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 구독자 56명 | 모노가뚜리

살아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갈 날이 오리.

정찰소대는 두 소녀와 함께 복귀했다. 소녀란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녀들의 세상에선 이치에 맞았을 것이다.

하우덴의 전방 도크가 열리자 그들을 맞이한 건 제이콥 대령이었다. 그는 큐폴라에서 머릴 내민 헤이즈 중위에게 경례했다.

"수고했네, 중위."

도크로 들어온 지휘전차를 향해 제이콥 대령이 말했다. 헤이즈 중위는 큐폴라에서 떨어지듯 내려와 제이콥 대령 앞에 섰다.

"저도 이젠 모르겠습니다."

"거주구에서 첫 전투를 치르곤 쉴 틈도 없었지. 자네에겐 휴식이 필요해보이네."

"예, 감사합니다."

도크의 크레인이 내려와 지휘전차를 집자 헤이즈 중위도 크레인 집게의 손잡이를 잡아 전차와 함께 차고 속으로 사라졌다.

제이콥 대령은 뒤로 돌아 두 소녀를 바라봤다.

생머리의 소녀는 수구려 앉아 제이콥 대령의 코앞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댔고, 말총머리의 소녀는 함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제이콥 대령은 왼손으로 뒷짐을, 오른손으로 소녀의 손가락을 잡았다.

"염치는 없지만, 멀리서 온 여러분께 부탁을 하나"

"예림아, 얘가 뭐라고 하는데?"

"응? 헛소리 마세요."

"..."

제이콥 대령은 소녀의 손가락을 붙잡고 아둥바둥 거리다 소녀에 의해 손바닥 위로 올려졌다.

"다시 말해봐!"

소녀는 자신의 귀 앞에 햄스터를 들이대고 귀기울였다. 제이콥 대령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말했다.

"난 당신들의 말을 알고 있소. 운명의 장난인지, 당신들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지."

"봐봐, 말했어!"

"뭐라고 했는데?"

"영어라 모르겠어. 쏘, 쏘리~ 아이 캔트 스픽 잉글리시~"

"..."

제이콥 대령은 자신의 함장모를 벗어 얼굴을 감싸곤 주저 앉았다. 자신이 생각한 마지막 희망의 촛불이 꺼져가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옆에 서있던 다른 소녀의 귓가에 햄스터를 들이댔다. 예림이라는 소녀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당신이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하오. 제발, 부디, 신이 있다면 제발 그래야 한다고..."

"진짜 말하네?"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맞아, 네가 그럴 수 있는 대가리는 아니니까. 아니지, 이런 건 유치하니까 할 수 있을 것 같네."

"야."

"아무튼, 어느 정돈 알아들어요."

"그것 참 다행이구만..."

제이콥 대령은 다시 모자를 쓰며 말을 이었다.

"난 이 함선의 함장이자, 이 피난민들을 책임지고 있는 군인인 제이콥 블리스 대령이요."

"여러분을 여기로 데려온 건 다른 이유가 아니오. 저 구석에 있는 것들이 보이시오?"

제이콥 대령이 작은 앞발로 가리킨 곳엔 거대한 금속 케이스가 있었다. 그 주변엔 총처럼 보이는 무기 등도 있었다.

"내 상관이셨던 스테니스 제독은 고등전략연구부에서 저런 무기들을 개발하셨소."

"그 분께서 적습으로 사망하시기 전, 저걸 부탁한다고 하셨지..."

제이콥 대령은 굉장히 씁쓸한 표정과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난 저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오. 하지만 제독님께선 당신들이 올 거란 걸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이런 걸 만들어둔 거요."

"그 말은 마치 우리한테 저걸 들고 싸우란 얘기 같네요."

예림의 말은 제이콥의 가슴에 비수를 꽂듯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제이콥은 말을 해야 했다.

"...그렇소, 난 지금 우리의 적을 죽여달라고 당신들한테 비는 거요."

"...저걸 쏘면, 죽는다는 거죠?"

"물론이오."

"당신들 같은 작은 생명들을 죽인다는 게... 와닿지가 않네요."

"무리한 부탁인 건 알지만, 내게 더 이상 방법은 없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오,"

제이콥 함장은 예림의 손등으로 올라와 그녀의 눈앞에 섰다.

처지고 힘없어 보이는, 작고 움츠러든 골든 햄스터가 그녀들의 눈앞에서 애원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거절한다면?"

"당신들을 안전한 곳에서 내려주겠소."

예림은 잠시 생각했다. 이런 일에 엮이지 않는 것이 옳다는 소리가 마음 속에서 올라왔다.

하지만 차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친구인 유나가 보여주는 연민의 눈빛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난민들의 모습에,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들의 결의에,

예림은 애써 올라온 말을 집어 삼켰다.

이 모든 것이 제이콥 함장의 계략일지도 모르지만, 예림은 흔들리고 있었다.

"제독님은 여러분의 힘을 믿었소. 이젠 나 또한 그렇소."

"사람들을 지켜야할 의무와 힘을 가진 군인이란 작자들이, 미지의 존재에게 그 운명을 맡기고 애원하는 꼴은..."

제이콥은 그의 작은 앞발로 눈물을 닦으며 애써 말을 이었다.

"...분명 더럽게 추하고 꼴사납소."

"하지만 그 정도로, 난 살아남고 싶소. 그리고 이 사람들을 지켜줘야 하오. 아니, 지켜주고 싶소..."

"난 내가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았기에..."

"지켜아할 것이라면..."

"난 적전도주를 한 패장이오. 명예도 의무도 저버리고 도망친 겁쟁이란 말이오."

"그렇기에 나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예림은 오른손으로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목숨을 걸 필욘 없죠."

"...무슨 의미요?"

"살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잖아요. 근데 목숨을 걸면 지금까지 한 게 무슨 의미겠어요."

제이콥은 예림의 말에 고개를 들어 예림을 바라봤다. 유나는 그런 제이콥의 등을 검지로 찔렀다.

제이콥이 자신을 향해 돌아 바라 보자 유나는 웃으며 검지와 중지를 펴 V자를 보였다.

"잠깐이겠지만, 안전지대로 갈 때까지는 도와주겠어요. 게다가 다른 곳은 우릴 죽이려고 들 테니까요."

"고맙다는 말밖에는..."

예림이 제이콥을 도크 바닥에 내려주자, 유나가 제이콥에게 말했다.

"자, 그럼 우린 뭘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지시를 내리시죠."

제이콥은 도크 2층의 정비반장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함장의 명령을 받은 정비반장은 발광 신호로 둘을 인도했다.

바닥에 깜빡이는 조명을 따라 두 소녀가 몇 걸음을 떼자, 하얀 조끼와 노란 조끼의 햄스터들이 소녀들의 앞에 섰다.

정비반장은 마이크를 꺼내곤 마이크 전선을 열심히 뽑았다. 전선이 그의 팔을 몇 바퀴 감자 그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어. 함장님이 애지중지 여기는 장빌 꺼내줄 테니까."

정비반장은 도크 바닥에서 대기하던 빨간 조끼의 햄스터들에게 열쇠 뭉치 하날 던져줬다. 그리곤 다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전쟁의 여신이 다시 우리 편에 섰군!"

"다시?"

유나의 말에 도크 3층에 있던 부장이 말했다.

"먼 옛날, 연합이 무너질 지경에 이를 정도로 큰 전쟁... 지금 같은 전쟁이 있었죠."

"그때 당신들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합의 적들이 당신들을 본 딴 아머드 워커 같은 무기를 만든 거죠."

"그렇담 우리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군요."

예림의 말에 부장은 어깰 으쓱이곤 말했다.

"모항으로 귀환하면, 당신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겠습니다. 뭐라도 도움이 되는 게 있겠죠."

"그때까진... 잘 부탁드리고 싶군요."

부장의 말을 들은 예림은 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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