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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서울 여행기1 - 국립중앙박물관




사람이 사는 집에는 문이 여럿 있습니다.


방에 방문이 있고, 방문을 나서면 현관문이, 그 다음은 대문이나 아파트 입구겠지요.


문을 나선다는 것은 편한 휴식공간과 안전한 공간을 벗어난다는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문을 벗어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서울 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서울에 안 가본건 아니지만, 몇 번 일만 보고 급하게 내려온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멀리 가는데는 시간과 돈이 들고,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서울에 갈 결심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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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동대구역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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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고층 빌딩과 많은 사람과 차들을 보니 서울에 왔음을 직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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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국립중앙박물관 남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입장까지 시간이 있었기에 주변을 둘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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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 전시실 남쪽에는 비석과 승탑이 몇기 있습니다.

 

승탑은 부도(浮屠)라고도 하는데 주로 고승의 시신을 다비(화장)하여 그 사리나 유골 등을 안치하는 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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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까지의 유물들입니다.

 

역사시간에 배우신대로 익숙한 유물들일것입니다.

 

신석기 때 농경이후 청동기 때 지배계급이 생겨나면서 초기 성읍국가들이 발생하고, 

 

철기시대가 되면서 점차 고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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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의 유물들입니다. 역시 익숙하실 것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앙집권화를 이룬 후 왕권을 강화시켜 나가면서

 

유물들도 화려장엄하고 섬세해집니다.

 

그 발전양상은 중국에서 도입된것을 쓰다가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또 삼국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형태가 됩니다.

 

신라의 경우 지리적으로 백두대간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불교와 선진제도의 도입이 가장 늦었으나

 

그 덕분에 오히려 독자적 특색을 가장 많이 갖추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돌무지덧널무덤의 무덤형태와 신라의 금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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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전시실 1층 끝에는 커다란 석탑이 통째로 건물 안에 있습니다.

 

그 형태가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운 경천사지 십층석탑입니다.


탑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들어왔는데, 처음에 목탑이 유행하다가 점점 석탑으로 형태가 바뀝니다.

 

이 석탑은 목탑의 형태를 본따 대리석으로 겹 구조로 조각하였으며 

 

각 층에 현장법사의 구법기, 불보살과 신장상 따위를 섬세하게 새겨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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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청자와 고려시대 청동 범종입니다.

 

도기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섬세한 기술로 만든것이 자기인데, 

 

당시 송나라와 고려에서밖에 만들수 없었던 고급 기술입니다.

 

특히 고려청자는 그 은은한 비취색과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넣는 상감기법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습니다.

 

범종은 불교의식에서 쓰이는 법구인데, 고대 중국의 악기인 용종(甬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종은 그 처음의 용종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고, 소리가 청아하여 동양 삼국 중 으뜸갈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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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19호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입니다.

 

539년, 고구려에서 만들어졌으며 1천구의 동일한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 불상은 그 중 29번째 입니다.

 

고대 삼국시대에는 이런식으로 작은 입불상을 많이 만들어서 소지하여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이 불상의 의의는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불상 중 가장 연대가 오래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불상의 광배(불상 뒤의 넓고 크게 펼쳐져 불꽃형태로 조각된 부분) 뒤에 그 연도와 제작이유가 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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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 1359호, 경주 감은사지 동탑에서 출토된 사리 장엄구와 그 내용물입니다.

 

사리(舍利)는 보통 부처나 고승을 화장한 후 남은 유해나 구슬같은 결정체를 말하는데,

 

특히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사리는 불사리(佛舍利), 법신사리(法身舍利)라 하여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인도에서 석가모니를 화장할 때 왕들이 모여서 서로 사리를 차지하겠다고 다툴 정도 였으며

 

동양 삼국에서도 사리를 안치하는것은 왕실이나 유력귀족의 힘 없이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탑은 바로 이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장소이고, 사리장엄구는 그 사리를 탑에 넣을때 사리를 넣는 상자입니다.

 

이렇게 사리의 위상 때문에, 사리장엄구도 매우 아름답고 섬세하게 제작된 것이 특징입니다.

 

사리장엄구로도 모자라서 그 안에 유리 정병과 유리 그릇까지 받쳐놓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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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대로 전 보원사 철조여래좌상(8세기), 춘궁리 철조여래좌상(10세기), 현 보원사지 철불좌상(10세기) 입니다.

 

탑과 마찬가지로 불상도 여러가지 재질로 주조하였는데, 삼국시대에는 구리나 황금을 썼지만

 

고려시대로 오면서 철과 석재를 쓰고, 목재나 흙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불상은 어떤 존재를 표현하느냐에 따라 '약사불, 석가불, 지장보살, 관음보살' 등으로 부르는데

 

이는 입은 옷과 성별, 그리고 손의 모양(수인)을 보면서 구분합니다. 

 

또한 앉았는가(좌상), 서있는가(입상), 걸터앉아 생각하는 모습인가(사유상), 누웠는가(와불)로 구분하고

 

그 재질과 제작기법에 따라 흙(소조불), 나무(목불), 구리(금동불), 철(철불), 삼베(건칠불) 등을 구분합니다.

 

따라서 총 명칭은 위 구분을 모두 합하여 부르게 되는것입니다. 

 

EX) 금동(재질) 약사여래(부처의 종류) 좌상(형태) 

 

특히 철불은 통일신라부터 등장하였는데,

 

맨 위의 철불은 석굴암 본존불과 유사하여 그 시기와 비슷한 때에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라왕실이 점점 몰락하고 고려가 들어서면서 지방의 유력 호족들이 독자적으로 철불을 제작하였고, 

 

그 형태는 점점 커지고 투박해집니다. 맨 마지막 불상을 보면 아실수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야외에 거대하고 투박한 석불상도 고려시대에 주로 만들어지는데, 

 

대표적인게 관촉사 미륵보살 입상입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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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박물관에 온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이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함입니다!

 

 머리에 각진 관을쓰고 좀 더 날렵한쪽이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고

 

좀 더 노란색을 띄고 있는 쪽이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입니다.

 

이 두 불상은 2층 '사유의 방'이라는데 딱 두 구가 있으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오라를 내뿜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석가모니가 왕자시절에 생각하던 모습을 표현하던 것이라는 설과, 

 

미륵보살을 표현한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이란 명칭은 반쯤 걸터앉아 손가락 한쪽을 뺨에 살짝 대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생각하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래되었습니다.

 

한참 멍하니 보고 있으니 너무 신비롭고 감격적이었습니다.

 

다만 사진이 왜 이리 흐리게 찍혔는지 안타습니다 ㅠㅠ

 

다음에 또 가서 더 좋은 사진을 찍고 말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올린 유물이 대부분 불교관련 유물입니다.


그건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왕조에서


불교를 숭상했고, 심지어 배불숭유가 기본이었던 조선에서도


왕실 차원에서 불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적이 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 기독교가 모든 문화전반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영향이 막대한것 처럼


불교문화는 중앙~동 아시아 전반에 걸쳐, 특히 동양 삼국에서는 빼놓을 수없는 필수요소입니다.


이것이 불교관련 유물이 많은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역사를 전공한 저의 개인적인 관심사기 때문입니다. (중요&사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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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로 챙긴 자석카드와 피규어(?)입니다

 

아아 이것은 좋은 덕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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