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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도공들의 애환 - 사가의 도자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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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가현 은 다양한 관광 상품중 가장 메이크 로 치는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도자기 입니다. 특히 사가현 의 도자기 는 명품 으로 꼽히는데요 

오늘은 사가현의 명물이라 불리는 도자기 마을의 형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 임진왜란 (분로쿠 케이쵸의 역) 당시 끌려온 조선도공들의 집성촌이 마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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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은 태조이성계가 나라를 세운지 어느덧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고 전쟁하나 없은 평화로운 영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은 

평화로운 한반도와는 달리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의 집권력이 약해지면서 벌어진 오닌의 난 이후 50여년 이란 세월속 전국시대 

란 이름아래 수많은 세력들이 사라지고 태어나고 를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전국시대 후기 에 이르러 천하를 통일한 3걸이 등장하니 오와리의 멍청이라 불렸던 개혁 

의 군주 이자 폭군이였던 오다 노부나가 천한 농부에서 국왕의 비서실장 격인 태합의 자리에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이후 전국을 모두 통일하고 에도 막부 통치를 열게된 도쿠카와 이에야스 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다노부나가가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 부하였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의문의 반역으로 죽고 남은 오다가의 세력은 2인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흡수되고 사라지면서 히데요시의 시대가 시작되었지요 그런 그의 말년 갑자기 중원을 정복하겠다며 그 발판인 한반도를 공격하기 시작하니 무려 7년이란 세월 속에서 동북아시아 3국의 패권을 다투는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또는 7년전쟁 

이라 부르는 이 일본의 침공은 한반도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송들이쩨 뒤바꿔버렸습니다. 


당시 일본은 도자기 를 자체 생산 기술력이 전무했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렇기에  중국 베트남 조선 등에서 자기를 수입하게되었지요 이러한 문물 교류로 중국의 차문화가 마침내 일본에도 퍼지게 되면서 도자기는 점점 상류층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7년전쟁은 일본에게 있어 정말 좋은 기회였던것이였습니다.  유학자 기술자 등 모든 전문가들을 끌고 일본으로 끌고오게되었지요 


이러한 도요토미의 정복사업속에 사가현 역시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무엇보다 물물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였고 거기에 한반도와 지형상 매우 가까운 지역이였기에 

히데요시는 사가현 나고야 란 곳에 성을 쌓고 그곳을 침략거점 기지로 만들면서 그곳을 통해 일본의 대군이 한반도로 건너가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기술자들은 영주들에 의해 하나둘 그들의 영지로 끌려갔고 도자기를 만들던 일부 도공들은 사가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 사가  일본 도자기의 명품 고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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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가현이 도자기의 명품고장이 될수 있었던 것은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끌려온 조선도공들의 뛰어난 기술력 과 희생 덕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도공출신의 

이삼평 (? ~1656) 이라는 도공은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위해  흙을 찾던도중  아리타 에 있는 이스미 산 에서 도자기를 만들수 있는 고령토를 발견하고 그곳에 흙을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로 인해 이삼평은 사가현에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게되었으며 그의 사후 신사에 신으로 모셔지기까지 했습니다. 말 그대로 사가현을 구한 인물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참고로 일본제국 즉 한국을 식민지로 삼던 강점기 시대 당시 이삼평의 평가는 군국주의 와 일본민족주의 가 들끓은 상황속에서도 화를 피할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사가의 도자기들은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도자기를  구입하게되고 이 도자기들이 유럽에 퍼지게되면서 일본역시 도자기 생산국으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됩니다. 이렇게 일본이 도자기 명품국가로 성장할수 있게된것은 당시 중국인 명나라가 7년전쟁으로인해 국력소모로 만주지역에 있던 유목민족인 여진의 세력이 급성장한 바 동시에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정권교체기 의 상황이였기에 도자기를 공급할수 있는 곳을 찾다 마침 일본에서 도자기를 생산하고 그 품질과 디자인 자체가 아름다웠기에 도자기들을 구매할수있는 대체국가로서 활약할수 있게된것입니다 


이로인해 사가현에는 도자기 산업으로 많은 인구가 급증하게되자  사가현의 다이묘 였던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도자기 제작에 막대한 비용 때문에 이를 제제하기 위해 도공의 인원을 제한하게되었고 이후 아리타 외에 이마리 가라스 등 으로 옮기면서  이곳역시 도자기 산업의 고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가현의 이름을 알리게된 것 모두 조선의 도자기 도공들에 의해 이뤄졌다는걸 보면 ... 아름다움과 화려함 속에 감춰진 비극과 애환이 묻어나옴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은 도자기 축제를 열어 많은 이들이 사가의 도자기를 사기 위해 온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사가의 관광지중 하나인 도자기 마을의 탄생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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