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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창 수림1단지로 향하던 태린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잠깐 멈춰서서 가방을 뒤졌다. 태신은 뭐하는 건가 궁금해서 뒤로 가서 보니 가방에서 테이프와 수류탄을 꺼내고 있었다. 꺼낸 수류탄의 핀을 뽑은 태린은 태신에게 테이프로 수류탄을 한바퀴 둘르라고 하였다. 그렇게 1개의 수류탄을 준비한 태린은 할아버지의 재갈을 푼 후에 입에 물렸다.
“됐다! 다시 가자”
상쾌하고 명랑하게 가자고 하는 태린을 보고는 태신은 다시금 ‘이 사람을 등지면 안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좀비 중 한명이 자신의 할아버지와 상당히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팔이 잘려있고, 눈, 코, 입이 가리어져 있지만 어쩐지 할아버지를 닮은 좀비 외에 다른 이들도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태린을 쫓아올때부터 이상한 친숙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더 이상함을 느꼈다.
‘이 좀비들은 어디서 데려온거지?’
“저기… 아니다”
“?”
태린은 되묻지 않고 다시 출발했다. 태신은 아무리 태린일지라도 자신이 알던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데리고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죽이는 것은 자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려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이니까. 하지만 애완 좀비로 만들어 끌고 다니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원래 좀비였던 사람들을 끌고 다닌다면 모를까,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끌고 다니다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태신은 차마 태린에게 물어보지 않고, 애좀들에게서 느껴지는 친숙함도 애써 부정하려 했다.
수림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총과 도끼를 든 인원 2명이 있었고, 그 뒤 놀이터에 열댓명의 사람들 또한 각자 무기를 들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이터 제일 뒤쪽에 쇠사슬에 묶인 태연과 그 앞에 풍채가 좋은 김춘자가 보였다. 그 옆에는 김춘자의 동생이 미르를 안고 있었는데 미르가 너무 울자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춘자는 태연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었다.
“미르? 태연이?”
태신은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어 니 동생들 저깄네”
태린은 서둘러 풀숲에 숨어 칼로 할아버지의 배를 째며 칼에 묻은 휘발유를 할아버지의 재갈에 적셨다. 할아버지의 코를 막고 있던 헝겁을 풀자 태연의 피냄새가 퍼졌고, 할아버지는 날뛰기 시작했다.
“야 차태신 다이하드 2 봤냐?”
태린은 신난 표정으로 같이 숨은 태신에게 물었다.
“뭐?”
태신은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일단 자신은 무언가 물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잠자코 따라왔지만 자신의 아들과 동생을 만날지는 몰랐다. 그 상황에서 태린은 너무 자연스레 행동했고, 심지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상당히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다이하드2 봤냐고!!”
“어…어어”
할아버지를 잡고 있던 쇠사슬을 풀자 할아버지는 태연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막아!”
입구에서 막고 있던 2명은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으나 방탄복 때문에 할아버지를 저지하지 못했다.
태린은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브루스 윌리스 명대사 알아?”
시끄러운 총소리에 태린은 이제 소리지르며 말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마찬가지로 태신 역시 소리를 지르며 답했다.
“옛날부터 이런거 해보고 싶었어!! 할아버지한테 작별인사 해!”
”뭐?“
태린은 해맑게 말하며 할아버지 배에서 흘러나온 휘발유에 라이터를 떨궜다.
“이피카이예 마더 퍼커!!! 아핰핰핰하캏캏”
총소리에 놀란 식인무리들은 입구로 몰려들어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고 막으려 하였다.
태린이 붙인 불은 빠르게 기름을 따라 흘러갔고, 이내 할아버지에게 도달하였다. 할아버지가 무리에게 도달할 때 즈음 배의 남은 공간에 차있던 유증기가 폭발하였고, 무리들은 불길에 휩쌓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불을 끄려고 했다.
할아버지의 재갈에도 붙은 불은 수류탄에 두른 얇은 테이프를 녹였고, 안전손잡이는 자연스레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폭발하였다. 무리들에게는 불붙은 육편이 들러붙었고, 할아버지의 머리뼈 파편이 박혔다.
김춘자는 칼을 손에 꽉 진채로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머리 파편이 팔에 박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은채로. 태신은 안절부절하고 있었고, 태린은 마치 불멍을 하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불타는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넌… 미쳤어”
태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미쳤으니까 니 동생을 구해주지. 너도 살려주고.”
여전히 눈을 떼지 않으며 태신의 말에 답했다. 태신은 다시 답하지 않았다.
“이태린 이 시발 새끼. 안전하다며…”
김춘자가 칼을 들었을 때, 차태연은 자신의 마지막이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후회섞인 욕설을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때, 입구쪽이 소란스러웠고 이내 총소리까지 들렸다. 무슨일인가 싶어 태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태연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빠르게 가까워졌고, 태연은 비로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태연이 얼굴을 알아봄과 동시에 할아버지는 폭발하였다.
“.. 내가 원하는 결말”
태연의 작은 읆조림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의 폭발이 일었고, 할아버지의 육편이 사방으로 날라다녔다. 다행히도 태연과의 거리는 충분해서 태연은 털끝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내 선택… 큭큭크”
태연은 태린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만들어냈다. 곳곳에 널려진 할아버지의 파편들. 너무나 개운했다. 더이상 그는 온전한 하나의 자신으로 있지 않으며 자신 앞에 들이밀 얼굴도 없다. 영영 이 세상에 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태연에게 안도감과 상쾌함을 안겨주었다.
미동도 없이 불 타는 무리들을 바라보던 김춘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이태린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이태린은 마치 미르가 배실거리듯이 웃고 있었다. 김춘자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놈이다.’
피는 차가워지고, 머리는 맑아졌다. 얼굴에는 실소가 퍼진 후 빠르게 구겨졌다. 다리에는 피가 활발히 돌았다. 김춘자는 순식간에 이태린의 앞으로 달려나가 칼을 휘둘렀다. 태린은 빠르게 도끼를 꺼내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야! 넌 태연이 풀어주고 같이 미르 찾아!”
태린은 김춘자의 연속된 공격을 받아내며 태신에게 소리쳤다.
할아버지의 폭발, 묶여있는 태연에 정신이 혼란했던 태신은 미르라는 소리에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태신은 태연에게 뛰어가서 덜렁거리는 팔뚝살을 헝겁으로 압박하여 지혈을 한 후에 쇠사슬을 풀어내었다.
“언니!… 어떻게 왔어 하하”
태연은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병신 같은 년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태신은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해. 빨리 미르 찾으러 가자”
둘은 가까운 아파트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내 아들 왜 죽였어!!”
김춘자는 악을 쓰며 물었다.
“아니 그럼 저 죽이려하는데 살려줘요?”
태린은 비웃으며 답했다.
“적어도 묻어줄수는 있었잖아. 그렇게 처참하게… 놔둘 필요는 없었잖아”
춘자는 다시한번 크게 칼을 휘둘렀으나 태린에게 닿지 않았다.
“놔두었다고요? 아닌데”
태린은 실실 쪼갰다.
“뭐?”
김춘자는 칼질을 멈추었고, 태린은 얘기를 계속했다.
“멀쩡한 사람 잡아서 먹던 댁들 최후가 좋을줄 알았어요? 뭐 아니라고 생각해도 이해해요. 세상이 이꼴인데 사람 먹는 것 쯤이야 뭐. 근데 저를 공격하면 안 됐죠. 어 쨋 든 그래서, 좀비들 밥으로 줬어요. 살아있을때. 비명소리가 찰지더라구요. 형체가 남아있지도 않을텐데 어떻게 잘 찾으셨나보네요? ”
“아아아아아아아악”
김춘자는 태린의 말을 듣고 더욱 분노에 차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태린은 계속해서 쉽게 피하였고, 춘자는 지쳐갔다. 그렇게 한동안 공방이 이어지다 결국 춘자는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허억,,, 허억,,, 그러는 너는 곱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끔찍하게 죽을거야”
“네, 뭐 저도 최후가 좋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름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인지 적이 많아서요. 그래도 뒤져서는 좋은 곳 가지 않겠어요? 무교지만”
“뭐 어쨋든 잘 가세요.”
태린은 춘자에게 천천히 다가가 도끼로 머리를 내리쳤다. 춘자는 머리에 도끼가 내리꽂히는 순간까지 태린을 빤히 바라보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김춘자의 남동생 김춘성은 미르를 안고 온 힘을 다해 옥상으로 달렸다. 6층밖에 되지 않는 아파트였지만 춘성의 폐는 터질듯했다.
“씨팔, 담배를 끊어야했는데”
옥상에 도착한 춘성은 왼손으로는 미르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K-2소총을 집어들고 출입문을 향해 조준했다. 곧이어 태신과 태연은 헉헉대며 옥상에 도착해 출입문을 열려했다. 문소리가 끼익하고 날때 총성이 들렸다. 태신과 태연은 놀라서 뒤로 넘어졌고, 춘성은 소리쳤다.
“씨발 오지마 이새끼들아. 니들 오면 다 쏴버릴 줄 알아!”
욕을 하며 소리쳤지만 춘성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알았어요 아저씨. 저희 미르만 넘겨주시면 저희 그냥 갈게요. 네? ”
태신은 울먹이며 빌었다.
“미르? 이 애기?”
“네, 네네. 제발요.”
“진짜 애만 넘기면 갈거야?”
“네 진짜요. 중간에 미르 두시면 저만 가서 데리고 올게요.”
춘성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고민했다.
“알았어. 대신 애기 데리고 간 다음에 출구에서 먼 쪽에서 대기해. 나 출입문 빠져나가기 전까지 움직이면 애기고 나발이고 다 뒤지는거야. 알겠어?”
“알겠어요. 네, 네. 시키는대로 할테니까 미르만 안전하면 돼요.”
말을 마친 태신은 태연의 손을 잡고 같이 나갔다. ‘아씨 뭐야?’ 태연은 원래 자신은 나가지 않고 숨어있다가 춘성을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미르 때문에 정신이 없던 태신 때문에 같이 나가게 된다.
춘성은 옥상 한가운데에 미르를 놓은 후에 태신과 태연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태신과 태연은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출입문에서 가장 먼 쪽으로 갔고, 춘성 또한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출입문 쪽으로 갔다.
“거기 노끈 있지? 그걸로 난간에 니들 손 뒤로 묶어”
“네네”
태연은 짜증난다는듯이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태연과 태신은 손을 묶었고, 그것을 확인한 춘성은 뒤를 돌아 출입문으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뒤를 돈 순간 춘성이 본것은 태연을 묶었던 피묻은 쇠사슬을 가지고 있는 태린이었다. 춘성이 소총을 제대로 조준을 하기도 전에 태린은 총부리를 쇠사슬로 묶어 빼앗았고, 직후 바로 그 쇠사슬로 목을 졸랐다.
“난…. 그냥… 시..키,,는 대로… 헉헉… 의도적인건… 아녔..어어”
춘성은 이 순간까지도 삶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로 태린을 설득하려 했지만 태린의 입가에는 이미 미소가 충만했고, 그만둘 생각은 없어보였다.
“제…발… 살…”
태린의 생각보다 춘성이 팔팔하자 태린은 계단의 난간 뒤쪽으로 뛰어내렸다.
“우득!”
파열음과 함께 춘성의 몸은 흐느적 되었고, 태린은 난간에 대롱대롱 메달렸다. 손에 힘을 풀고, 밑에 칸으로 착지하니 손이 떨리고 있었다. 태린은 떨리는 손을 가만히 보다가 양손을 비비고, 얼굴에 가져다대며 마사지를 하였다.
“하아아아~ 하루 기이이일다.”
스트레칭을 하며 이미 죽은 춘성에게 다가갔다.
“애는 착하다, 고의가 아니었다….. 다 꾸밈말이에요. 무엇하나 진실이 없죠”
태린은 춘성의 눈을 감겨주고는 미르에게 향했다. 아파트 한 단지가 떠나가도록 울던 미르를 태린이 안으니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왼손으로 미르를 잡으며 오른손으로는 태연과 태신의 줄을 풀어주었다.
“안전하다며?”
태연이 불만스럽게 얘기하였다.
“나 못 만났으면 너 이미 사람고기 됐어.”
태린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람고기? 뭔 소리야?”
태신은 영문도 모를채로 태린을 쫓아왔기에 아무런 정보도 몰랐다.
“잘 생각해봐. 사람을 잡아간다? 1번 여자여서 2번 장기교체 3번 먹으려고. 2번은 뭐 변변한 기구가 없으니 제외시키고, 그러면 1번이나 3번이지.”
겨우 매듭을 푼 태린은 손을 탁탁 털며 얘기했다. 손이 풀린 태신은 태린과 미르를 끌어안았다.
“엄마가 미안해…. 언니가 미안해.. 많이 아팠지. ”
‘엄마?’ 물어보고 싶은게 많은 태린이었지만 굳이 가족상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입을 닫고 있었다.
“야 일단 여기부터 나가자. 아까 화려하게 터트려서 좀 있으면 좀비들 많이 몰려올거야. 아까 보니까 근처에 약국 있으니까 거기로 가서 오늘밤 나자”
태신과 태연은 끄덕이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계단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자 10마리 정도의 좀비가 포식하고 있었다. 태린은 고기에 집중하고 있는 그들 몇몇에게 천천히 소리없이 다가가 목을 도끼로 내리쳤고,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몇몇에게는 안면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태연도 태린을 도와 2마리 좀비에게 단검을 박아넣었다.
하지만 태연과 태신의 사고는 온통 할아버지의 시체에 쏠려있었다.
‘지긋지긋했던 새끼’
‘역겨운 인간’
‘그래 드디어 갔구나. 해방이구나’
‘다음생애라도 만나지 않기를’
‘그렇게 폭탄주 좋아하더만 잘 터졌네’
‘좆같은 새끼’
태연과 태신은 미르가 나쁜말 듣는게 싫었기에 속으로만 온갖욕을 하며 지금까지 당했던 수모를 속으로 삭혔다.
약국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약품이 털려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의료용 실과 항생제, 붕대를 찾을 수 있었고, 냉장고에는 소주 또한 있었다. 소주를 집은 태린은 바로 뚜껑을 따서 태연에게 갖다주었다.
“??뭔데?”
“마셔. 너 그거 맨살에 꼬매야돼”
“아냐, 이거 붕대만 잘 감으면 금방 나아”
자신의 상처를 감추며 태연이 말했다. 하지만 태린의 태도는 일관되었다.
“어쨋거나 꼬맬거야. 마시기 싫으면 안 마셔도 돼. 알아서 해”
태린은 알코올로 바늘을 적시며 봉합 준비를 하였다.
“아니 니가 무슨 의사야? 괜찮대도!”
태연은 떨면서 말했다.
“의사 아니라도 이거 봉합해야하는 건 누구나 알걸. 너 이거 잘못하면 괴사한다?”
태연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소주를 2병을 원샷하였다. 술을 마셔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빨리 많이 마신 적은 처음이었는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죽겄다. 근도 ㅇ ㅐ 므 이 서 엉 ㄴ ㅕㄴ 자 한테 수울 줘도 돼? 나아 쁘은 ㅇ ㅓ ㄹ 은 ㅇ ㅣ 누 애”
태연은 웃으며 태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적당히 잘 취했네. 야 차태신 니 동생 잘 잡아라”
차태신은 태연을 뒤에서 껴안았고, 태연은 몸부림 쳤다. 태린은 바로 태연의 팔뚝살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던 태린은 바느질에도 재주가 있었고 꽤나 예쁘게 꼬매졌다. 어느순간 몸부림치던 태연이 조용해져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태연은 이미 자고 있었다. 태린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붕대로 드레싱을 하며 봉합을 마쳤다. 그리고 뺨을 살살 때려 태연을 다시 깨운 후 항생제를 먹였다.
“휴우 하루가 진짜 길다.”
셔터를 내리고 모든 출입문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태린은 쉴 수 있었다. 태신도 겨우 미르를 재운 후에야 벽에 기대어 쉬었다.
“근데 니가 미르 엄마야?”
태린은 궁금했던 말을 끝내 꺼내었다. 태신은 태린을 흘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린도 더이상 묻지 않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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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창 수림1단지로 향하던 태린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잠깐 멈춰서서 가방을 뒤졌다. 태신은 뭐하는 건가 궁금해서 뒤로 가서 보니 가방에서 테이프와 수류탄을 꺼내고 있었다. 꺼낸 수류탄의 핀을 뽑은 태린은 태신에게 테이프로 수류탄을 한바퀴 둘르라고 하였다. 그렇게 1개의 수류탄을 준비한 태린은 할아버지의 재갈을 푼 후에 입에 물렸다.
“됐다! 다시 가자”
상쾌하고 명랑하게 가자고 하는 태린을 보고는 태신은 다시금 ‘이 사람을 등지면 안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좀비 중 한명이 자신의 할아버지와 상당히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팔이 잘려있고, 눈, 코, 입이 가리어져 있지만 어쩐지 할아버지를 닮은 좀비 외에 다른 이들도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태린을 쫓아올때부터 이상한 친숙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더 이상함을 느꼈다.
‘이 좀비들은 어디서 데려온거지?’
“저기… 아니다”
“?”
태린은 되묻지 않고 다시 출발했다. 태신은 아무리 태린일지라도 자신이 알던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데리고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죽이는 것은 자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려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이니까. 하지만 애완 좀비로 만들어 끌고 다니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원래 좀비였던 사람들을 끌고 다닌다면 모를까,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끌고 다니다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태신은 차마 태린에게 물어보지 않고, 애좀들에게서 느껴지는 친숙함도 애써 부정하려 했다.
수림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총과 도끼를 든 인원 2명이 있었고, 그 뒤 놀이터에 열댓명의 사람들 또한 각자 무기를 들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이터 제일 뒤쪽에 쇠사슬에 묶인 태연과 그 앞에 풍채가 좋은 김춘자가 보였다. 그 옆에는 김춘자의 동생이 미르를 안고 있었는데 미르가 너무 울자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춘자는 태연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었다.
“미르? 태연이?”
태신은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어 니 동생들 저깄네”
태린은 서둘러 풀숲에 숨어 칼로 할아버지의 배를 째며 칼에 묻은 휘발유를 할아버지의 재갈에 적셨다. 할아버지의 코를 막고 있던 헝겁을 풀자 태연의 피냄새가 퍼졌고, 할아버지는 날뛰기 시작했다.
“야 차태신 다이하드 2 봤냐?”
태린은 신난 표정으로 같이 숨은 태신에게 물었다.
“뭐?”
태신은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일단 자신은 무언가 물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잠자코 따라왔지만 자신의 아들과 동생을 만날지는 몰랐다. 그 상황에서 태린은 너무 자연스레 행동했고, 심지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상당히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다이하드2 봤냐고!!”
“어…어어”
할아버지를 잡고 있던 쇠사슬을 풀자 할아버지는 태연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막아!”
입구에서 막고 있던 2명은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으나 방탄복 때문에 할아버지를 저지하지 못했다.
태린은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브루스 윌리스 명대사 알아?”
시끄러운 총소리에 태린은 이제 소리지르며 말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마찬가지로 태신 역시 소리를 지르며 답했다.
“옛날부터 이런거 해보고 싶었어!! 할아버지한테 작별인사 해!”
”뭐?“
태린은 해맑게 말하며 할아버지 배에서 흘러나온 휘발유에 라이터를 떨궜다.
“이피카이예 마더 퍼커!!! 아핰핰핰하캏캏”
총소리에 놀란 식인무리들은 입구로 몰려들어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고 막으려 하였다.
태린이 붙인 불은 빠르게 기름을 따라 흘러갔고, 이내 할아버지에게 도달하였다. 할아버지가 무리에게 도달할 때 즈음 배의 남은 공간에 차있던 유증기가 폭발하였고, 무리들은 불길에 휩쌓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불을 끄려고 했다.
할아버지의 재갈에도 붙은 불은 수류탄에 두른 얇은 테이프를 녹였고, 안전손잡이는 자연스레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폭발하였다. 무리들에게는 불붙은 육편이 들러붙었고, 할아버지의 머리뼈 파편이 박혔다.
김춘자는 칼을 손에 꽉 진채로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머리 파편이 팔에 박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은채로. 태신은 안절부절하고 있었고, 태린은 마치 불멍을 하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불타는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넌… 미쳤어”
태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미쳤으니까 니 동생을 구해주지. 너도 살려주고.”
여전히 눈을 떼지 않으며 태신의 말에 답했다. 태신은 다시 답하지 않았다.
“이태린 이 시발 새끼. 안전하다며…”
김춘자가 칼을 들었을 때, 차태연은 자신의 마지막이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후회섞인 욕설을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때, 입구쪽이 소란스러웠고 이내 총소리까지 들렸다. 무슨일인가 싶어 태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태연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빠르게 가까워졌고, 태연은 비로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태연이 얼굴을 알아봄과 동시에 할아버지는 폭발하였다.
“.. 내가 원하는 결말”
태연의 작은 읆조림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의 폭발이 일었고, 할아버지의 육편이 사방으로 날라다녔다. 다행히도 태연과의 거리는 충분해서 태연은 털끝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내 선택… 큭큭크”
태연은 태린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만들어냈다. 곳곳에 널려진 할아버지의 파편들. 너무나 개운했다. 더이상 그는 온전한 하나의 자신으로 있지 않으며 자신 앞에 들이밀 얼굴도 없다. 영영 이 세상에 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태연에게 안도감과 상쾌함을 안겨주었다.
미동도 없이 불 타는 무리들을 바라보던 김춘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이태린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이태린은 마치 미르가 배실거리듯이 웃고 있었다. 김춘자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놈이다.’
피는 차가워지고, 머리는 맑아졌다. 얼굴에는 실소가 퍼진 후 빠르게 구겨졌다. 다리에는 피가 활발히 돌았다. 김춘자는 순식간에 이태린의 앞으로 달려나가 칼을 휘둘렀다. 태린은 빠르게 도끼를 꺼내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야! 넌 태연이 풀어주고 같이 미르 찾아!”
태린은 김춘자의 연속된 공격을 받아내며 태신에게 소리쳤다.
할아버지의 폭발, 묶여있는 태연에 정신이 혼란했던 태신은 미르라는 소리에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태신은 태연에게 뛰어가서 덜렁거리는 팔뚝살을 헝겁으로 압박하여 지혈을 한 후에 쇠사슬을 풀어내었다.
“언니!… 어떻게 왔어 하하”
태연은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병신 같은 년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태신은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해. 빨리 미르 찾으러 가자”
둘은 가까운 아파트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내 아들 왜 죽였어!!”
김춘자는 악을 쓰며 물었다.
“아니 그럼 저 죽이려하는데 살려줘요?”
태린은 비웃으며 답했다.
“적어도 묻어줄수는 있었잖아. 그렇게 처참하게… 놔둘 필요는 없었잖아”
춘자는 다시한번 크게 칼을 휘둘렀으나 태린에게 닿지 않았다.
“놔두었다고요? 아닌데”
태린은 실실 쪼갰다.
“뭐?”
김춘자는 칼질을 멈추었고, 태린은 얘기를 계속했다.
“멀쩡한 사람 잡아서 먹던 댁들 최후가 좋을줄 알았어요? 뭐 아니라고 생각해도 이해해요. 세상이 이꼴인데 사람 먹는 것 쯤이야 뭐. 근데 저를 공격하면 안 됐죠. 어 쨋 든 그래서, 좀비들 밥으로 줬어요. 살아있을때. 비명소리가 찰지더라구요. 형체가 남아있지도 않을텐데 어떻게 잘 찾으셨나보네요? ”
“아아아아아아아악”
김춘자는 태린의 말을 듣고 더욱 분노에 차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태린은 계속해서 쉽게 피하였고, 춘자는 지쳐갔다. 그렇게 한동안 공방이 이어지다 결국 춘자는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허억,,, 허억,,, 그러는 너는 곱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끔찍하게 죽을거야”
“네, 뭐 저도 최후가 좋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름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인지 적이 많아서요. 그래도 뒤져서는 좋은 곳 가지 않겠어요? 무교지만”
“뭐 어쨋든 잘 가세요.”
태린은 춘자에게 천천히 다가가 도끼로 머리를 내리쳤다. 춘자는 머리에 도끼가 내리꽂히는 순간까지 태린을 빤히 바라보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김춘자의 남동생 김춘성은 미르를 안고 온 힘을 다해 옥상으로 달렸다. 6층밖에 되지 않는 아파트였지만 춘성의 폐는 터질듯했다.
“씨팔, 담배를 끊어야했는데”
옥상에 도착한 춘성은 왼손으로는 미르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K-2소총을 집어들고 출입문을 향해 조준했다. 곧이어 태신과 태연은 헉헉대며 옥상에 도착해 출입문을 열려했다. 문소리가 끼익하고 날때 총성이 들렸다. 태신과 태연은 놀라서 뒤로 넘어졌고, 춘성은 소리쳤다.
“씨발 오지마 이새끼들아. 니들 오면 다 쏴버릴 줄 알아!”
욕을 하며 소리쳤지만 춘성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알았어요 아저씨. 저희 미르만 넘겨주시면 저희 그냥 갈게요. 네? ”
태신은 울먹이며 빌었다.
“미르? 이 애기?”
“네, 네네. 제발요.”
“진짜 애만 넘기면 갈거야?”
“네 진짜요. 중간에 미르 두시면 저만 가서 데리고 올게요.”
춘성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고민했다.
“알았어. 대신 애기 데리고 간 다음에 출구에서 먼 쪽에서 대기해. 나 출입문 빠져나가기 전까지 움직이면 애기고 나발이고 다 뒤지는거야. 알겠어?”
“알겠어요. 네, 네. 시키는대로 할테니까 미르만 안전하면 돼요.”
말을 마친 태신은 태연의 손을 잡고 같이 나갔다. ‘아씨 뭐야?’ 태연은 원래 자신은 나가지 않고 숨어있다가 춘성을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미르 때문에 정신이 없던 태신 때문에 같이 나가게 된다.
춘성은 옥상 한가운데에 미르를 놓은 후에 태신과 태연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태신과 태연은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출입문에서 가장 먼 쪽으로 갔고, 춘성 또한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출입문 쪽으로 갔다.
“거기 노끈 있지? 그걸로 난간에 니들 손 뒤로 묶어”
“네네”
태연은 짜증난다는듯이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태연과 태신은 손을 묶었고, 그것을 확인한 춘성은 뒤를 돌아 출입문으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뒤를 돈 순간 춘성이 본것은 태연을 묶었던 피묻은 쇠사슬을 가지고 있는 태린이었다. 춘성이 소총을 제대로 조준을 하기도 전에 태린은 총부리를 쇠사슬로 묶어 빼앗았고, 직후 바로 그 쇠사슬로 목을 졸랐다.
“난…. 그냥… 시..키,,는 대로… 헉헉… 의도적인건… 아녔..어어”
춘성은 이 순간까지도 삶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로 태린을 설득하려 했지만 태린의 입가에는 이미 미소가 충만했고, 그만둘 생각은 없어보였다.
“제…발… 살…”
태린의 생각보다 춘성이 팔팔하자 태린은 계단의 난간 뒤쪽으로 뛰어내렸다.
“우득!”
파열음과 함께 춘성의 몸은 흐느적 되었고, 태린은 난간에 대롱대롱 메달렸다. 손에 힘을 풀고, 밑에 칸으로 착지하니 손이 떨리고 있었다. 태린은 떨리는 손을 가만히 보다가 양손을 비비고, 얼굴에 가져다대며 마사지를 하였다.
“하아아아~ 하루 기이이일다.”
스트레칭을 하며 이미 죽은 춘성에게 다가갔다.
“애는 착하다, 고의가 아니었다….. 다 꾸밈말이에요. 무엇하나 진실이 없죠”
태린은 춘성의 눈을 감겨주고는 미르에게 향했다. 아파트 한 단지가 떠나가도록 울던 미르를 태린이 안으니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왼손으로 미르를 잡으며 오른손으로는 태연과 태신의 줄을 풀어주었다.
“안전하다며?”
태연이 불만스럽게 얘기하였다.
“나 못 만났으면 너 이미 사람고기 됐어.”
태린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람고기? 뭔 소리야?”
태신은 영문도 모를채로 태린을 쫓아왔기에 아무런 정보도 몰랐다.
“잘 생각해봐. 사람을 잡아간다? 1번 여자여서 2번 장기교체 3번 먹으려고. 2번은 뭐 변변한 기구가 없으니 제외시키고, 그러면 1번이나 3번이지.”
겨우 매듭을 푼 태린은 손을 탁탁 털며 얘기했다. 손이 풀린 태신은 태린과 미르를 끌어안았다.
“엄마가 미안해…. 언니가 미안해.. 많이 아팠지. ”
‘엄마?’ 물어보고 싶은게 많은 태린이었지만 굳이 가족상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입을 닫고 있었다.
“야 일단 여기부터 나가자. 아까 화려하게 터트려서 좀 있으면 좀비들 많이 몰려올거야. 아까 보니까 근처에 약국 있으니까 거기로 가서 오늘밤 나자”
태신과 태연은 끄덕이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계단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자 10마리 정도의 좀비가 포식하고 있었다. 태린은 고기에 집중하고 있는 그들 몇몇에게 천천히 소리없이 다가가 목을 도끼로 내리쳤고,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몇몇에게는 안면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태연도 태린을 도와 2마리 좀비에게 단검을 박아넣었다.
하지만 태연과 태신의 사고는 온통 할아버지의 시체에 쏠려있었다.
‘지긋지긋했던 새끼’
‘역겨운 인간’
‘그래 드디어 갔구나. 해방이구나’
‘다음생애라도 만나지 않기를’
‘그렇게 폭탄주 좋아하더만 잘 터졌네’
‘좆같은 새끼’
태연과 태신은 미르가 나쁜말 듣는게 싫었기에 속으로만 온갖욕을 하며 지금까지 당했던 수모를 속으로 삭혔다.
약국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약품이 털려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의료용 실과 항생제, 붕대를 찾을 수 있었고, 냉장고에는 소주 또한 있었다. 소주를 집은 태린은 바로 뚜껑을 따서 태연에게 갖다주었다.
“??뭔데?”
“마셔. 너 그거 맨살에 꼬매야돼”
“아냐, 이거 붕대만 잘 감으면 금방 나아”
자신의 상처를 감추며 태연이 말했다. 하지만 태린의 태도는 일관되었다.
“어쨋거나 꼬맬거야. 마시기 싫으면 안 마셔도 돼. 알아서 해”
태린은 알코올로 바늘을 적시며 봉합 준비를 하였다.
“아니 니가 무슨 의사야? 괜찮대도!”
태연은 떨면서 말했다.
“의사 아니라도 이거 봉합해야하는 건 누구나 알걸. 너 이거 잘못하면 괴사한다?”
태연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소주를 2병을 원샷하였다. 술을 마셔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빨리 많이 마신 적은 처음이었는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죽겄다. 근도 ㅇ ㅐ 므 이 서 엉 ㄴ ㅕㄴ 자 한테 수울 줘도 돼? 나아 쁘은 ㅇ ㅓ ㄹ 은 ㅇ ㅣ 누 애”
태연은 웃으며 태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적당히 잘 취했네. 야 차태신 니 동생 잘 잡아라”
차태신은 태연을 뒤에서 껴안았고, 태연은 몸부림 쳤다. 태린은 바로 태연의 팔뚝살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던 태린은 바느질에도 재주가 있었고 꽤나 예쁘게 꼬매졌다. 어느순간 몸부림치던 태연이 조용해져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태연은 이미 자고 있었다. 태린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붕대로 드레싱을 하며 봉합을 마쳤다. 그리고 뺨을 살살 때려 태연을 다시 깨운 후 항생제를 먹였다.
“휴우 하루가 진짜 길다.”
셔터를 내리고 모든 출입문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태린은 쉴 수 있었다. 태신도 겨우 미르를 재운 후에야 벽에 기대어 쉬었다.
“근데 니가 미르 엄마야?”
태린은 궁금했던 말을 끝내 꺼내었다. 태신은 태린을 흘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린도 더이상 묻지 않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