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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열전 외/도/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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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리뷰>



본 리뷰는 타가메 겐고로 화백의 대작 <외도가>에 대한 얄팍한 감상을 적은 글이다. 이 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필자는 우선 독자들에게<외도가>를 보고 올 것을 추천한다.

<외도가>는 주인공 토라조우가 데릴사위로 오면서 겪는 게이적 SM물이라 불릴만한 장르의 만화지만, 그 속은 예수의 고난에 버금가는 숭고한 수난극이라 할 수 있다.



1. 토라조우/로쿠의 신곡



본질적으로 타가메 겐고로의 <외도가>는 토라조우의 수난에 관한 서사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는 단테의 신곡을 연상케하듯,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 세 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토라조우의 지옥 방랑은 그가 데릴사위로 오고, 장인과 외가에 의하여 학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단테가 점점 지옥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더더욱 참혹한 광경을 보듯, 토라조우의 수난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다. 이러한 토라조우가 지옥의 밑바닥 쥬데카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사물로서 존재하게 되어, 감옥에 감금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얼음같은 지옥 쥬데카에서 토라조우는 살인을 경험하고, 목소리를 빼앗기는 등 말 그대로 꽁꽁 얼어붙는다.

토라조우의 연옥은 그가 토라조우로서 죽고, 로쿠로서 다시 태어날 때 시작된다. 그는 더 이상 감금되지 않고, 나체로 활보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지옥에 가까운 고통은 계속되지만, 언젠가 희망이 있듯, 그의 연옥은 로쿠로서 계속된다. 물론 연옥 또한 끝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옥과 마찬가지다. 토라조우는 아들에게마저 살해당한다, 성적인 의미로. 그러나 연옥은 연옥이듯, 그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하인 일가의 아들 다이키치다.

토라조우의 천국은 토라조우의 장인이 죽고, 하인 일가가 몰락하고, 토라조우가 자유의 몸이 된 후, 다시 다이키치와 재회했을 때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약간의 희망적인 결말만을 암시해주고,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리스트가 언젠가 단테의 신곡을 교향곡으로 작곡할 때, 바그너의 충고에 따라 인간은 묘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천국편에 대한 작곡은 하지 않았다. 이처럼 겐고로 화백 또한 어쩌면 토라조우의 천국을 그리는 것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토라조우의 미래는 충분히 상상으로도 펼쳐질 천국이며, 겐고로 화백은 감동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2. 순환의 역사



주인공 토라조우의 행복한 미래를 제외하면, <외도가> 자체는 상당히 순환적인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토라조우의 성적 학대의 수난은 <외도가>에서 하인들의 집안에서도 반복된다.

또한 토라조우의 '죽음' 또한 상당히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테마인데, 토라조우는 인간에서 동물로 변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그리고 동물에서 물체로 변하면서 생명으로서 죽음을, 마지막으로 장인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사망하면서 데릴사위로서의 죽음 등 세 번의 죽음을 외도가에서 겪는다.

이러한 세 번의 죽음은 하인의 집안에서 토라조우에서 로쿠로 변하면서 토라조우로서의 죽음을, 거세를 당하면서 남성으로서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범해지면서 아버지로서의 죽음 등 세 번의 죽음으로 순환된다.

(우리는 작품 곳곳에서 3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다. 토라조우의 지옥-연옥-천국. 토라조우의 3번의 죽음. 그리고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 모두에서 총 3번 버림받고, 외도가 자체의 3대에 걸친 이야기, 3권으로 구성된 이야기 등)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토라조우와 그의 아들 소타로의 조우다.

마치 오이디푸스가 자신도 모른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듯, 소타로 또한 토라조우가 아버지란 것을 모른채 아버지를 범한다.

이러한 근친의 장면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실현이다. 소타로의 어릴적 묘사를 보면, 그는 집 나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무능력한채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동시에 지닌 그런 아이다.

소타로는 아버지 토라조우를 성적으로 '죽임'으로서 오이디푸스의 친부 살해를 완성하고, (어머니가 없기에) 어머니에 대한 대역으로 아버지를 범함으로서 오이디푸스의 근친을 범한다. 그리고 토라조우는 아버지로서는 완전히 사망하고 만다.

물론 소타로의 근친 또한 외도가 내에서는 순환적인 일일 뿐이다. 그의 어머니 하기노는 자신의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작품 말미에서 하기노의 귀환으로, 우리는 비슷한 일이 또다시 일어날 것임을 알 수 있다. 소타로의 피에는 외도가의 피 뿐만 아니라,토라조우의 피 또한 흐른다. 토라조우의 자식으로서 소타로는 그의 어머니에게 강제로 범해질 운명인 것이다.

어쩌면 외도가가 존재하는한, 또다른 토라조우 또한 탄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3. 왜 토라조우는 저항하지 않는가



이 3권의 대하 서사시를 본 독자라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 것이다. 어째서 근육질의 남성적인 토라조우는 저항하지 않는가? 어째서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조차 자신을 학대한 이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가?

가장 기본적인 대답은 남성의 SM을 그린 이 만화의 장르답게, 토라조우가 단순히 마조히스트라서 그럴 수 있었다는 대답이 나오겠지만, 이런 대답은 본질적인 답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토라조우가 '마조히스트'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는 성적 학대를 당하면서, 육체적으로는 반응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정신적으로 자신의 성적 학대에서 쾌감을 느끼다고 볼 수 없다. 단적으로 그가 마침내 '물건'으로서 감금되는 장면에서 보이는 토라조우의 고통은 '마조히스트'로서가 아닌, 인간 토라조우로서의 고통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자. 우리는 우선 작중 언급되기도 한 토라조우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한다. 토라조우는 말 그대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의 집에서조차 그는 낳기 싫었는데 낳은 자식이며, 결국은 형제들의 손에 의하여 배반 당한다.

그가 군인이 되었던 것조차 이런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변명을 위해서였지만, 여기서조차 그는 이룰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토라조우를 누구보다도 필요로 하고, 그에게 처음으로 실존을 경험하게 해준 것은 그의 장인과 하인들에 의한 성적 학대다. 누구도 원치는 않았던 토라조우를 그들은 말 그대로 '성적 도구'로서 토라조우에게 자신의 실존을 체감시켜준 존재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성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토라조우가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원한을 품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토라조우에게 기회가 왔을 때, 토라조우의 장인은 이미 숨을 거두었으며, 하인 부부는 몰락한다. 말 그대로 토라조우의 복수 자체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어쩌면 토라조우는 자신의 실존을 체감시켜주는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토라조우는 충분히 성적 학대에서 도망칠 기회는 있었지만, 또다시 쓸모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싫었다.

물론 이러한 토라조우는 다이키치 등의 존재로 인해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어내고, 드디어 그는 홀로 떠나, 아무도 자신을 원치 않는 세계로 한발짝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 힘찬 미래에는 다이키치와의 사랑이 있다. 물론 외도가 자체의 지옥은 계속될 것이란 암시는 있지만, 토라조우의 수난의 끝에는 그 지옥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그런 일이다.



4. 결론



그렇다면 독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떤 뛰어난 작품이 있다면 보고 즐길 뿐이다. 그 뿐이다. 우리는 토라조우의 수난과 행복을 기대하며 겐고로 화백이 그린 서사를 즐기면 된다.

읽지 '않겠는가?'

토/라/조/우/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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