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미국인인 보드게임 디자이너 조셉 Z 첸의 본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시애틀에 살고 있는 첸은 낮에는 본업을 하고 있지만, 밤에는 다양한 보드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전형적인 보드게임 유저였습니다.
2015년 11월, 그가 살던 시애틀은 겨울철에 외부활동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던 터라 첸은 동료들과 함께 실내에서 할만한 창조적인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인 저스틴 폴크너(역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입니다)와 함께 보드게임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게임들로는 [카탄], [7 원더스], [에일리언 프론티어] 같은 게임들이 있었고 첸과 폴크너가 기획한 아이디어도 이런 정도의 분위기의 게임들이었습니다. 당시 초기 디자인에 도움을 주었던 앨런 티엔이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이 시작되었던 11월 18일, 친구들에게 보냈던 트위터 멘션은 판타스틱 팩토리의 초기 버전이 어떤 게임들을 참고해서 지향점을 잡고 있었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따라서 첸의 게임이 주사위 배치 게임이 될 것은 확실했습니다. 카드 위에 배치된 주사위로 효율을 내서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이었고 초기 당시에는 아무 테마도 없었습니다. 어떤 경로를 거쳐 만들어진 엔진을 가동시키면 보석을 점수로 받는 방식이었는데, 여기에 엔진으로 점수를 내기 위해 투입시켜야 하는 자원에 대한 아이디어도 오갔습니다. 초기에는 다양한 자원들을 계획했지만, 결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자원으로 압축을 했는데 여기에는 PC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의 미네랄과 베스펜 가스 두 종류의 자원이 약간의 차별된 가치를 갖고 효율적인 운용을 하게한 방식이 레퍼런스가 되었습니다. (후에 이 자원이 금속과 에너지가 됩니다.)
이후 2년 반동안 디자인과 발란스를 계속 맞춰온 첸과 그의 팀은 개발중인 게임을 판타스틱 팩토리라는 이름으로 지역 게임 디자인 공모전이었던 NW LUCI Award에 응모해서 수상했습니다. 다만 이 수상과 동시에 추가적인 피드백들이 많이 들어왔으며 이에 따라 역시 대대적인 발란스 수정이 이뤄졌습니다.
킥스타터로의 여정
판타스틱 팩토리는 킥스타터 프로젝트에 있어서 굉장히 입지전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2018년 첸과 그의 팀은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팩스 언플러그드' 행사에서 부스를 열기로 했고, 행사 참가 바로직전에 킥스타터를 런칭했습니다. 이때 첸은 프로젝트 런칭을 위해 '메타팩토리 게임즈'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했습니다.
이 시기즈음의 킥스타터는 대부분 전문 제작사나 퍼블리셔를 동반한 경우가 아니라면 페이지 구성 등에 있어서 단촐한 경우가 많았지만, 판타스틱 팩토리는 게임 소개에 많은 공을 들여서 상세한 설명은 물론이고, 게임 자체의 흐름이 퍼즐과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몇 장의 카드, 주사위 결과와 자원들을 보여준 뒤, 특정 결과를 만들어보는 퀴즈를 킥스타터 페이지에서 소개하면서 분위기를 돋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아울러 시기 상으로도 킥스타터 런칭 후 규모 있는 컨벤션 행사에서 게임을 시연할 기회를 가지면서 타이밍까지 맞아 초반 후원자들이 많이 몰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메타팩토리 팀에는 또다른 호재가 있었습니다. PAX 행사에서 시연 게임을 눈여겨 본 미국 제작사인 딥 워터 게임즈가 이 게임의 유통을 맡기로 한 것입니다. 독립 스튜디오가 킥스타터 런칭 후 좋은 초반 반응을 얻은 후 기성 업체를 통해 유통이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판타스틱 팩토리 역시 딥 워터 게임즈와의 협업을 통해 펀딩 후반까지 더 많은 홍보의 장을 열 수 있었습니다.
출시 후
킥스타터 제품이 배송된 2019년, 제품을 받은 후원자들은 디자이너의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로 기대 이상의 게임성에 많은 호평을 했습니다. 일단 디자이너가 계획했던 '규칙은 쉽지만 플레이를 해가면서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든다'는 원칙에 충실한 점이 게임에 대해 제일 호감을 갖게한 부분이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처음에 단 3가지 종류의 공장 본부로 시작을 하지만, 주사위를 통해 자원 (금속과 에너지)과 카드를 모으면서 손에 있는 카드를 공장 지대에 설치합니다.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점수로 직결되기 때문에 최대한의 효율로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대안으로는 점수를 주는 조형물을 많이 짓는 방법도 있습니다.
건물의 건설과 이용은 원하는 순서대로 합니다. 따라서 게임 플레이의 자유도는 높지만, 그만큼 많은 궁리를 해야 합니다.
게임은 크게 두 가지 단계인 '시장 단계'와 '작업 단계'로 나뉘는데, 시장 단계에서는 차례에 따라 비정규직을 고용해서 이번 라운드 동안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도모하거나, 공개된 청사진 카드 중 한 장을 가져옵니다.
이 시장 단계를 제외하면 작업 단계는 실질적으로 (양심적으로 플레이 한다면) 동시 진행이 가능합니다. 이는 조셉 첸이 의도한 것으로 숙련자들의 경우, 작업 단계를 동시에 진행한다고 했을 때 게임 시간이 무척 짧아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5인까지도 가능한 게임인데, 동시 진행을 할 경우 사실상 가장 느린 한 명의 진행 시간 만큼만 진행되기 때문에 게임 시간의 단축은 엄청난 수준입니다.
게임의 쾌감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공장 시스템을 돌려가면서 점수를 마치 월급처럼 받는, 아니면 월급처럼 받는 자원들을 통해 점수가 되는 건물들을 차곡차곡 만드는 재미에 있습니다. 이렇게 진행하면서 상품 점수가 12점이 되거나 건물을 10개 짓는 사람이 생기면 한 라운드만 더 진행을 하고 게임이 끝납니다.
솔로 규칙
사실 조셉 첸은 판타스틱 팩토리 게임 디자인을 하기 이전에 1인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판타스틱 팩토리에 1인 규칙을 넣기로 한 것은 어느 정도 마케팅 측면에서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플레이 가능한 인원수가 늘어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판타스틱 팩토리 자체가 퍼즐 스타일의 게임으로서 1인 규칙을 만들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도 1인 규칙 제작의 동기 부여에 한 몫을 했습니다. 이에 첸은 판타스틱 팩토리의 1인 규칙을 단순히 점수를 내서 평가를 받는 형태가 아닌, 가상의 적이 내는 점수와 비교를 하여 승패를 겨루는 방식을 했습니다. 어찌되었든 게임의 재미는 경쟁에서 온다고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판타스틱 팩토리의 1인 규칙은 출시 후 이 게임의 아이덴티티에서 큰 지분을 차지했고 (1인 게임의 기대 효과 중 하나인) 게임 규칙 숙지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글판이 나오기까지
2019년, 수입 게임들을 많이 들여오던 당시 보드엠 역시 킥스타터에서 런칭한 판타스틱 팩토리를 보고 도매 조건으로 영문판을 일부수량 들여왔습니다. 킥스타터 생산분이 배송 되었을 즈음 이 물량을 일반 판매했는데, 그 당시 이미 게임에 대한 호평이 돌고 있던 지라 해당 제품들은 순식간에 완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판타스틱 팩토리는 언감생심 한글판으로 출시할 만한 게임의 후보로 늘 올라있었습니다. 다만 유통사인 딥 워터 게임즈가 이전까지 한 번도 교류가 없던 곳이라 연락 방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해결은 엉뚱한 곳에서 이뤄졌습니다. 2019년 에센 박람회에서 보드엠은 정령섬의 제작사인 그레이터댄게임즈와 미팅을 가졌는데, 정령섬의 그래픽 에디팅을 담당했던 놀란 나사르가 딥 워터 게임즈의 모회사인 옥스미디어에서 게임 유통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레이터 댄 게임즈는 딥 워터 게임즈와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레이터 댄 게임즈의 담당자가 보드엠과 딥 워터 게임즈의 연결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이미 게임 자체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판타스틱 팩토리의 한글판은 별로 어렵지 않게 결정되었고, 2020년 3월, 보드엠의 대조동 매장에서 있었던 출시 예정작 소개 자리에서 한글판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확장팩
사실 20년 3월 출시 예정작 소개 당시만 해도 이미 판타스틱 팩토리의 한글판 작업은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였고, 출시 역시 여름으로 가닥이 잡혔었습니다. 다만 한글판 출시를 마무리 지으려던 중 딥 워터 게임즈에서 새로운 제안이 왔습니다. 2020년 9월부터 판타스틱 팩토리의 확장팩들의 킥스타터를 시작할 예정이니, 아예 한글판도 이 일정에 맞춰서 확장을 동시 제작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보드엠은 이 제안을 수락했고, 때문에 20년 여름으로 예정되었던 본판의 출시도 모두 확장팩 생산과 동시에 진행되어 일정이 미뤄졌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확장팩의 플레이를 체험해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작사의 피칭에서 두 종류의 새로운 확장팩이 갖는 특색이 워낙 명확했고, 이 부분이 판타스틱 팩토리의 플레이를 더욱 새롭게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확장인 새로운 회사들은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플레이를 하는 대신 기본 능력들과 초기 자원이 달라서 비대칭의 형태로 플레이가 가능해졌습니다. 아울러 새로운 자원인 비타민이 추가되면서 주사위의 활용의 운신이 좀 더 넓어졌습니다.
두 번째 확장인 기업 전쟁은 본판에서 극도로 부족했던 플레이어간의 상호 작용이 극대화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비정규직 카드에서 사용하게 되며 상대방의 자원이나 카드를 훔치는 역할들입니다. 특히 비정규직 중 방해 공작원은 아예 상대의 기계 자체를 사용불가로 만들면서 나름 평온한 게임이었던 본판을 이가 갈리는 수준의 딴지 게임으로 변모시킵니다.
확장팩 동시 출시를 결정한 직후 2020년 겨울쯤 프로토 타입을 받은 보드엠은 테스트 후 확장팩의 생산 수량을 부랴부랴 높였습니다. 그 정도로 판타스틱 팩토리의 확장팩들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우선 새로운 회사들 확장은 플레이어들의 공장 운용이 더욱 다채로와 지면서 플레이 시간도 제법 짧아지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꽤나 독특한 운영이 가능했습니다. 반면 기업 전쟁 확장은 딴지 속성 때문에 외려 게임이 길어지지만, 그만큼 본판에서 아쉬웠던 인터랙션을 확실하게 채워주는 확장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두 확장을 모두 함께 하면 게임 시간은 그냥 본판 플레이 정도의 시간이 됩니다.)
그만큼 판타스틱 팩토리의 확장들은 '필수 확장', '한 번 해보면 다시는 본판만 즐기기 싫어지는 확장'같은 수준이라 생각하고 한글판 제작 역시 박차를 가했습니다.
아울러 킥스타터 당시 진행한 플레이 매트 역시 한글판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플레이 매트는 게임 세팅에 편의를 줄 뿐만 아니라, 후면에는 솔로 규칙 요약 및 배치도가 있어서 더욱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해졌습니다.
이처럼 1년여의 지연 뒤에 판타스틱 팩토리는 모든 확장팩과 악세서리가 한글판으로 만들어지는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판타스틱 팩토리는 소소한 테스트 플레이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많은 분들이 기다리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가을 들어 마라카이보같은 헤비 유로 게임이나 서머너 워즈 같은 대전 게임의 뒤를 이어 오래간만에 패밀리 게임으로 내놓는 작품이라 기대가 큽니다.
오래동안 기다리신 판타스틱 팩토리는 11월 4일 목요일 오후 12시에 런칭합니다. 킥스타터 당시 증정했던 프로모 팩 3종도 구성에 따라 함께 증정할 예정입니다. 프로모 팩과 플레이매트 옵션은 한정 수량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최근 보드엠과 계속 콜라보로 진행을 하고 있는 럭키 식스 역시 판타스틱 팩토리 오거나이저를 함께 런칭합니다. 본판 박스에 두 종류의 확장 모두 수납이 가능한 오거나이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