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왜 어린이의 믿음은 비웃고, 국가의 믿음은 존중받는가
우리는 흔히 아이들이 마법을 믿거나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미소 지으며 바라본다. 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나이를 넘긴 아이가 여전히 산타를 믿거나 염동력을 진지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를 유치하다고 비웃는다.
반면, 어떤 국가가 신의 계시에 따라 법을 만들고, 신의 뜻을 따라 전쟁을 결의하며, 종교적 신념을 국정의 근간으로 삼는 것은 '진지한 정치'로 존중받는다.
어째서일까? 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어린이일 때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국가나 정치 권력일 때는 존중받는가?
어린이의 믿음과 국가의 신앙 사이에는 내용 면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없다. 성경 속 하느님이 말 한 마디로 빛을 창조하고, 물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린다는 이야기와, 어린이가 공중부양이나 순간이동을 꿈꾸는 이야기는 모두 현존하는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경건하고 숭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다른 하나는 철없고 유치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 차이는 '논리의 차이'가 아니라 '힘의 차이'다. 어린이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이고, 반면 국가는 가장 강력한 권력 구조다. 결국 우리는 어떤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말했는가'를 기준으로 그 믿음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과 상상은 모두 인간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보이지 않는 것, 측정할 수 없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있다'고 믿는 마음. 이는 인간이 가장 고귀한 방식으로 세계와 접속하는 태도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의 상상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의 신앙조차도 권위로만 포장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그 둘은 실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차이는 권력과 위계가 만든 억압의 잣대이지, 진실의 차이가 아니다.
어린이의 믿음은 단지 유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희망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신앙의 본래적인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