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언테임드의 동물원 경영 완전 정복 1편
[아크 노바는 이렇게 들어 있다.]
1. 통한의 첫 패배, 그리고 깨달음
아크 노바 첫 게임의 패배, 평범하게 진 것도 아니라 꼴등으로 패배한 치욕의 기억은 제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 과연 좋은 동물원을 만든 것이었을까요? 첫 게임에서 지상 최대 동물 아이스크림 가게를 표방했던 저의 ‘애니멀라빈스 31’는 전국 어떤 동물원보다 아이스크림 가게가 많은 동물원이었습니다. 당연히 수입도 가장 많았죠. 그러나 ‘돈을 많이 벌어들인다’… 그것은 ‘좋은 동물원’이 되는 것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 다음에는 정말로 좋은 동물원을 만들자. 장사치가 아니라, 귀여운 동물도 많이 키우고 동물 보호 프로젝트에도 많이 기부해서 지속 가능한 국제 생태에 기여하는 학자가 되자!’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좋은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의지가 아닌 다른 것이었습니다. 게임을 할 수 있는 샘플이 없었기 때문이죠…!
이 당시에는 회사에 샘플이 딱 하나 들어와 있는 데다가, 출시 전부터 뜨거운 긱 평가에 힘입어 관련자들이 모두 한 번이라도 만져 보겠다고 난리인 탓에 저는 첫 테스트 플레이 이후 거진 2주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습니다. 규칙서를 읽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섀도우 복싱을 하며, 다음 플레이에서 시도할 최적의 전략을 세우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화요일 저녁 7시, 모든 것이 준비된 게임 룸. ‘아크 노바’의 2회차 플레이가 시작되었습니다.
2. 동물원의 여명
그날의 파티는 ‘찰리’(첫플), ‘설감독’(2회플), ‘사딕’(3회플), 그리고 저(2회플)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크 노바’를 처음 플레이하는 ‘찰리’를 위해 주요 규칙 설명부터 진행했습니다. ‘아크 노바’의 규칙 설명 시간은 약 20~30분으로 생각보다(?)는 길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요소가 잔뜩 들어가 한 손에 들기 어려운 무게감을 자랑하는 전략 게임이기 때문에 설명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게임 속 방대한 요소요소를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도 1회차에는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게임 중간에 일련의 트리거로 인해 버려야 하는 개인 목표 카드의 존재 같은 건 실제로 잊어 버리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찰리’는 딱 20분 설명을 듣고는 아주 당차게 “까짓거 해보면서 배우죠”라고 상당히 건방진 제스쳐를 취했습니다. 그는 아직 이 ‘아크 노바’ 속에 도사린 동물원 경영의 어둠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게임을 시작하고 우리는 각자 개인 판을 가져갔습니다. 개인 판은 양면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 면은 초보자용 개인 판으로 판의 모든 구성이 동일합니다. 그 반대 면은 판마다 다른 능력과 보상 체계를 가지게 되어 있는 고급자용 개인 판이고요. 오늘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1회플, 2회플, 3회플 플레이어일 뿐이었지만 '그런 걸 생각하면서 게임했다면 언제까지고 초보자에 머무를 뿐'이라는 게이머 코드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고급자용 개인 판을 깔았습니다.
개인 판의 능력은 상당히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어떤 판은 수입을 크게 키울 수 있고, 어떤 판은 동물 카드를 내려놓는 조건을 완화해주기도 해서 초반 전략에 제법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손에 든 카드가 잘 풀렸을 때뿐입니다.
3. 사람이 미래다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전략 게임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세워둔 전략이라는 것은 첫 차례에 카드를 받아 손에 드는 순간, 깨지기 마련입니다. 이 진리에서는 저도 결코 벗어날 수 없었죠.
게임 시작 전까지 제 목표는 분명 ‘귀엽고 깜찍한 새끼 동물들이 들어간 동물 체험관을 유치해서 높은 매력 포인트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신 제 손에는 오직, 사람… 사람만이 들려 있었고, 저는 과감하게 손에서 쓸데없는 카드를 모두 버렸습니다. 제 키카드는 사람, 아니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문가’였거든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문가’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이콘을 플레이할 때마다 손에서 카드 한 장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문가의 아래에 놓으면서 티켓 파워 2장을 획득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이 동물원에 입양되면 이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유능한 전문가를 가지고 있어서 티켓 파워를 꾸준히 올릴 수 있다’는 설정인 것 같은데, 문제는 제가 처음 받은 손 패에 동물 카드 중 초반에 실제로 내려놓을 가능성이라도 있는 카드가 단 1장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제 개인 판의 능력은 연구 기관으로, 플레이 조건 중 한 개를 무시하게 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대개 이런 능력은 중후반에 커다란 동물 카드를 적극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죠…
쉽게 말해서 개인 판 능력과 손에 잡힌 카드가 얼기설기 따로 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제 동물원은… 동물을 단 한 마리만 입양한 채로 중반을 맞이했습니다.
그럼에도 초반의 기세에서 저는 절대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남방물개 단 1마리에 대한 설명만으로!
동물원 전체 수익을 이끈 전설적인 여걸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문가’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3마리나 잡아먹… 아니, 남방물개에 대한 큐레이팅을 잘 진행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문가]
게임 초반에 무지성 동물 입양이 어려운 게임의 메커니즘 상 빠르게 티켓 파워를 획득해 돈을 끌어모으는 것이 꽤 유효한 플레이였고 저는 꽤 아슬아슬했지만, 초반부 게임의 리드를 가져가는 듯..? 보였습니다.
4. 중간 점검
중반이 되면 게임의 초반과는 다르게 플레이어가 각자 자체적인 엔진을 설계하고 이것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로 업그레이드되었느냐가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제 개인 판에는 아직도 남방물개 한 마리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문가’ 선생님뿐… 남방물개 이후 동물 영입이 싹 끊긴 저의 애타는 상황과 달리 다른 플레이어들의 동물원은 뭔가 ‘자세’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찰리 – 건설직 ‘엔지니어’를 바탕으로 한 동물 우리 사업 전문
[딱 봐도 건설 업그레이드부터 진행한 찰리]
사딕 – 작고 소중한 소형 동물, 파충류 중심 동물원
[파충류 전용관에는 작은 파충류를 공간 낭비(?)없이 낑겨서 영입할 수 있다.]
설감독 – 다행히 나만 망한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의 동물원
[염소와 수마트라 호랑이가 공존하는 기괴한 동물원 생태 전략이 돋보인다.]
여기까지 왔을 때, 제게는 2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전략에 편승해 다른 동물을 추가 영입해 대형 동물을 키우는 형태의 동물원이냐, 아니면 동물 영입은 완전히 포기하고 과감히 자매 대학과 교류 행사, 학술 연구 사업, 동물보호협회 로비로 돌아서 무늬만 동물원으로 살아갈 것이냐…
제 결정은 여러분은 모두 아실 겁니다.
동물원 경영이 힘들 때,
카드 드로우에 의지하는 건 3류
동물에 의지하는 건 2류
‘협회’에 의지하는 것이 1류라는 걸 말이죠.(그냥 선택지가 없었음)
그렇게 사실상 동물은 없이, 협회에 구걸해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수라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게임 초반 아닙니다. 게임 중반까지 말아 먹어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겁니다.]
5.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이 게임의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저 같은 정신 나간 전략을 대놓고 노려도 어떻게든 게임이 굴러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게임이 종반에 이를 때까지 다른 동물을 거의 내려놓지 않고 버텼습니다. 이를 꽉 깨물고 3파워 행동, 2파워 행동을 중심으로 당면한 동물원 경영 문제만 해결할 수 있는 ‘근시안 전략’을 구사했죠. 다른 사람들은 카드를 10장씩 내려놓을 때도, 저는 단 5장만 내려놓은 상태에서 꾸역꾸역 협회에 출석하고 동물보호에’만’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게임 종반.
저는 ‘아크 노바’에서 이 부분을 가장 사랑합니다.
‘아크 노바’의 종료 트리거는 돈을 버는 주요 수단인 ‘티켓 파워’ 점수와 동물 보호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프로젝트 점수’가 교차하는 순간 발동됩니다. 이 교차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꾸준히 티켓 파워와 프로젝트 점수를 벌어들여 마지막 순간에 터뜨릴 엔진을 준비해야 하는데, 강력한 효과로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아크 노바’의 행동력 시스템상 게임의 종반에는 정말 불꽃 튀는 눈치싸움이 벌어집니다.
따라서 게임의 끝에는 모두가 ‘이번 라운드에 4파워 액션으로 XX를 하고, 그다음 5파워 액션으로 OO을 하면 최고 점수다’라는 생각을 하고, 최적의 루트를 짜는 동안 다른 사람이 점수를 덜 받게 될 가능성은 있는지 가늠하기 시작하게 되죠. 보통은 말입니다.
저는 앞서 말했듯이 '정상적인 엔진 빌딩'을 포기하고 당면한 문제만 해결하는 '근시안 경영'을 진행했습니다. 이 경영 방침의 장단점은 명확합니다. 후반의 폭발적인 추진력과 높은 점수를 포기하는 대신, 종료 트리거를 향해 꾸준히, 엉금엉금 기어가 다른 플레이어의 '완벽한 전략'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전에 게임을 끝내 승리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제가 동물 영입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협회에 로비를 시작하면서 보호 프로젝트 점수를 빠르게 올리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중이떠중이처럼 2, 3파워만 꾸역꾸역 쓰며 ‘엔진 빌딩 게임에서 엔진 빌딩을 포기한’ 제가 어느새 종료 트리거를 발동하기 직전이 되었으니까요.
뒤늦게 사딕은 협회의 기부 트랙을 따라 들어오기 시작했고, 설감독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장 쓸 수 있는 강력한 콤보를 대거 뿌리기 시작했으며, 찰리는 동물원의 모든 칸을 덮으면서 어떻게든 점수를 복구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종료 트리거가 발동되면 어지간히 우수한 엔진을 만들어서 언제든 점수를 받아 튀어 나갈 준비를 마친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게임 종료 트리거가 발동된 시점에서 ‘최고 콤보’를 만들기 위한 차례가 1턴 정도 모자라게 됩니다. 당연히 저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대로 게임이 끝난다면 이길 수 있다. 최고의 동물원도 꿈이 아니다!하는 내면의 외침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죠.(사실상 동물원 아니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문가 거처임.)
[이렇게 점수 말 2개가 서로 교차하면 게임 종료 트리거가 발동되고, 마지막 차례까지 게임을 진행한다.(노란 색이 접니다)]
하지만 동물이 없는 동물원은, 동물원이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1등 하지 못했습니다. 소형 동물을 잔뜩 영입하면서 적은 공간에 동물들을 잔뜩 낑겨 넣은, 사실상 동물권 탄압의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사딕이 16점으로 1등, 동물보호에 앞장서며 세계의 많은 보호 프로젝트를 지원한 저는 14점으로 게임을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옆에서 찰리가 “아, 엔지니어 빨리 내려놓고 전략 흐름 잡았어야 됐는데” 하며 탄식했고, 설감독이 “조류 콤보 한 번 빼고 다 망했어!”라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안에 가장 큰 소리는 ‘아, 다음 판에는 무조건 더 잘할 수 있는데’였으니까요.
[아쉽게도 패배하고 말았다…/ 빨간 색이 사딕, 노란 색이 GM언테임드...]
6. 마치며
좋은 전략 보드게임의 끝맛은 대개 ‘다음 판에는 무조건 더 잘할 수 있는데’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크 노바’는 정말 우수한 게임입니다. 한 차례 한 차례가 아주 빡빡한 게임의 메커니즘 상 어떤 행동의 효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휘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게임인데, 묘하게 게임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최적의 효율을 발휘하는 차례를 맛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아, 이런 식의 차례를 여러 번 했으면 이기는 건데!’ 하는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이 기억이 곧 ‘다음 판에는 무조건 더 잘할 수 있다’로 변해 다음 게임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게임 룸에서는 계속 ‘아크 노바’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샘플을 하루라도 가만히 놔두는 날이 없을 정도로 코리아보드게임즈 하비게임본부를 뒤흔든 ‘아크 노바’가 곧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제 다음 동물원은… 유인원 전문 동물원입니다!
아크 노바, GM언테임드가 추천합니다.
평점 100점 만점에 1,100,000점
Seal Of Australia
* 개인 판 퍼즐 요소도 무척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 ‘아, 난 이런 취향 아닌데’하는 분들도 아크 노바는 한 번 플레이해보시는 것이 어떨지?
*** 동물 사진이 생각보다 귀엽습니다.
**** 참고로 찰리는 3등인가 했습니다. 첫플에 점수가 양수로 난 것이 대단했습니다.(저는 첫플 -22점)
https://www.divedice.com/board/?mari_mode=view@view&db=basic_15&no=14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