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년 명나라에 갔다온 김지수와 김상헌에게 인조가 명나라에 대한 일을 묻자 김상헌은 사대부들은 미관말직에 있는 자들까지도 모두 전리(田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답했고 김지수는 백성들이 명나라는 천명이다했다며 두려워 하고 있다고 말하자 인조는 천조의 일은 역시 한심하다고 디스했다
승정원 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5월 18일(계미) 맑음
상이 이르기를, “중원의 분위기는 어떻던가?”하니, 김상헌이 아뢰기를,“중원 사람들은 조불려석(朝不慮夕)입니다. 사대부들은 미관말직에 있는 자들까지도 모두 전리(田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하고, 김지수가 아뢰기를,“운남(雲南), 귀주(貴州) 등지의 적(賊)들이 침략을 그치지 않고 있고 동호(東胡) 또한 그러합니다. 게다가 지난해에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극에 달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면서 천명이 곧 다할 것이라고들 하였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천조의 일 또한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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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4월 11일에 인조가 신료들과 명나라의 일에 대해 논할때 인조는 명나라의 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고
승정원 일기 인조 10년 임신(1632) 4월 11일(무인)
윤방이 아뢰기를,“송(宋)은 인후한 나라이므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도리에 있어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에서는 간관을 대하는 것이 지나치게 야박한 듯하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대명(大明)의 법이 어찌하여 이와 같이 되었는가? 아마도 잘못된 폐습을 인습하고서 고치지 않은 소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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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4월에도 명나라 내부의 부패한 풍조를 논하면서 인조는 명나라의 탐욕스러운 풍조가 매우 놀랍다며 평했다
인조 14년 병자(1636) 4월 18일(임진) 맑음
목서흠이 아뢰기를,“중원(中原)에서는 직임이 종반(從班)에 있는 자도 청구(請求)한다고 합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탐욕스러운 풍조가 매우 놀랍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이렇게 비루한 일은 없지만 직임에 태만한 것이 하나의 폐단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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