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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운전이 익숙해진 태연은 핸들을 잡고 주차장을 아주 천천히 돌았다.
"그런데 태신아, 어떻게 된거야? 지금까지?"
태연은 지금까지 애써 담아두었던 질문을 했다.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의 최후를 알고 싶은 마음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혼합되어 지금까지 묻어두었던 질문을 지금에야 할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 그 두 인간들 손에 끌려서 멀티플렉스 주변 카페에서 기다렸어. 너도 알테지만 구매자….가 산모 먼저 보고 싶다고 해서. 그런데 그러다가 갑자기 주변에서 큰 소리가 났고, 거기에 갇히게 되었어. 이태린이 구해줘서 주변 아파트에서 머물다가 무리도 커지고, 식량도 필요해져서 다시 멀티플랙스로 가게 됐어. 그리고… 무리 리더였던 인간이 이태린을 배신했어. 거기 있던 멍청한 인간들은 결국 그 인간한테 홀려서 다들 배신했고. 나는… 그냥 끌려다녔어. 미르가 어찌된지도 몰라서 정신도 없고, 엄… 아니 그 두인간이 항상 끌고 다녔거든. 놔두면 지들 배신할거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그러다가 이태린이 다 죽여버렸어. 도망친 몇 명 빼고. 내 상황 눈치채서 그런지 나는 정상참작 해주더라."
어떻게해서든 엄마나 할아버지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하는 태신의 눈에는 눈물이 조금씩 맺혔다.
태연은 백미러를 통해 태신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셨다.
"그 2명이 죽고나니까 그제서야 자유롭다고 느꼈어. 빨리 미르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죽었든, 살았든. 그리고 이태린이 우리 집 쪽으로 가더라? 따라갔지. 내가 아는 인간중에 가장 잘 살아남는 인간이니까. 그러다가 너도 만나고, 미르도 만난거야."
얘기를 다 들은 태연은 가슴에 답답했던 무언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생했다. 차태신"
"너도 고생했어 차태연. 미르 잘 돌봐줘서 고마워."
"이모가 그정도는 해줘야지"
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서 니가 보는 이태린은 어때?"
태연은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어? 아아아. 싸이코지. 근데 착하고. 우리가 배신하지만 않으면 돼. 그냥 착한 사람이야. 자기 편한테는"
태신은 자기 마음을 들켰나하고 살짝 놀랐지만, 태연의 말뜻이 그것이 아닌 줄 깨닫고는 이태린에 대해 말했다.
태연은 태신의 우물쭈물함에 대해 눈치챘지만 애써 모른척해주었다.
그때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계속 오는건지 좀비들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이태린은 이정도 규모의 좀비들에게 사방으로 둘러싸인 적은 처음이었다.
"씨발 좆됐다."
도끼 손잡이로 머리를 긁으며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입과 눈은 웃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도끼를 왼손에는 홀스타에서 권총을 꺼내며 임전태세를 갖췄다.
편의점을 둘러싼 유리벽의 균열은 점점 커져갔고, 문도 덜그럭거렸다.
가장 몸집이 큰 좀비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쏘려고 했을 때, 멀리서 클락션이 울리기 시작했다.
클락션 소리를 들은 좀비들은 빠르게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와 역시 난 천재야"
이태린은 미리 대책을 세워둔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유리벽 옆에 놓여진 소화기를 들어 균열이 간 유리벽에 던졌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유리는 산산 조각이 났고, 이태린은 카시트를 집어 그 틈으로 빠져나왔다.
저 멀리서 자동차가 빵빵 거리며 일정하게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이태린 이 미친새끼. 주변 둘러봤다며!!!!"
태연은 차안에서 들리지도 않는 이태린에게 욕을 하며 주차장을 계속해서 돌았다.
수십마리의 좀비가 200여 마리의 좀비가 될때까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이태린은 손을 흔들며 휴게소 끝의 주유소로 달려갔다.
차태연은 차속도를 올려 주유소로 향했고,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차가 드리프트를 하듯이 미끄러졌고, 이태린의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다행히도 비 덕분에 좀비들의 속도가 조금 느려져서 아직 좀비들은 주유소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때 태린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주유기를 집어들었다.
주유기 방아쇠를 누르자 기름이 나왔고, 태린은 기뻐했다.
"야 이태린 뭐해? 빨리 타. 다 죽어!!!"
태신은 뒷자석에 탄 채로 이태린에게 말했다.
"기다려봐."
태린은 기름을 바닥에 뿌리며 말했다.
좀비들은 30m 밖까지 도착해있었다.
태린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자 화르륵하며 불길이 치솟았고, 달려오던 좀비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뛰어오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불속에 뛰어들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핳핳핳핳"
좀비들이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며 태린은 미친듯이 웃어재꼈다.
"미친새끼야 빨리타!!"
태신은 차에서 내려 카시트와 태린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
태연은 태신이 문을 닫기도 전에 출발했고, 겨우겨우 좀비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아 맞다. 그거 선물이다."
태린은 카시트를 가리키며 태신에게 말했다.
태신은 뭔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만 보았다.
태연은 주먹으로 태린을 내리치며 타박했다.
"아 먹을거하고 카시트 가져왔잖아. 그리고 살아있으면 됐지 뭘"
태린은 양팔로 주먹을 막고, 실실 웃으며 답했다.
몇분을 달리다가 처음 한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지 태연은 발과 손을 떨기 시작했다.
"저 앞에 세워 바꾸자"
유심히 지켜보던 태린이 말했다.
"괜찮아"
괜히 걱정끼치는게 싫었던 태연이 답했다.
"바꿔"
태린은 다시금 단호히 얘기했다.
태연은 입으로 '쯧' 소리를 내며 차를 세우고 태린과 자리를 바꿨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기 때문에 날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마침 IC도 나왔기에 태린은 차를 고속도로 밖으로 돌렸다.
나오자마자 대형마트 옆 빌라가 있었기에 그곳으로 가서 차를 주차시키고, 트렁크에서 애좀들을 꺼내서 기둥에 묶어두었다.
이번에도 태린은 먼저 확인을 하고 오려다가 태연과 태신이 강하게 반대했기에 다같이 가기로 했다.
3층의 작은 빌라의 각 층에는 2호씩의 집이 있었다.
1층 문을 막은뒤에 태린은 밑에서부터 수색을 하자고 하였다.
태린이 집을 수색하는 동안에 태연과 태신은 문 앞에서 위의 계단을 경계하였다.
1층은 조금 어수선했지만 별다른 특이한 것은 없었고, 2층에서는 피가 보였다.
그리고 3층에서는 둔기에 맞은 듯한 시체가 있었다.
모든 곳의 수색을 마친 태린은 안전하다고 생각드는 1층의 102호로 가서 자리를 잡은 후에 애좀들을 방 한구석에 넣어두었다.
102호는 아기를 키우는 집이었는지 가족용 대형 매트리스가 거실에 깔려있었다.
"오랜만에 매트리스에서 자겠네"
태신이 미르를 달래며 기쁜듯이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다른방문은 다 잠궈두고 다 같이 거실에서 자자."
매트리스 뒤 쇼파에 털썩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태신과 태연은 방안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찾아왔다.
그들은 한동안 침대와 매트리스에 엎어져서 체력을 보충했다.
"꼬르륵~"
누군가의 배에서 배고픔의 신호를 알렸다.
"누구냐?"
태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 아냐"
"나도 아냐"
태연과 태신은 매트리스에 누운채로 답했다.
"미른가 보네 그럼. 소리도 큰게 장군감이야 아주"
태린은 장난스럽게 비꼰 후에 일어나서 가방을 뒤졌다.
가방에서는 칼로리바 3개가 나왔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이걸로 떼우자"
이태린은 칼로리바를 한개씩 태연, 태신에게 던졌다.
그녀들도 알겠다는 듯이 누워서 칼로리바를 받은 손을 흔들었다.
물도 식량도 바로 앞에 있었지만 갈 수 없었다.
남겨둔 식량과 물도 거의 다 사라져가고 있었다.
오늘 비가 오지 않았다면 다들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숨만 붙은채 흘러내려오는 물을 개처럼 핥아먹으며 구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박하진은 언젠가 올 구조대를 기다리며 유리창에 이마를 박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계속해서 세차게 내리고 있었기에, 좀비로 인한 멸망 이전에 홍수로 멸망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차가워진 유리창 때문에 슬슬 골이 깨져갈 것 같을때, 미세한 소리와 함께 앞의 빌라에서 빨간색 불빛이 보였다.
브레이크 등이었다.
곧이어 불빛은 꺼졌지만 박하진의 눈속에는 아직도 잔상이 남아있었다.
"..불.. 불! 불! 야 불빛이야. 차야 차!!"
"뭐? 진짜? 어디?"
박하진을 포함한 고등학생 무리 5명은 너도 나도 유리창에 얼굴을 붙였다.
"분명 저기 있었어! 잘 봐"
그들은 실낯같은 희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쳐다봤다.
20분 후 빨간 불빛이 올라갔다가 내려간 후에 꺼졌다.
"야! 저저거 트렁크 불빛 맞지? 어!"
"어 맞는 것 같은데? 이제 어쩌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비행기! 종이 비행기에 글자 써서 보내자!"
"병신새끼야 지금 비 오는데 어떻게 비행기를 날려"
"일단 해봐야 알거 아냐 개같은 새끼야"
"야 일단 창문에 글자 써서 붙이자. 종이는 많찮아. 종이 비행기도 비 좀 그칠거 같으면 해보고 어?"
박하진은 항상 싸우는 박성진과 김하성, 둘을 중재하면서 방안을 내놓았다.
"야 근데 이거 소용있어? 우리 한번 당했잖아. 저번에 구해달라고 했을때 다 뒤질뻔했어. 난 아직도 그 우비 입은 새끼들 생각하면 소름끼쳐"
최중혁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다들 그때의 기억이 생각났는지 몸을 떨었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배고파서 뒤질거야? 시도라도 해봐야지. 어차피 죽을려면 죽는 건 똑같아."
박하진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고"
최중혁은 살짝 누그러진 태도로 큰 키를 굽히며 말했다.
"야! 이거면 존나 잘 날지 않을까? 개 크잖아"
이민철이 작은키와 대비되는 상당히 큰 박스와 테이프를 가져왔다.
"테이프로 코팅해서 멀리 날리자. 그러면 조금 더 가지 않겠어? 비가 와도?"
"오오 역시 똑똑해"
박하진이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이후 그들은 종이에 빨간 글씨를 써서 각 창문에 붙였고, 여러개의 종이 비행기를 만들어서 테이프로 코팅하였다.
태연과 태신이 잠든것을 확인한 태린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박혜진에게 향했다.
그리고 머리를 빗겨주었다.
방안 침대에 같이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있었고, 달도 살짝 보였다.
"좀만 참아. 금방 데려가 줄게. 좀 있으면 끝이야"
태린의 말에 박혜진은 고양이처럼 그르릉대었다.
다시 구석에 박혜진을 묶은 후에 태진은 거실로 나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