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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에서 벌어진 사건 사가의 난 이란 ?

* 이번 유우기리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가현의 관련된 이야기 에 도움이 될까 싶어 조사좀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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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사가의 난 을 묘사한 우키요에 그림 ) 



 메이지 정부 1874년 2월 부터 3월 무려 한달 간 벌어졌던 반란으로  원인은 당시 정한론 ( 1870년대 이후 발생한 조선정벌 이론 ) 이 대두되던 시절 

이때 메이지 정부는 조선에 교류할것을 요청하는 문서를 보내지만 무시당하고맙니다. 이에 격분한 일본은 유신으로 인해 몰락한 무사들과 낭인들을 이용해서 

조선을 정벌해야한다는 정한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힘과 기술력을 키워 조선을 압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죠 

이때 몰락무사 들을 대표하던 사이고 다카모리를 필두로한 일부인사들이 정부요인직을 그만두고 떠나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중엔 사가현 출신의 사법경 (한국으로 치면 법무부 장관) 이며 근대 일본법안을 만든 에토 신페이 역시 고향인 사가로 돌아가게되었습니다. 


특히 사가현 출신인사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있던 상태였는데 왜 그들이 불만을 가지게 된이유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막부말기 사가현은 37만석의 번(*제후가 통치하던 영지) 의 영주였던 나베시마 마오마사 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사가는 특히 서양의 신문물제도 등을 일찍 받아들여 당시 최신형 서양근대무기를 제조하고있었기에 그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으려했습니다. 만약 들키게 되면 막부에 의해 토벌될것이 당연했으니까요 그리고 막부 타도를 위해 움직이던 사츠마(* 가고시마 현 ) 과 조슈 (* 야마구치 현 ) 에 설득에 의해 뒤늦게 참전하여 막부와의 최후전쟁이였던 보신전쟁(1868 ~1869)에 참여하게됩니다. 이때 사가에서 만들어진 근대무기는 신정부였던 메이지 정부에 큰 공헌을 하게되어 막부몰락에 큰 공헌을 하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참여한 까닭에 사가현은 공적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버리고 말았죠 .. 거기에 사가현 인사들도 몇명의 인사만 등용할뿐 여러모로 대접에 소흘했던것도 사가현 인사들에겐 큰 불만이였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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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현 출신의 인사 정한당의 리더 에토 신페이 )

이때 에토신페이는 조선정벌을 꾀하는 조직인 정한당을 만들고 협력세력으로 다시 봉건주의시대로 회귀하자는 시마요시다케와 힘을 합체 우국당이란 조직을 만들게됩니다. 이로인해 신정부는 사가현에 발생한 이 불미스러운 일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74년 2월1일 우국당 당원들이 관금을 관리하는 은행인 오노구미라는 곳을 습격하여 점원들이 모두 대피하는 상황이 정부에 알려지면서 사가현에 대규모 반란이 발생했음을 알게됩니다. 정확한 반란군의 숫자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대략 기록에 나온 정보들을 보아한다면 대략 3천에서 6천명을 동원한 대규모 반란이였음을 알수있습니다. 


거기에 반란군은 사가가 궐기한다면 사이고 다카모리 등의 인사들이 일어나 자신들을 지원해줄것이다 라는 말로 병사들의 사기를 높히려 했지만 당시 사가의 난 당시 사이고등은 그저 지켜만 볼뿐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정한당과 우국당은 서로 뜻하는 목표가 달라 소극적이였고 우왕자왕 하는 사이 정부군의 빠른 대처와 진압으로인해 고작 1874년 3월1일 만에 반란은 진압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란의 주동자였던 에토신페이 와 시마요시타케는 재판없이 즉결처형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문에 불만을 품었던 사가의 남은 이들은 3년뒤 1877년 세이난 전쟁에 참여하게되면서 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가현의 분노의 포효는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어버리면서 

사라져버렸지만 당시 영국대사 였던 해리 파크스 (1865 ~1883) 는 외무대신 공문서에서 반란군의 리더인 에토와 시마의 즉걸쳐형으로 인해 신정부의 신뢰가 회복하기 힘든상태가 되었다 라며 보고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배경들을 보아한다면 아마도 1880년 대 당시에도 신정부에 의해 불만을 품고 사가의 난 세이난전쟁 에서 살아남은 일부 정한론자 잔당들의 반정부 활동운동에 대한 설정이 아닐까 ?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9화 이야기가 나와봐야 알겠지만요 


Ps : 참고로 세이난 전쟁이후 불만이 팽배하던 정한론자들을 달래주기 위해 메이지정부는 예전 막부에 엄청난 무력시위를 벌이던 미해군제독 메튜 페리 제독이 한 방식을 고대로 인용해서 조선에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다고합니다. ㅆㅇ 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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