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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서울 여행기4 -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서울 여행기 1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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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명경전에서 시연중인 몽금척 -

 

* 몽금척(夢金尺) : 태조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금자를 전해주었다는 내용을 악곡으로 만든것 


 

 

지난 글에서 조선 5대 궁궐에 대해 소개드렸습니다만

 

시간관게상 당일 저는 종묘 -> 창경궁 -> 창덕궁 -> 경복궁 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각 궁궐의 모든 전각과 권역을 다 돌아보지 못한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창경궁(昌慶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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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의 서북쪽 담벼락을 따라 창경궁(昌慶宮)으로 향합니다.


 한옥 형태의 상가와 돌바닥길을 걸으며 옛 수도의 정취를 한 껏 느끼면서 걷다보니 

 

저 멀리 창경군의 대문인 홍화문(弘化門)이 보입니다.

 

 

창경궁은 원래 세종이 상왕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을 성종 때 확장해서 개칭한 것입니다.

 

다른 궁궐이 보통 남향을 하고, 각진 모양으로 체계가 있는 반면,

 

창경궁은 주요 전각 배치가 동향으로 되어 있고, 좀 더 자연과 지형에 맞춰 자유롭게 되어있습니다.

 

창덕궁과 묶어서 동궐(東闕)이라 부르는데, 상징적이고 공식행사에 주로 쓰인 경복궁과 달리

 

 

동쪽 궁궐들은 생활공간의 면모가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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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문 건너 옥천교(玉川橋)아래에는 보기에도 시원한 맑은 물이 흐릅니다.

 

그 너머 명전문(明政門) 사이로 창덕궁의 정전(正殿)인 명정전(明政殿)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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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 월대 앞 좌우에는 정일품(正一品) 같은 글귀가 새겨진 작은 비석이 좌우로 늘어져 있습니다.

 

이를 품계석(品石)이라고 하는데, 의례가 있을 때 문무관료가 품계(정1품~종9품)에 따라 서는 장소입니다.

 

문반은 동쪽 품계석에, 무반은 서쪽 품계석에 서는데, 이 구분을 합쳐서 흔히 말하는 양반(兩班)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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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주요 전각은 평지에 덩그러니 있는게 아니라 

 

러한 1~2단의 네모난 돌 기단부 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돌로 이루어진 기단부를 월대(月臺)라고 하는데

 

달이 뜨면 달빛이 건물의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고 드리우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월대는 그 자체로 건물의 격과 장엄미를 높이고 의례용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월대 중앙에는 왕의 가마가 오르는 길인 답도가 있는데, 여기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서로운 영물로이며 임금을 상징합니다.

 

왕이 중국의 전설적 임금인 요(堯), 순(舜)과 같은 선정을 베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궁궐의 정전의 계단의 답도에 그려진 문양은 궁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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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정전(正殿 : 중심건물) 인 명정전입니다.

 

창덕궁 인정전이나 경복궁 근정전 만큼 크고 위엄있지는 않지만 

 

월대 위에 반듯하게 솟은 기둥과 다포형식의 공포(*그림 참조)의 단청은 매우 조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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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정전 내부의 가장 안쪽에는 붉은색으로 칠한 단상인 당가(唐家)가 있고 그 위에 옥좌(玉座)가 있습니다.

 

당가 위에는 아주 세밀한 다포양식으로 덮개를 씌우는데 이를 천개(天蓋)라고 합니다.

 

옥좌 뒤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오봉병(五峯屛)이 있는데 모두 상서로운 상징을 뜻합니다.  

 

명정전 내부의 천장과 기둥은 모두 단청으로 채워져 있는데, 색이 조금 바라기는 했지만 아직도 화려합니다.

 

상기한 내부 구조는 창경궁 명정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궁궐의 정전이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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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 월대 양쪽 끝에는 드므라는 청동 그릇이 있는데, 여기에는 화재를 대비한 방화수를 담는 곳으로,

 

실용적인 의미 보다는, 화마를 물리치려는 벽사(辟邪: 사악한것을 물리침)적 의미가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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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전 뒷편의 주요 전각들인 숭문당(崇文堂), 함인정(涵仁亭), 환경전(歡慶殿), 경춘전(景春殿)입니다.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공부)하던 곳이고, 함인정은 정자이며, 환경전은 임금의 침소입니다.

 

경춘전은 대비나 왕비가 살던 곳인데, 유명한 인수대비, 인현왕후가 머물렀고 

 

혜경궁 홍씨가 정조를 낳은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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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명전(通明殿)양화당(養和堂)입니다.

 

통명전은 왕비의 거처로 사용된 곳인데, 숙종 때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죽은 새나 쥐를 파묻었다가 쫓겨난 일화가 있습니다.

 

양화당은 통명전 바로 옆에 있는데, 인조가 여기서 정무를 보거나 청나라 사신을 접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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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복헌(集福軒)입니다. 후궁들의 거처로 사용된 공간인데, 영빈 이씨가 이곳에서 사도세자를,

 

 

수빈 박씨가 순조를 낳았고, 맞닿아있는 동쪽의 영춘헌(迎春軒)은 정조가 머물다 승하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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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명전 왼쪽에는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자경전(慈慶殿)터가 있던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 입구는 바닥이 경사진 거대한 암반 덩어리인데, 무척 신기했습니다.

  

자경전 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관덕정을 비롯한 정원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창덕궁 후원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시간관계상 창경궁 동편을 보지 않고 바로 창덕궁 후원쪽으로 향했습니다.

 

 

 

창덕궁(昌德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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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쪽에서 창덕궁 후원으로 진입하였으므로 관람은 돈화문부터가 아니라 후문쪽부터 시작합니다.

 

창덕궁도 북쪽에 후원이 있습니다만 시간관계상 후원은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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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후원쪽 입구에서 바라본 승화루(承華樓)일대와 세자가 머물던 중희당(重熙堂)터 입니다. 

 

왼쪽 긴 복도건물 칠분서, 중앙의 전각 삼삼와, 그리고 오른쪽의 승화루는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승화루는 1층은 책과 그림, 시문 등을 소장했고 2층은 독서 공간이었습니다.

 

이 전각은 대칭과 직육면체가 주를 이루는 궁궐 건축에서 꽤나 보기 드물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안타깝게도 낙선재를 둘러 승화루쪽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어서 외부만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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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각(誠正閣)은 세자가 공부했던 장소입니다. 

 

왼쪽에 누각이 붙어있는데 정면은 보춘정(報春亭), 왼편은 회우루(喜雨樓)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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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각 오른쪽 뒷편에 관물헌(觀物軒)이 있습니다. 순종이이곳에서 탄생했고


갑신정변때, 김옥균 등 개화파는 청군을 피해 고종을 이곳에 피신시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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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각 맞은편에 바로 전각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은 한 때 내의원으로 쓰였기 때문에 

 

 보호성궁(保護聖躬), 조화어약(調和御藥) 

귀한몸을 보호하고 약으로써 조화롭게 다스린다 

 

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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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일대입니다. 낙선재(樂善齋)는 본래 창경궁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창덕궁쪽에서 관리합니다.

 

헌종때 건립되었으며, 왕의 서재 겸 내명부의 높은 분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석복헌(錫福軒)은 후궁인 경빈 김씨를 위해 지었고, 수강재(壽康齋)는 순헌왕후를 위해 개수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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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5월 15일, 상궁들을 거느리고 낙선재로 돌아오는 순정효황후 -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이자 순종의 황비인 순정효황후가 1966년에 승하할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또한 영친왕덕혜옹주가 1962년과 1963년에 입국해 낙선재에서 머물다 세상을 떠나면서

 

낙선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족들과 운명을 함께 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미적으로도 상당히 특이한데, 궁궐 건물이면서도 단청을 사용하지 않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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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熙政堂)입니다. 본래 왕의 침전이었지만 주요 집무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복구하면서 같이 복구됐지만 이후에도 세 번이나 불타버렸고

 

1920년에 유리나 전등을 사용하는 등 서양미를 가미하여 지은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건물에 비해 보다 세련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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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정당 내부에 불을 밝힌 모습 (퍼온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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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이런... 희정당 뒤쪽 대조전(大造殿)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습니다. 

 

이 날은 왜 이리 공사하는 곳이 많은지... ㅠㅠ  대조전 건물 사진은 퍼온것으로 대신합니다.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이었는데,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난 장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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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덕궁 대조전 안쪽의 모습 (퍼온 사진) -


대조전은 1917년, 화재로 불타 없어졌는데, 지금의 대조전은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와 그 재료로 지은 것입니다.

 

따라서 내부는 희정당 내부처럼 서양풍이 가미되어 세련되게 꾸며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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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宣政殿)과 그 앞의 선정문(宣政門)입니다.

 

특히하게 선정문에서 선정전까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정전은 왕의 편전으로, 정무를 보거나 연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선정전의 기와는 청기와인데 현존하는 궁궐 전각 중 유일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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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을 나와 인정문 바깥 동문에서 진입하여 인정문(仁政門)을 거쳐 인정전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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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입니다.

 

명경전에서 보았듯 품계석, 월대, 내부의 당가 등 배치와 형식은 동일합니다.

 

명경전에 비해 그 크기가 훨씬 커서 위압감과 장엄함을 느낄수 있습니다.

 

정전 내부는 1907년 서양식으로 약간 개수하면서 바닥의 전돌과 전등이 설치되었습니다.

 

인정전 월대에서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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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서편에는 선원전(璿源殿)이 있습니다.

 

선원전은 원래 임금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왕실 내부의 사당입니다.

 

1921년에 일제가 창덕궁 후원의 대보단(大報壇: 명나라 황제를 제사지내던 곳)을 허물고

 

그 자리에 덕수궁의 선원전을 옮겨지으면서 이곳에 모셔졌던 어진을 그곳으로 옮겼기 때문에 

 

이곳을 구선원전, 새로 지은곳을 신선원전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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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 인상깊었던 억석루(憶昔樓)와 교각입니다.

 

억석루는 내의원에서 쓰던 건물인데, 복층인데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갈수 있습니다.

 

궁궐 건축에서 복층건물이 드문드문 있었으나 현존하는 복층건물이 많지 않고

 

실제로 계단을 타고 오를수 있는 것은 더욱 드물기에 꽤나 인상깊었습니다.

 

또한 서쪽 하천의 돌 교각은 장식용이나마 누각의 형태를 취하고 창문까지 달려있는게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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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이문원(摛文院)의 규장각(奎章閣)입니다. 

 

규장각은 각종 문서를 보관하고 경연을 열던 곳인데, 본래 창덕궁의 규장각은

 

후원의 주합루(宙合樓)가 그 역할을 맡았으나, 주합루의 규모가 커지자 이문원 쪽으로 옮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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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의 규장각 건물로 쓰였던 후원의 주합루 (퍼온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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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쪽으로 나가면서 창덕궁의 구경은 끝이났습니다.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경복궁(景福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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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지나 점심을 잠깐 먹고 광화문 광장쪽을 향합니다.

 

서울에 여러번 왔어도 광화문 광장은 처음 들릅니다.

 

사진이나 뉴스로만 보던 충무공, 세종대왕 동상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동상 뒤편에는 우뚝 솟은 북악산(北岳山)이 대궐 전역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조선 제일의 법궁(法宮)답게 제일 큰 대문인 광화문(光化門)의 웅장한 모습이 저를 반겨줍니다.

 

지금의 광화문의 틀은 흥선대원군때 재건된 것인데, 6.25 전쟁때 전각쪽이 파괴된것을 복원하였으나

 

그 형태가 고르지 못하여, 1990년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실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선대원군이 복원했던 당시의 그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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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까지 입구가 세 개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역시 <주례(周禮)>에서, 천자는 문을 5개, 궁궐 권역을 세 개로(오문삼조:五門三朝)

 

제후는 문을 3개, 궁궐 권역을 세 개로 한다(삼문삼조:三門三朝)에 의거한 것입니다.

 

최근에 다른 대궐과 달리 광화문 앞에는 월대(月臺)가 길게 나 있었던것으로 드러났는데

 

그 복원작업 중인지, 제가 갔을때 문 앞쪽에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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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원중인 광화문 월대의 복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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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다음 문인 흥례문(興禮門)의 모습입니다.

 

흥례문 역시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허물어졌다가, 1990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200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경복궁은 이 흥례문을 통과해야 본격적인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표를 문 앞에서 파는줄 알고 가까이 갔다가 매표소가 광화문 들어서 바로 옆에 있는걸 몰라서

 

멀리 뒤돌아 갔다 왔는데 저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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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례문을 들어서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금천(禁川)이 있고, 석재 다리인 영제교(永齊橋)가 나옵니다.

 

금천 좌우에는 물의 영물인 해태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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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까지의 마지막 문인 근정문(勤政門)입니다.

 

근정문은 다행히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느라 헐리지는 않았습니다.

 

근정(勤政) 명칭은 정도전이 처음 경복궁을 지을때, <서경(書經)>에서 따온 것으로, 

 

부지런히 정치에 임하라는 뜻이며, 즉위식 같은 행사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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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223호,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입니다.

 

넓은 월대 위에 높게 솟은 팔작지붕과 용마루 아래 다포양식의 복층 건축물입니다.

 

명칭의 유래는 근정문의 그것과 같으며, 다행히 대원군의 복원 이래 큰 훼손은 없었습니다.

 

조선의 궁궐 정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중에서도 손에 꼽힙니다.

 

규모 만큼이나 정교하고 장엄하며, 외부나 내부의 단청의 화려함은 가히 절정에 달합니다.

 

근정전은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고 국가의 큰 의식 및 신년하례를 드리는 장소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중앙 천장의 용 조각의 발톱 갯수가 7개라는 점인데,

 

사실 건축물이든 복식이든 5개의 발톱의 용 장식을 쓸 수 있는것 천자국인 중국밖에 없었습니다.

 

 제후국인 조선은 원래 발톱이 4개인 용 장식을 써야 했으나

 

조선은 용포(龍袍)도 오조룡보(五爪龍補)를 대놓고 썼고, 

 

황제만이 쓰는 ~조(祖), ~종(宗) 묘호를 유지했습니다.

 

이 근정전 천장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발톱이 천자보다 많은 7개인데

 

정도전이 지을때부터 그랬는지, 중건할때 새로 넣은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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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뒷편에는 임금의 평상시 집무실인 사정전(思政殿)입니다.

 

집무실인 만큼 여기도 내부에 일월오봉병과 옥좌가 있습니다.

 

1915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렸을때 전시실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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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 뒷편에는 임금이 잠자는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 있습니다.

 

강녕전 좌우에는 부속 침전인 경성전(慶成殿)연생전(延生殿)이 있습니다.

 

강녕전 건물 내부는 넓게 트인 대청마루로 되어있고, 양쪽은 온돌방인데

 

동쪽을 동온돌, 서쪽을 서온돌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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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 뒷편의 교태전으로 가는 양의문(兩儀門)인데, 특이하게 굴뚝이 양쪽으로 나 있습니다.

 

이 굴뚝의 용도는 바로 위에서 말한 강녕전 양쪽 온돌방에서 불을 땐 연기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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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입니다. 

 

역사적 풍운이 깊은 건물인데, 원래 처음에는 경복궁에 없던 건물로, 

 

세종때 집무실의 용도로 세워졌다가 대원군 때 중건되어 왕비의 침전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이후 불타고 재건되기를 두 번이나 반복하였다가, 

 

1917년 창덕궁 대조전을 지을때 재료로 쓰기 위해 허물렸습니다.

 

지금의 교태전은 1990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복원사업의 결과물로, 1995년 완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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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 뒤쪽에는 경사를 이용한 아미산(峨嵋山)이란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벽돌로 쌓아 십장생(十長生)을 새겨넣은 4개의 굴뚝이 있습니다.

 

아미산(峨嵋山)이란 명칭은 중국의 도교와 불교의 성지인 아미산에서 유래한것으로,

 

본래는 아미사(蛾眉砂)라고 불렸다가 대한제국때 아미산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십장생은 장수를 뜻하는 열 가지 자연물을 뜻하는데, 

 

각각 해와 산, 물, 돌, 불로초, 거북, 사슴, 학, 소나무, 구름입니다.

 

경복궁에서 주황색 벽돌은 교태전 뒷편 담과 굴뚝, 그리고 자경전 꽃담 등에 쓰였으며

 

붉은 색 나무와 초록색 단청으로 구성된 건축물과 달리 산뜻한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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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후원에 위치한 연못인 향원지(香遠池)향원정(香遠亭)입니다.

 

대원군의 중건 이후에 세워진 건물로, 인공섬 위에 있는 팔각형의 정자입니다.

 

주요전각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고, 주위에 나무가 적잖게 심어져 있어서

 

자연의 풍광과 건축물 자체의 멋을 한껏 담아낸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향원정은 2017년, 건물이 기우는 등 문제가 생겨서 전부 해체한 후 보수하여

 

2021년에 완료하였는데, 이 때 내부도 깔끔하게 마무리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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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 향원정 1층 내부 / (하) 향원정 2층 내부  (퍼온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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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정 서북쪽에는 집옥재(集玉齋)라는 복합 건축물이 있습니다.

 

원래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는데, 1891년에 이곳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다른 건물과 다르게 양식이 특이한데, 중국 청나라풍이고, 보기와 달리 2층 건물입니다.

 

왼쪽 팔각 누각인 팔우정(八隅亭)은 서재를 보관하던 곳이고 

 

오른쪽의 협길당(協吉堂)은 휴식공간으로, 세 건물 모두 복도로 이어져 있습니다.

 

고종은 이곳에 개화와 관련된 서적을 비치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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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쪽에서 돌아오는길에 만난 이 거대한 건물이 국보 제 224호 경회루(慶會樓)입니다.

 

교태전 서쪽에 있으며, 경복궁이 처음 지어질 때부터 누각으로서 지어졌으나

 

규모가 작고 하자가 있어 1412년, 태종 때 연못과 함께 건물도 크게 확장하였고

 

성종때 다시 한 번 재건축 하여 지붕은 중층이었고 돌기둥엔 용을 장식하여 매우 화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때 소실된것을 대원군이 다시 복원하였는데, 

 

지붕은 단층으로 바뀌고 기둥의 용조각은 없어졌으나 규모자체는 조금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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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는 현재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단일 목조 건축물 중 가장 부피가 큰 건물입니다.

 

건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 칸이라고 하는데, 

 

경회루는 정면 7칸(34.4m), 측면 5칸(28.5m), 높이 21.5m로서, 근정전보다 큽니다.

 

건물의 규모가 커질수록 얹어야 하는 기와 및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어려운데

 

이를 박공(牔栱)을 매우 크게 하고, 1층에 기둥을 다수 배치함으로써 해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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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근정전과의 박공 비교 -

 

1층의 돌기둥은 총 48개인데, 바깥의 기둥은 사각형이고, 안쪽은 둥근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圜地方)의 우주관을 담은것이며,

 

바깥 24개의 기둥은 24절기(節氣)의 계절관을 나타낸 것이고,

 

안쪽 24개의 기둥이 구성하는 12개의 방(方)은 1년을 구성하는 12달(月)을 뜻합니다.

 

이처럼 경회루는 단순히 큰 누각이 아니라 

 

당시 조선사람들의 세계관 및 시간관념과 건축역량이 두루 나타나는

 

역사적,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큰 건축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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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맞은편에는 임금의 집무실인 수정전(修政殿)이 있습니다.

 

원래 있던 건물은 아니고, 사실 그 유명한 집현전(集賢殿)터에 지어진 것입니다.


조선시대 궁궐 건물이 대부분 그렇듯 집현전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그 대신 대원군의 중건 때 지어진 건물입니다.

 

다만 중건 당시에는 200여 칸에 달하는 다른 건물들과 함께 지어졌는데

 

일제강점기 시절에 대부분 헐리고 수정전은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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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나오면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경복궁 탐방을 끝으로 이제 저의 서울 여행기는 끝이 납니다.

 

사실 중간에 북촌 한옥마을과 조계사를 들르기는 했습니다만

 

그것까지 쓰자니 분량이 너무 길어질것 같고, 따로 쓰기엔 애매해서

 

궁궐 탐방만 쓰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경희궁, 덕수궁, 사직단 외에도 가보고 싶은곳이 많았는데

 

들러보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이번 서울 여행을 통해서 저는 여러가지 경험을 했고


좁은 견문을 좀 더 넓힐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궁궐 뿐 아니라 서울에는 많은 역사와 문화, 이야깃거리가 있고


이것들을 두루 살펴보는 일은 일생에 한번은 해볼만한 일인것 같습니다.



스크롤과 데이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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