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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괴담 - 1

나는 한 때 강아지를 길렀다. 작은 요크셔테리어였다. 어릴 적 내 주변에서 즐겁게 뛰놀던 그 강아지는 어느 순간 나이를 먹고 털이 푸석푸석해졌으며 앞을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고역이었던 것은 화장실 처리였다. 그 전까지 잘만 넘어다니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된 그 강아지는 화장실을 드나들지 못하자 문 앞에서 볼일을 보았다. 그녀 입장에서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고통받는 것보다는 좀 더럽더라도 앞에서 변을 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문제는 개만도 못한, 개만큼의 생각조차 못하는 우둔하고 멍청하며 썩어 빠진 생각에 사로잡힌 내 자신이었다. 그 전까지 화장실을 '잘만' 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화장실 앞에서 변을 보는 강아지를 학대했다. 문턱 앞에서 냄새나는 변을 강제로 마주한 채 내 손아귀 밑에서 버둥거리는 개는, 아마 자신이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어느 순간 강아지는 심각한 우울증에 사로잡혔다. 밤마다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을 난 다시금 외면하고 겁박을 주었다. 심지어 때리기도 하였다. 어린 날에 그녀를 사랑으로 보듬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강아지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같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모처럼 부엌 겸 거실에서 강아지가 좋아하는 선물-음식-을 해 주려던 아버지가 무심코 옆으로 비켜서고, 그것을 피해서 뒷걸음질치던 내 뒤꿈치에 강아지가 치였던 그 날, 그녀는 14년 동안의 고통에 가득 찬 견생을 끝마쳤다. 강아지가 고통에 겨운 비명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을 때 되는 대로 수건으로 감싼 채 어떻게든 동물병원으로 내달렸지만 그건 너무 뒤늦은 조치였다. 증상의 원인은 내장 파열. 수술 비용을 얼마든지 지불하겠다며 울부짖던 내게 수의사는 싸늘하게 맞받아쳤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고. 간이 터진 상태에서 조치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녀가 안락사 약물을 주사받던 그 시간에 나는 그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강아지의 빈 밥그릇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의 물건은 빨리 치워야 하는 법이라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밥그릇은 인간 자격을 상실한 내 자신의 불찰이자 어리석음의 상징이었다. 14년 동안 동반자로서 생활했어야 했을 강아지의 슬픔과 고통조차 헤아리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곱씹으며 난 그저 시커멓게 썩어내리는 진득한 고름을 움켜쥘 뿐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강아지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꿈 속에서 그녀는 다양한 얼굴을 한 채 날 찾아왔다. 때로는 젊은 날의 활기와 생명을 갖추고, 때로는 푸석푸석하게 쇠잔하고 퇴락한 모습으로. 꿈 속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맞이했다. 아니 맞이하려 했다. 무수히 나타나는 강아지의 얼굴 속에서 나에 대한 어떠한 애정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을 때까지.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난 그저 얼굴을 감싸 안은 채 긴 탄식을 흘렸다. 나는 슬퍼할 자격조차 없었다. 난 그녀에게 원수요 증오의 대상이었으니, 난 내가 미움받는다는 사실에 슬퍼할 자격도 없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어느 날, 마찬가지로 꿈에서 깨어났던 나는 마침내 강아지에게 용서를 빌었다. 미안하다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내가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허공에 낱낱이 고했다. 그 긴긴 고해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강아지가 너무도, 정말 너무도 사무치도록 보고 싶다.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무척이나 보고 싶다. 사과하고 싶고, 내 죄에 대해서 실토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에게든 동물에게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자기반성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나마 나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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