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2차 고려거란전쟁의 종결 직후부터 20화까지 적게는 3화, 많게는 3화 반에 가까운 분량을 궁정 내부의 원정왕후와 궁인 김씨(원성왕후)의 암투와 현종과 호족과의 대립 문제로 소비하였고, 그 시간 동안 고려와 거란간의 외교 문제와 고려의 거란에 대한 대비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32화에 불과한 한정된 분량중 3화에 달하는 귀중한 분량을 곁가지에 해당하는 서사에 허무하게 소비했고, 그로서 드라마에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다루어야 할 사건은 대단히 많은 상황에 놓였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붕괴하거나 등장인물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시청자들을 설득치 못하는 등의 문제까지 발생하여 시청자들은 물론이요 작품의 원작자인 길승수 작가 마저도 이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점은 17화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도 여러 문제점이 존재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은 그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을 보였으나, 17화~18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과거에는 그저 이해하고 넘어갔던 부분들 역시도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단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4화에서 언급된 여진인 학살 문제, 즉 화주관 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거론해 보고자 한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상서좌사낭중 하공진(河拱辰)은 2차 고려거란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죄인으로서 화주방어낭중 유종(柳宗)과 함께 섬으로 유배를 당한 입장이었다. 고려 조정의 명령 없이 함부로 여진을 공격하고 학살한 죄가 두 사람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하공진은 1010년 5월 이전 시기에 동, 서북계 두 지역에 종사하면서 상부로부터의 어떤 명령도 없는 상황서 자신의 임의로 병사들을 함부로 징병하였으며, 그들을 이끌고 여진 부족을 선제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진에게 완강한 저항을 받고 패퇴하였다.1이 과정에서 많은 고려 병사들이 살상되었다.
화주방어낭중 유종은 하공진이 여진을 공격하여 패배하고 많은 고려 병사들이 죽은 것을 통분스럽게 여겼다. 그러던 차에 고려에 내조(來朝)키 위해 화주관을 방문한 여진인들을 상대로 분풀이로서 그들 모두를 학살했다.2 화주관은 고려 초 내조를 청하거나 화맹을 요청하는 여진인들을 맞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는데3, 그곳의 방어낭중으로 있던 유종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그들을 학살한 것이다.
이 문제는 상당한 문제를 야기했다. 내조를 위해 방문했다는 것은 이들이 개경까지 상경할 권리를 지니고 있던, 또는 그러한 의사를 지니고 있는 여진 집단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유종은 이를 중앙의 어떠한 명령도 없이 단순히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 학살했다. 그로서 그들 집단과 연결된 여진인들의 고려에 대한 신의를 떨어트리고 복수심을 자극했으며,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거란에게 고려의 사정-즉, 강조의 정변과 현종의 비정상적 승계 상황을 전달하게끔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여진 세력 중에서는 내조를 위해 개경으로 상경하는 부락도 존재했기에 개경의 상황을 알고 있었을 터이고, 그렇기에 거란에게 해당 소식 역시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막 승천태후의 장례를 끝내고 자신의 권위 확장과 고형화를 골몰하였으며, 그외 추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유로 말미암아 고려에 대한 공격을 고려하던 거란 성종에게 고려 침공에 대한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실제로 거란은 이를 조사키 위해 사신을 파견했고4이후에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자신의 책봉을 받은 목종을 폐위, 시해한 강조 정권과 그에 의해 옹립된 현종을 추궁하는 동시에 군을 징병하고 전쟁을 선포하였다.5
고려 조정 역시 유종이 일으킨 화주관 학살 사건이 대여진정책과 대거란외교에 상당한 문제를 야기할 것임을 파악하였고, 그를 이미 5월 중으로 유배형에 처하였다. 또한 조사의 결과 하공진의 문제와 이 일이 연루되었음을 파악하고 하공진 역시도 유배형에 처하였다. 그렇게 그들을 벌하였으나 이미 어그러진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었고, 곧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 상황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의 화주관 학살 사건의 묘사는 어떨까. 실제적인 사건 묘사는 존재치 않으나, 대사로 나마 당시의 상황이 언급된다. 이 때에 현종에게 보고된 상황은 이러하다.
<고려거란전쟁> 中
"사정을 알아보니 동북면의 하공진등의 장수들이 국경을 침탈하는 여진 부족을 토벌하다가 고려에 귀부하던 여진인들마저 몰살했다 하옵니다. 이에 앙심을 품고 벌인 일이라고 하옵니다."
일견 틀린 바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사건과 미묘하고도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실제의 하공진은 국경을 침탈한 여진 부족에 대한 반격으로 토벌을 감행한 것이 아니다. 명령 없이 독단으로 병사들을 마음대로 징발하여 동여진의 부락을 공격하였다가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고려에 귀부하던 여진인들을 몰살한 것 역시도 '토벌 중에'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공진의 여진 공격은 이미 이전에 있었던 일이며, 학살을 벌인 당사자 유종은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원한으로 생각하다가 고려에 내조키 위해 화주관에 들어온 여진인들을 다른 이들에게 당한 원한을 풀기 위하여 학살했다.
즉 하공진의 여진 공격은 고려 중앙으로서는 독단으로 군을 마음대로 일으켜 여진을 공격했다가 패배하고 돌아온 사안이었으며, 유종의 여진인 학살 역시 토벌 과정 중에 흥분한 고려군이, 또는 피아구분을 하지 못한 고려군이 저지른 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라 '확실하게 고려에 내조하기 위해 온 이들임을 알면서' 그저 다른 여진 부락에게 당한 원한을 해소키 위해 벌인 학살극이었다. 그것은 그들 부락과 연결되어 있던 동여진의 여타 고려 연계 세력 및 그들의 본거지에 남아 있던 생존 부락민들을 자극했으며, 그들이 거란에게 자신들이 당한 사실과 고려의 상황을 고하게 했다.
거란에게 상황이 전달되게 한 것을 제외하고, 하공진의 죄는 1.독단으로 군을 징병해 여진을 공격한 것, 2.패전 으로 귀결되며, 유종의 죄는 1.고려에 내조키 위해 방문한 여진인들을 멋대로 학살한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6
이러한 사실과 다른 묘사는 후에 하공진의 2차 고려거란전쟁 중 거란에 대한 협상 과정서의 중요한 역할과, 후에 등장할 거란에서의 하공진의 역할과 장렬한 최후에 실제의 하공진의 과거 행적이 악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하여 '제작진의 관점에서' 각색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선택을 했어야 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고려의 대외관계와 외교 지형에 악영향을 미친 하공진의 과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강조하며, 하공진이 그러한 자신이 과오를 인지하고 확실하게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자신을 전쟁을 맞이하여 복직시켜준 현종과 고려에 대한 충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묘사를 했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 된다면 자신의 과오, 자신의 죄를 스스로 한스럽게 여기며 그 과오를 조금이라도 씻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부귀의 길이 열려 있음에도 충의를 위해 죽는 하공진이 더욱 비장하게 꾸며지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하공진이 현종 앞에서 자신의 죄를 대죄하거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모습은 존재치 않았다. 그저 고려의 신하로서 우직하고 충의로운 모습만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후에 최후를 맞을 때까지 자신의 죄를 입에 담으며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저 충신으로서의 우직함만을 드러낸다.
하공진의 과거 행적상 어두운 면은 그저 가볍게 넘어가면서, 밝은 면만이 강조됨으로서 하공진의 입체성이 사라진 것은, 각각의 등장인물의 입체성을 장기로 삼던 본 드라마로서는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그저 '분량상 어쩔 수 없다', '32화라는 한정된 분량에서 하공진의 서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넘어갔을 해당 부분은, 최근의 고려거란전쟁의 분량 낭비로 말미암아 필자의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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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사』 권94, 하공진 열전, 拱辰嘗在東·西界, 擅發兵入東女眞部落, 見敗.
2.『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5월.
3.김진곤, 『高麗~朝鮮前期 ‘邊境’ 政策 硏究 』, 서울시립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3, 34쪽.
4.『고려사』 권4 세가 권제4 현종 원년 7월.
5.『요사』 권15 본기 15 성종본기 6권 통화 28년 9월 신유. 『고려사』 권4 세가 권제4 현종 원년 10월 계축.
6.하공진 역시도 학살에 참여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한향도, 『11세기 고려-여진관계와 귀화정책』, 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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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기타나 자작유머로 올릴까 하다가 그냥 정보탭으로 올림.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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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지식이 너무 뛰어나서 지적할 거리가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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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거전 분석글은 ㅊㅊ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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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왔어야 했는데 뭔 호족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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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빵을 쳤는데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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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하공진을 축소시키고 강감찬을 확대시키면서 생긴 일인듯. 대신에 현종입으로 하공진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자주 죄인도 참회하면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울수있다는 식으로 탁사정을 용서하는데 대사를 씀. 드라마상 죄인이면서 목숨받친 사람은 하공진밖에 없어서 하공진으로 알아들음. 현종이 용서얘길하면서 수도없이 하공진을 얘기한거나 다름없다 생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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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고려사랑과전쟁 몇화만 안찍었으면 좀더 입체적으로 부각시킬수 있었던거 아님…?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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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고려사랑과전쟁 몇화만 안찍었으면 좀더 입체적으로 부각시킬수 있었던거 아님…?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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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하공진을 축소시키고 강감찬을 확대시키면서 생긴 일인듯. 대신에 현종입으로 하공진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자주 죄인도 참회하면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울수있다는 식으로 탁사정을 용서하는데 대사를 씀. 드라마상 죄인이면서 목숨받친 사람은 하공진밖에 없어서 하공진으로 알아들음. 현종이 용서얘길하면서 수도없이 하공진을 얘기한거나 다름없다 생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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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이 여진족 치다가 삽질해서 유배갔다가 다시 등용하니까 충성을 바친 걸 하공진놀이를 예종한테 선보인걸 통해서 동북9성 장수들이 군사력 소모를 심하게 했지만 너무 심하게 뭐라 하지는 말고 써달라는 의견 전달?이렇게 만들면 될듯 | 24.02.04 01:5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