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TRPG를 제대로 즐기려면 해당 룰북이 필요하죠. 처음엔 없어도 괜찮지만, 플레이가 계속되는데 그때마다 룰북이 있는 사람에게 규칙을 물어본다면, 상대방도 좀 귀찮아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속한 팀에서 자주 하는 룰이라면, 핵심 룰북만이라도 구입하는 것이 좋겠죠. 하지만, 이 룰북이라는 게 생각보다 값이 나갑니다. 직장인에게 부담이 될 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아르바이트도 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책 한 권에 몇 만원 씩 쓰기 어렵겠죠. 스팀에서 게임을 산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소량 제작으로 인해 원가 자체가 높고, 도서정가제 때문에 할인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특히, 막 입문하시는 분들은 이걸 계속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적지 않은 돈을 쓰기 망설여질 수 있죠.. 그런 분들을 위해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된 룰북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던전월드
국내 RPG 출판사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초여명에서 국문으로 번역, 출간한 던전월드는 우리가 영화나 소설, 만화 속에서 접해온 판타지 장르를 구현하기에 최적화된 룰북입니다. 규칙이 간단한 대신, 동료들과의 인연과 서사를 짜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플레이어가 판정에 실패할수록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국내에선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무료 룰북입니다. 초여명에서 만든 공식 구글사이트에서 무료 공개판을 읽어볼 수 있고,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실물 책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정발본과 공개판의 차이점은 삽화의 유무 정도입니다.
https://sites.google.com/site/dungeonworldkr/
페이트 코어 시스템
마찬가지로 초여명에서 국문으로 번역, 출간한 페이트 코어 시스템은 특정 장르와 세계관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룰입니다. 이를 흔히 범용룰, 범용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PC/콘솔 게임을 만들 때 쓰이는 게임 엔진(예:유니티, 언리얼 등)이 제작에 필요한 도구만 제공하고, 창작의 영역은 개발자가 맡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캐릭터를 만들 때 그 배경에 맞는 "면모"를 설정하여, 거기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면 시스템적으로 이점을 받는 등, 묘사에 중점을 둔 플레이를 권장합니다. 공식 구글사이트에서 무료 공개판을, 서점에서 실물 책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s://sites.google.com/site/fatecorekr/
네이브 공개판
나름 이 바닥에선 유명한 제작자인 벤 밀톤이 만든 매우 가벼운 룰입니다. 전체 7쪽밖에 되지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전사, 마법사, 사제 등의 캐릭터 클래스가 정해져 있지 않고, 물품을 무게가 아닌 "칸"으로 계산(가벼운 물건은 1칸, 무거운 물건은 2칸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읽어야 할 분량이 적다는 점이 큰 장점이지만, 그만큼 빈 부분을 미리 준비하거나 플레이 중 임기응변으로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출판사 이야기와 놀이의 위시송님이 국문으로 번역하셨고, 블로그에서 무료 공개판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http://blog.storygames.kr/entry/totsk_knave
한국어 무료 공개 룰북 목록은 앞으로도 (천천히) 갱신해나갈 예정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무료 공개 룰북도 댓글로 남겨주시면, 시간날 때 본문에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그럼, 다들 즐거운 RPG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