직업으로서 축구를 접하던 런듀오와 저 팀 경기를 볼 때마다 보이던 팬, 직원 분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대조되어서 느껴집니다)
아까 보여드린 데이빗 포드 스위트는 주로 저런 인터뷰 촬영공간입니다.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감독님의 승리 인터뷰.
그리고 팀에서 보내주신 선물인 호버리 타운의 머플러와 모자.
그리고 심지어 호버리 SNS에 제 이름이 올라가기도 할 정도..ㄷㄷ
그리고 이 분 자녀분이 마침 K리그라는 다른 리그에 대한 관심을 보이셔서 (그 분이 호버리에 대한 애정을 보이시듯이 저는 수원삼성블루윙즈에 대한 애정을 보였거든요) 호스피탈리티 때 '수원 굿즈 보내드릴께요' 라고 약속을 했거든요.
굿즈만 보내기 심심해서 호버리 클럽에 보낼 과자나, 아나운서분에게 보낼 선물도 좀 담아서 영국으로 보냈습니다.
(한국 팬들의 국룰: 해외 선수에게 한국 과자를 보냄)
다음에 다시 호버리 타운에 들려보고 싶어집니다.
내년에 가면 9부리그 경기를 볼 수 있을려나...
p.s) 영국 축구문화에서 더 신기한게 개인 스폰서 제도이더군요. 이건 나중에 한 번 자세히 물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