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죽었다.
태린은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허망함, 단지 그뿐이었다.
태린은 살면서 가끔 자신이나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부모님과의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고, 엄마와 아빠의 각각의 사정은 태린에게 영향을 끼쳤다.
태린의 엄마는 편집증을 앓고 있었다.
개개의 무작위적인 우연한 사건을 단지 하나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못하고 그 모든 사건을 하나의 의도를 가진 무언가로 보았다.
태린은 이해해보려 노력해보았지만 몇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자 체념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엄마가 죽든 태린 자신이 죽든 아니면 아빠가 죽든 누구든 가족 한명이 죽으면 인생이 편해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애가 강했던 태린이기에 이런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는 것을 태린 자신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날 태린의 엄마는 장을 봐오다가 보행자 신호에 엑셀을 밟은 운전자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사고 직후 운전자는 심한 경련이 일고 있었고, 태린의 엄마는 즉사했다.
엄마의 죽음을 가끔 상상만 해오던 태린은 허망함만을 느낀채로 장례식장 빈소 구석에 기대 상념에 빠져있었다.
동공은 풀려 눈앞의 벽이 아닌 보이지 않는 더 먼곳을 응시했고, 온몸은 힘이 빠진채로 흐느적거렸다.
친척들과 친구들이 위로를 하러 왔지만 태린은 그 누군가 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엄마의 정신병으로 인해 온몸에 채워졌던 스트레스는 더이상 쌓이지 않았지만 그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도 있는 유일한 단 한 사람은 더이상 이 사회에,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분노, 짜증, 슬픔, 안도,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태린의 머리속에 꽉 채워졌다.
태린이 상상만해왔던 해방은 이 감정들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이튿날 더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다.
빈소의 침울한 분위기를 보고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따랐지만 점점 많은 사람이 모이자 유족의 슬픔은 많은 이들의 대화소리에 묻히게 되었다.
“아아악—————!!!”
갑작스럽게 남자의 굵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몇 사람만이 그 소리를 들었지만, 장례식장에서의 비통한 비명으로 착각했다.
유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장례식은 또하나의 만남의 장일뿐이다.
유족에게 잠깐의 조의를 표하고, 공통된 지인과 담소를 나누는 장.
그러한 장에서 많은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꺄아아악—-!!!”
이어서 젊은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도 들렸다.
대화를 나누며 웅성이던 장례식장은 이 소리에 점점 조용해졌다. 이어서 더 많은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장례식장은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은 소리의 근원지인 계단위로 향했고, 이윽고 몇몇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된채로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괴.. 괴… 괴물이야. 살려줘요”
계단을 내려오다 벽에 부딪힌 중년 여성은 머리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오른쪽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같이 내려온 사람들은 장례식장 깊숙한 곳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사람 비명이라기엔 애매한 울음소리가 계단 입구에 퍼졌다.
무언가가 오고 있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은 이들은 먼저 도망친 이들을 따라 뛰었다.
장례식장 복도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자 식사를 하던 이들도 일어서서 복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복도에 있던 이들이 모두 도망치자 찰나의 고요가 찾아왔다.
"꺄아아아악"
찾아온 고요는 비명 소리와 함께 깨어졌다.
곧 우당탕 소리가 나며 남자 중학생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들어왔다.
소리에 이끌려 복도로 나온 중년 남성은 남학생을 보고는 바로 뛰어갔다.
찰나의 순간 무언가 남학생을 덮쳤고, 이어서 다른 무언가가 또 덮쳤다.
남학생은 고통에 신음했고, 중년남성은 세발자국 뒤에서 다리를 떨며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복도와 빈소의 경계에서 그 광경을 목도한 이들 또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한채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비상계단의 하얀색 벽 위에는 검붉은 꽃이 피었고, 또 계속해서 피어났다.
다시한번의 정적, 식사를 마친 좀비들 뒤로 또다른 좀비들이 계단으로 쏟아져 나왔고, 장례식장의 모든 구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시각, 여전히 태린의 가족들은 아내, 엄마의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꼈을때는 이미 눈앞에서 아빠 친구의 사지가 찢겨나가고 있었고, 태린의 고모 목에서 핏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솟구친 피는 태린의 얼굴 위로, 태린 엄마의 영정 사진 위로 튀었다.
태린의 누나, 형, 아빠는 빈소의 제삿상 위의 촛대와 정종 병을 집어 들고는 맞섰다.
그때까지도 태린은 세상이 빨갛게 물들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자에게 눈길이 갔다.
얼굴의 반이 날아가고, 머리는 산발에 팔 한쪽이 기괴하게 꺽여있었지만 태린은 그 여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여깄네 하...하.."
엄마의 편집증은 시시하게 시작됐었다.
통신에러.
특정 지역, 특정 시간을 지날때 네비게이션과 핸드폰이 이상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상해지는 것은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그런다고.
그러나 신기하게도 누군가와 동행할때는 정상이었다.
태린은 처음에는 믿어보려 했으나, 이야기는 점점 확대되고 왜곡되고 의도를 기저에 두는 형태가 되었다.
화를 잘 분출하지 않던 태린의 내부에서는 많은 스트레스가 쌓여갔고, 그것을 풀 방도는 없었다.
엄마가 괜찮아지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이후 태린의 분노는 갈 곳을 잃었고, 속에서 짓눌린채로 짓물을 뿜어내며 썩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태린의 눈 앞에는 엄마를 죽게만든 그 여자가 서있었다.
갈곳없던 분노가 향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자신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인간.
그 순간 너무나 고마웠다. 살아 움직여줘서. 태린 자신이 직접 죽일 수 있어서.
메고 있던 검은색 넥타이를 오른손에 꽉 감고 그 여자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왼손으로 멱살을 잡은체로 오른손으로는 얼굴을 계속해서 가격했다.
태린은 자신이 속으로만 웃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태린의 웃음소리는 생생히 퍼져나갔다.
좀비와 맞서던 사람들도 한번씩 태린을 힐끔 볼 정도였다.
몇 분 동안 주먹질을 하자 ‘빠직’하는 소리가 났고, 이미 그 여자의 얼굴은 사람의 형체가 아닌 고깃덩이였다.
그럼에도 움직였고, 태린은 다시 웃으며 돈까스 고기를 얇게 피듯이 골구로 가격하였다.
“~~”
태린의 귓가에 무언가가 들렸다.
“~~…야!”
점점 선명해졌다.
“빨리 도망쳐 이새끼야!!!”
아빠와 형이 태린의 양팔을 잡고 끌고가려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태린은 상황 파악을 간신히 한 후에 같이 도망갔다.
태린의 가족은 가장 깊숙히 있는 화장실로 피신하였다.
문을 잠그고 조용히 기다렸다.
수십 초간 조용했기에 안심하려는 찰나에 반투명 유리문 외부에 검붉은 손자국이 생김과 동시에 ’텅~’ 하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수많은 손자국이 생겼고, 유리문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린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복수의 감흥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유리문은 깨어졌고, 태린을 제외한 태린의 가족은 좀비들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무기를 든 손은 새하얗다가 보라색으로 변해갔고, 쉼없이 흐르는 땀에 미끄러운 손은 피로 변해갔다.
단 한명의 한번의 미끄러짐으로 치열한 싸움은 종식 되었고, 태린의 가족은 막내인 태린만은 화장실칸으로 겨우 대피시켰다.
그 싸가지 없고, 태린이 용서하지 못하는 누나도 태린만은 도망치게 하려고 하였다.
“으적으적”
한때 혈육이었던 자들의 고깃소리이다.
맛깔나지만 더럽고 구토나는 소리, 냄새.
바닥으로 흘러들어오는 끈적한 검붉은 액체. 가끔씩 태린이 있는 칸을 두드리는 소리.
자신이 복수에 정신 팔리지 않았다면 가족이 죽지 않을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
화장실에서 좀비들의 고기파티가 끝나고 밖의 무언가가 좀비들의 시선을 끌었는지 장례식장은 조용해졌다.
태린이 있던 화장실은 청소중이었는지 강한 락스냄새가 났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가족들의 남은 흔적이라고는 자그마한 뼈조각과 핏물 뿐이었다.
태린은 몇개의 뼛조각을 자신의 넥타이에 말은 후에 피를 적셨다.
이후 태린은 이끌리듯이 영안실로 향했다.
엄마가 누워있는 관의 나무 못을 하나하나 뽑은 후에 관뚜껑을 열었다. 그
리고 차갑게 식은 엄마를 끌어안았다.
원망할게 남아있지 않은 삶은 공허하기 짝이없었다.
원망을 행복으로 바꾸는것도 이제는 완전히 불가능했다.
서러웠다.
태린은 근처 주유소에 가서 휘발유를 말통에 가득 채운후에 엄마의 관 위에 뿌리고 그위에 아까 말아둔 넥타이를 얹었다.
"잘가요"
엷게 읊조린 태린은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엄마는 따뜻해보였다.
그동안 세상이 따뜻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따뜻했으면 했다.
그렇게 세차게 타오르던 불꽃은 꺼지고 나무숯과 재만 남게 되었다.
태린은 빈물통을 찾아와서는 거기에 재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태린은 터덜터덜 길을 나섰다.
그렇게 길을 걷던 태린 앞에 한 남자가 좀비에게 쫓기고 있었다.
좀비는 남성에게 뛰어들었고, 남성은 넘어지며 자신의 손도끼를 떨어뜨렸다.
"살려줘, 살려 으으아아아아악"
태린의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남성은 좀비에게 목을 뜯겨 잡아먹혔다.
태린은 천천히 식사중인 좀비 옆으로 가서 손도끼를 집어들고는 좀비를 수도없이 찍어내렸다.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한숨을 돌리려하니 목을 뜯긴 남자가 되살아났다.
태린은 다시금 도끼를 들어 도끼의 주인을 죽였다.
무기로 사람의 형상을 죽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때부터 태린은 이 도끼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도끼에 스민 피가 늘어갈수록 태린의 생존실력은 늘어갔고, 옆에 따라다니는 인원도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