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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데굴데굴 페이퍼 스튜디오 - 안도르의 전설


용어에 대한 이해는 서로가 다를 수 있어도, 롤플레잉 게임(Role-playing Game, 이하 약칭 RPG)이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용사, 마법사, 성직자, 도둑 등이 여행을 떠나 괴물을 물리치고 성장해나가는 모습 말이다. RPG는 말 그대로 역할 연기 게임이라는 뜻이다. RPG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은 1974년에 <던전 & 드래곤>이 등장한 이후다. 당시의 RPG는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 아날로그 게임으로 구현되었다. 한 사람의 게임 마스터가 주관하는 가운데 플레이어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시나리오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맡아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게임에서 현재 RPG의 경험치와 레벨업, 캐릭터의 성장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이 RPG를 비디오 게임으로 구현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고, 이렇게 발전한 것이 현대의 RP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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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라는 장르는 많은 사람을 매료했고 지금까지도 비디오 게임의 주류 장르이지만, 크리스 크로퍼드를 위시해 컴퓨터 게임의 역사를 주시해온 여러 컴퓨터 게임 관련자들은 RPG라는 장르에 대해 "너무 빨리 완성되어 버렸다"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RPG라는 말은 이미 어떤 형식으로 완고하게 정의되어 있고, 그렇기에 장르 자체의 발전이나 개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에 처음 만들어져 현재까지 애용되고 있는 라는 간단한 RPG 제작용 툴의 존재가 RPG가 이미 완성된 완고한 구조임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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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렇게 완고한 구조의 게임에 여전히 사람들이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릭터 육성의 즐거움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이름 그대로 롤플레잉, 다시 말해 역할 놀이의 즐거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의견 모두가 타당한 의견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라, 그 둘이 지향하는 바가 같기 때문이다. 내가 전사•마법사•도둑 등이 되어 여행을 떠나고 성장해가는 것. 이를테면 동화 속으로 떠나는 모험 같은 것이 바로 RPG가 주는 감정이다. 수많은 RPG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것도 괜한 이유가 아니다. 더 부끄러워하고 덜 부끄러워하고의 차이뿐이지, 동화 속 모험에 대한 낭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RPG에 느끼는 낭만은 매한가지란 소리다. 그러니 설사 장르적 변화는 없을지언정, 어느 시대나 RPG는 반가운 게임이다. 앞서 말했듯 RPG는 본래 아날로그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날로그 게임과 비디오 게임의 관계가 늘 그러하듯이, 비디오 게임에서 완성된 RPG의 형태를 보드게임이 모방하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다. <글룸헤이븐>이나 <디센트> 같은 게임이 그렇고, 8~90년대에 문구점에 쌓여있던 RPG 형식의 저가 보드게임들이 그렇다. 하지만 RPG의 미덕이 낭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낭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보드게임은 역시 <안도르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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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보드게임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를 꼽는다면 누굴 꼽을 수 있을까? 그것도 보드게임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로 한정해서 말이다. 과거에는 프란츠 포빙켈이나 도리스 마테우스 같은 분이 자주 거론됐다. 프란츠 포빙켈 작가는 <푸에르토 리코>나 <피렌체의 제후> 등의 디테일한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고, 도리스 마테우스 작가는 <엘 그란데>나 <치킨차차> 등의 선 굵은 그림이 일품인 화가다. 그 외에도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취향에 따라 여러 사람이 입에 오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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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취향에 관계없이 보편적인 시선에서 누가 봐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로는 역시 미하엘 멘첼 작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석기시대>, <카탄> 등의 일러스트가 이 작가의 작품인데, 그림 자체도 미려하지만 게임판에 게임의 진행을 위한 인터페이스의 여백을 잘 배치하는 등 기능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도 뛰어나다. 작가 본인이 보드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미하엘 멘첼 작가가 2012년에 가족이나 어린이들과 격의 없이 즐기기 위한 RPG 풍 게임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안도르의 전설>이다. 이 게임이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미하엘 멘첼 작가가 게임 규칙만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게임 속에 사용할 모든 그림도 같이 그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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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판타지 RPG 스타일 보드게임이라면 역시 미술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세계의 구조에서부터 형상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적인 요소다. 실제로 <안도르의 전설>은 구성물에 플라스틱 조형물을 배제했음에도 아트워크의 힘이 충분히 느껴지는 게임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보다도 더 매력적인 점은, 이 게임이 보편적인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함께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게임이라면 흔히 있는 장벽들, 예컨대 복잡한 규칙을 숙지하고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통해 에러 플레이를 잡아내야 하는, 그런 허들이 거의 없다.

이런 점은 규칙서에서도 드러난다. <안도르의 전설> 규칙서에서는 구성물 명칭 등 기본적인 부분만 가르쳐주고, 세세한 게임 규칙은 게임을 하면서 배우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경험자 없이도 게임이 부드럽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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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한 만큼, 협력을 통한 공략을 중시한다. 게임 내 플레이어 성장 요소나 관리할 자원•장비•아이템 같은 것은 많지 않고, 그보다는 플레이어들이 역할을 나누어 함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게임의 밸런스가 절묘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 어렵든 쉽든 공략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보아도 된다. 이 절묘한 밸런스가 가족 게임으로서의 장점으로 작용하는데, 바로 어린이 플레이어의 발언을 끌어낸다는 점이 그것이다. 보통 협력게임을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할 때, 어린이 플레이어는 패인 분석이나 승리 전략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어린이 플레이어도 여러 가지 분석을 충분히 해낼 수 있기에 게임의 주도권이 치우치지 않는다. <안도르의 전설>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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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든 어린이든 누가 누구를 끌어주는 것 없이 각자의 개성을 발휘해 협력해나가며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 성인에게도 너무 유치하지 않고 어린이에게 너무 어렵지도 않으며 모두가 의견을 제시하며 함께 발을 맞추어나갈 수 있다는 점. RPG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모험을 해나가는 그 느낌, 말 그대로 RPG의 낭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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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살짝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다. 5번째 전설까지 공략을 끝내고 나면 이미 스토리도 다 아는 데다가 처음부터 다시 게임을 시작하면 전에 했던 대로 공략하면 되기 때문에 재도전 시 다소 시시해지는 감이 있다. 그나마 3번째 전설이 여러 번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상정하고 변수나 접근 방법을 조금 다양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쉽기는 하다. 이 아쉬움을 보완하는데 필요한 것이 <안도르의 전설 확장: 새로운 영웅들>이다. 이 확장판은 5~6인 플레이를 위한 확장판이기도 하고,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져있기에 캐릭터와 난이도를 바꿔서 여러 번 재도전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의 수가 많아진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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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르의 전설 확장: 별빛 방패>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확장판에서는 6번째 전설이 추가되는데. 기본판의 3번째 전설처럼 여러 번 도전할 수 있는 시나리오면서 재밌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거기에 기존 전설들에 환경 변수와 추가 미션을 조합해서 같은 전설도 다른 조건으로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추가 모듈이 들어있다. 캠페인을 끝까지 한번 마치고 나면 이 6번째 전설 중심으로 반복하며 변함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제 슬슬 새로운 모험을 떠나고 싶어졌다면, 이 이야기의 2부인 북부를 향한 여정을 떠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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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르의 전설 확장: 북부를 향한 여정>에서는 새로운 영웅과 새로운 모험을 만나게 된다. 무대는 제목 그대로 북쪽 바다다. 2부에서는 전투에 대한 제약은 좀 줄어들지만, 시간적 압박은 더 커진다. 영웅들이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배라는 수단이 생겼기에 협력 요소는 더 강화되었고, 강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탐험하는 느낌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논리 퍼즐 느낌도 1부보다 강해져, 조금 더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 1부도 이상적인 협력게임이었지만, 2부에서는 다른 협력게임에서는 느끼기 힘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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