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평안도 어느 마을, 젊은 사또가 늦은밤 내아 침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세차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창호가 열리고 불이 꺼지고 말았다. 사또가 문을 닫기위해 짚어가며 기어가고 있자니, 어둠 속에서 가녀린 여자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괴이하게 여긴 사또가 호롱을 다시 키자, 사람은 사람이되 머리는 짐승의 백골 모양을 한 귀신이 흰 저고리를 입고 방 안에 서있었다. 놀란 사또는 펄쩍 뛰었지만, 이내 귀신이 자신을 해코지 하지 않고 곡소리만 냄을 깨닫고 정신을 가다듬어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귀신이 절하며 답하길,
"소녀는 본디 높은 산에 살던 어린 여우였사옵니다. 어느날 배를 심히 곯아, 다른 수 없이 숲을 내려가려다 덫에 걸린 일이 있었사옵니다. 그리고 덫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던 소녀를, 지나가던 젊은 나무꾼이 발견하였나이다. 본디 사람이란 여우를 요사스레 여겨, 보이는대로 잡아 죽이곤 하는데, 그 나무꾼은 소녀를 불쌍히 여겨 올가미를 풀어주고 먹을것을 나눠주었나이다.
소녀는 나무꾼에게 보답하고자, 나무하는 산길에서 구렁이를 쫓아내고, 몰래 집을 찾아가 잡은 꿩을 마당에 놓곤 하며 애교를 부리곤 하였사옵니다. 나무꾼 또한 이를 알고는, 소녀와 같은 여우를 마치 친지를 대하듯 정을 주고 길들였나이다. 불측하오나, 그런 연고로 소녀는 낭군을 사모하게되어, 비록 여우임에도 남녀의 정을 통할 뜻을 두고자 하였사옵니다. 소녀는 아름다운 처녀로 둔갑하여 낭군을 찾아뵈었고, 마침 낭군 또한 혼기가 찼었기에, 소녀를 받아들여 혼례를 올렸나이다. 그리하여 소녀는 여우임을 속이고, 낭군과 부부지정을 나누어, 그대로 백년해로 할 것이라 여겼사옵니다."
귀신의 말을 곰곰히 듣던 사또가, 감히 요물이 축생의 분수에 넘치는 짓을 벌여놓고서, 도대체 무슨 한이 맺혔길래 이런 늦은 밤에 그런 흉측한 모습으로 동헌을 찾아 사람을 황망케 하느냐 묻자, 귀신이 이어 말하길
"소녀의 시어미는 성품이 모질고 의심이 많아서, 출생이 무적하고 사람의 예절에 익숙치 않은 소녀를 곱게 보질 않았나이다. 매사에 소녀를 구박하고 꼬투리를 잡으려 꾀를 꾸미곤 하였는데, 그래도 소녀는 그때마다 다른 요술로 수를 내어 시어머니 마음에 들고자 하였사옵나이다. 그러다 시어미가 둘이서만 있는 날을 골라 독한 술로 소녀를 꾀어내다가, 그만 취기가 일어 둔갑이 풀리는 일이 있었나이다. 그러자 취하여 거동을 하지 못하는 소녀를 시어미는 그대로 방망이로 때려죽이곤, 몰래 갖바치를 불러서 가죽을 벗겨 돈을 받고, 시체는 산에 버려 쥐와 벌레에게 뜯기게 하였나이다. 그게 소녀가 죽어서도 이렇게 흉한 모습인 까닭이옵나이다.
그런데 소녀가 죽은후, 소녀의 낭군은 소녀가 사라진 원인을 알지못하여 사나흘이 되어가도록 식음을 전폐하였나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몰골로는 차마 낭군님을 찾아뵈어 일을 상세히 고할 수도 없고, 시어미에게 화를 입혀 원한을 풀려 해도 낭군님이 더더욱 앓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소녀의 죽음을 낭군님께 알리고 원혼을 풀고자, 사또께 감히 읍소하였사옵니다. 부디 축생의 일이라 생각치 마시옵고, 소녀의 낭군을 살리는 일이라 여겨주시옵소서."
그러나 사또는 짐승이 사람과 교접하는일은 애초에 상서로운 일이라 하여, 귀신의 청을 거절했다. 이에 귀신이 노하여 말하기를
"까마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효의 귀감이라 하고, 개새끼가 주인을 따르는 것은 충견이라 하여 떠받들 일로 적으며, 미천한 지렁이마저도 세상 이치를 깨닫고 공덕을 쌓으면 용이 되어 오를수 있다하면서, 어째서 여우가 애정하여 지아비를 섬기는 것만은 안된다하는 것이더냐!"
이에 사또가 제차 귀신의 말을 뿌리치자, 귀신은 그대로 사람을 저주하며 물러났다. 그 후 마을에는 역병이 퍼져,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오랜 뒤에 마을 주변을 지나가던 우사라는 자가, 여우귀신의 일을 듣고 굿을 벌이니, 그제서야 액이 물러나 사람이 들어올 수 있었다 한다.
대충 장화홍련전과 백사전의 짬뽕같은 느낌으로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