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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생각을 해봤다.
'베카를 구해야하나?'
'버려야하나?'
'안돼, 내건데 어떻게 버려'
'아들은 어떻게 하지? 자기 엄마한테 말할까? 아니 제대로 듣지 못한건 아닐까?'
자신의 애인인 '베카'에 대한 소유욕, 지난번 대원들에게 '명령'하려 했을 때 대화를 들은 아들, 이로인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자신의 처지.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이 모든 생각들이 어지럽게 섞여 김남희의 머리속을 뒤집었다.
김남희는 자신이 통제권을 갖는 것을 좋아했다.
모든 권력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의 장인이 일부분 쥐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유일하게 완전한 통제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애인인 '베카' 뿐이었다.
베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얼마나 순종적이고, 매력적인지만 중요했다.
그렇기에 베카는 김남희에게 상당히 중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절대 아니었다.
옹졸하고, 소유욕 강하고, 권력을 휘두르기 좋아하는 인간. 그것이 김남희였다.
무언가 결심한듯이 김남희는 박태준을 찾아갔다.
"벌컥"
박태준과 김승준이 함께 있던 방문이 활짝하고 열림과 동시에 김남희가 들어왔다.
김남희는 김승준에게 손을 휘적거리며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 잠깐만 나가 있어"
눈을 꿈뻑대던 김승준은 박태준의 말에 어정쩡하게 문 밖으로 나갔다.
'뭔 시발 주변에 좆같은 새끼들밖에 없냐'
차마 말로 뱉지는 못하고 머리속으로 궁시렁대며 김승준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의원님 어쩐일로?"
박태준은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어 내가 박 총경한테 부탁할게 있어서. 아까 경특대 차량 타고 서울 공항으로 간다고 했지? 가기전에 한군데 들렀다가자"
김남희는 여전히 팔짱을 낀채로 거만하게 '부탁'했다.
"어디? 말씀하시는지?"
박태준은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참고 말했다.
"어어, 별로 안 멀어. 저기 선릉쪽 승리빌딩. 그쪽에 내 애인이 있거든. 그 한명만 구하고 바로 떠나자고"
김남희는 숨기려는 태도도 없이 박태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마치 박태준은 이 사실을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권력이 없다는 듯이.
박태준은 순간 얼이 빠졌고, 김남희는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계룡대로 갈 건데, 사태 진정되고 나면 자리가 좀 많이 나지 않겠어? 그러면 등에 몇명이라도 업고 있는게 낫잖아? 내가 밀어줄게 박 총경"
김남희는 평소에 하던대로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조종하려 들었다.
원래의 박태준이었다면 절대로 이 기회를 놓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박태준은 이태림이라는 인재를 만난 이후였다.
이태림 사건은 박태준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아무리 거대한 무리가 있어도 압도적인 무력이 있다면 다 소용이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계룡대에 도착한다 한들 그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다시금 무리를 만들고, 압도적인 무력을 불려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박태준 자신을 중심으로..
이러한 수많은 생각들이 박태준의 머리속을 스쳤고, 그때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칼이 보였다.
칼 끝에는 아직도 감염자들의 끈적한 피가 묻어 아주 천천히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박태준은 갑자기 김남희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고, 잠깐 당황한 김남희는 뒤로 물러서다가 칼 끝에 살짝 스쳤다.
"앗 씨.."
김남희는 잠깐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살짝 스쳤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릎꿇고 있는 박태준을 보았다.
"김남희 의원님! 제가 반드시 의원님 계룡대까지 무사히 모시겠습니다!!"
박태준은 마치 군기 바짝 든 이등병처럼 절도 있게 말했다.
"자자,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고?"
김남희는 박태준의 어깨를 툭툭 친 후에 아내와 아들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지금…45분. 더하기 15분은 5시. "
박태준은 칼을 집어들고, 시계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방에 돌아온 김남희는 뭔가 얼굴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박동도 빨라진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식욕이 넘쳐 흐르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김남희의 아내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어? 어어. 괜찮아."
의자에 앉자 왜인지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빠 근데 어제 구하러 간다는게 누구에요?"
김남희 의원의 어린 아들은 궁금증과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아빠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를 구하러 가?"
조금 눈치를 챘는지 김남희의 아내는 언성을 높여서 물었다.
"아니… 그게...허억, 허억,, 허억, 허억"
김남희의 숨이 가빠지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아내의 추궁은 계속되었다.
아내의 추궁, 아들의 물음, 몸의 이상함. 이 모든것이 뒤 섞였다.
'뚝'
김남희의 머리속에서 무언가 끊기는 소리가 났고, 쓰러졌다.
입에서는 하얀 거품이 일었고, 온몸은 경기를 일으켰다.
"여보! 여보오!!!!"
김남희의 아내는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이 소리를 들은 경특대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때 박태준은 이미 김남희 방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김남희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김남희는 곧이어 좀비로 변했고, 자신의 아내와 아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김남희 의원 방에 들어가기 꺼려하던 대원들은 좀비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들어가려 했다. 박태준은 솔선수범 하려는 듯이 먼저 방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쥐고 있던 칼로 김남희 의원의 목을 베어냈다.
이 광경을 본 대원들의 눈은 반짝였다. 자신들이 지금 진정으로 따라야 할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어서 박태준은 아직 변하지 않은 김남희의 아들과 아내의 목까지 베어내었다.
"이게 무슨일이야!!"
뒤늦게 달려온 이태성이 소리지르며 물었다.
"박태준 총경님이 감염자로 변한 세 사람을 처리했습니다."
"뭐? 형 진짜야?"
"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걸음걸이가 이상해서 쫓아왔더니 이렇게 되어있더라"
박태준은 스트레칭을 하며 답했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곧이어 김승준도 박태준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할려고 그런거에요? 들키면 어쩌려고요!"
김승준은 박태준 옆에서 사태 이후 보좌를 오래했다. 그래서 그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시끄러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거야."
박태준은 아까 반짝이는 대원들의 눈을 보았다. 그들은 장기말이다. 누군가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장기말.
그 명령을 박태준이 내려줄 수 있었다.
이제 장기말들이 주인을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박태준은 느끼고 있었다.
김남희 의원의 폭언과 폭행은 온갖 상황을 버텨낸 대원들에게도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같이 갖혀있던 몇주 동안 대원들의 화는 쌓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대장 이태성에게 말해봐도 이태성 또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게다가 이미 김남희 의원의 고집 때문에 대원 몇명이 희생당했기에 그에 대한 적개심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뭔지 박태준이 온지 하루도 안되어서 그 적개심을 풀어주었다.
"똑똑"
박태준의 방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반투명 유리문 밖으로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됐어!!'
박태준은 기쁨의 비명을 지르려다 겨우 참아내고 목을 가다듬었다.
"네에~. 들어오세요."
"충성! 경찰특공대 대원 김혁수입니다."
"충성, 그래서 무슨일이에요?"
박태준은 경례를 받으며 물었다.
"멀티플랙스 폭발.. 시키면 저희 빠져나갈 수 있는 겁니까?"
김혁수는 망설이며 말했다.
"맞아요. 남쪽으로 가는 길목쪽에 감염자 무리가 있어요. 멀티플랙스를 폭발시키면 감염자들은 직선으로 여기를 향해 올거에요. 저희는 그 틈에 우회해서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으로 가면 돼요. 내가 구역 확인 놓았으니까 내 지시 따르면 되고요."
남쪽에 좀비들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 확인 구역 따위 박태준은 몰랐다. 그저 이들을 설득하기만하면 되었다.
"그러면 저희가 하겠습니다. 차량 대기시켰다가 폭파시키고 빠져나가죠."
이튿날 대부분의 경특대원들은 멀티플랙스로 갈 준비를 했고, 마음을 정하지 못한 대원들은 갈팡지팡하고 있었다.
준비하는 소리에 이태성은 놀라서 로비로 나왔다.
"야 이 미친새끼들아! 뭐하는거야!"
"...멀티플랙스로 갑니다."
김혁수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뭐? 형 이거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러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 다 죽어!"
이태성이 박태준을 보고 성을 내며 말했다.
"태성아, 서울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다 피신했어. 걱정안해도 돼"
태준은 손사래를 치며 태성을 안심시키려했다.
"형!! 내가 여기서 어제도 피난 가는 사람들 감염자들한테 물어뜯기는 걸 봤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태성은 절규하듯이 말했다.
"어느정도 피해는 어쩔 수 없어!"
"어느정도가 아니잖아!!! 서울에 인구가 몇인데!! 몇명이나 남아있다고 장담할 수 있어?"
박태준은 입을 꾸욱 닫았다.
"야 니들 빨리 다 짐 풀어!"
이태성은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대장님 지금 저희가 살 수 있는 길은 이거 하나뿐입니다. 이제 식량도 없습니다."
김혁수가 말했다.
"혁수야 너까지 왜 그래!?!"
"아이 씨발! 형! 우리 생각은 안해? 저번에 김남희 그 새끼 되도 않는 고집 들어주다가 동기 3명이 죽었어! 형이 지금 지휘할 능력이 되긴 해?"
"그건 내가 미안하다. 그래도 이건 안돼.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다고!!!"
"하아…시발.. 솔직히 예전부터 위선적인거 맘에 안들었어."
김혁수는 갑자기 권총을 꺼내 이태성의 머리를 쐈다. 이태성의 피는 사방으로 퍼졌지만 흑복을 입고 있던 대원들의 옷은 여전히 검은색 그대로였다.
박태준은 여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멍한 10초가 지나자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없이 대원들과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갈팡질팡하던 대원들도 이태성의 죽음을 보고 자연스레 따라갔다.
지하주차장에서 여분의 기름을 챙기는 작업을 한 후에 멀티플랙스로 향했다.
그들은 감염자가 별로 없던 멀티플랙스의 주차장으로 향했고, 가스배관을 찾아내었다. 그곳에 폭발물을 설치한 그들은 타이머를 설정하고 서울 공항을 향해 달렸다.
10분가량을 달렸을까, 서울쪽에서는 굉음과 함께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고, 곧이어 감염자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