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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씨, 어떤 걸로 하지?”
운 좋게 여러 공구가 가득한 다마스를 찾은 태린은 작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느 크기의 나사를 사용해야 단단하게 애좀들의 뼈에 고정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 끝에 꽤나 많은 수가 있는 중간 크기의 나사를 모으기 시작했다. 다 모은 후에는 잘 벼려둔 칼을 집어들고는 이하연의 왼쪽 어깨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어깨뼈가 노출되자 태린은 드릴과 나사를 이용해서 뼈에 나사선을 만든 후에 볼트와 너트를 이용하여 조임쇠를 달았다. 실제로 장착했을 때의 느낌을 알기위해 태린이 어제부터 소지하고 다니는 k2c1을 거치해보니 나름 나쁘지 않게 거치가 잘 되었다. 태린은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고, 이후 이하연의 오른쪽 어깨와 A팀장의 양쪽 어깨에도 거치대를 만들었다.
이태린은 어렸을 적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이런 것을 만들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을 만들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자신을 보며 약간 싸이코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미르는 한참을 울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태연은 피곤했는지 눈을 꿈뻑거렸지만 지금 자면 밤에 잘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눕지는 않았다. 뭘해야 피곤에서 깰 수 있을까하며 생각하던 와중에 김태린이 주고 간 호루라기가 눈에 띄었다.
“휘이~~”
큰소리가 나지 않게 작게 부니 안에서 구슬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공기 소리만 들렸다. 뭐가 재미있어졌는지 태연은 한참동안 호루라기 소리 내지 않기 놀이를 하였다.
“덜컥”
“다 했어?”
미니버스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있던 태연은 문 열리는 소리에 당연히 태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출입문을 보지도 않고 말하고는 놀이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하천과 가까운 아파트의 놀이터였다. 태연이 손을 움직이려하니 덜그럭 소리와 함께 손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쪽 손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돌려 양 손을 보니 각각 다른 철봉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깼니?”
흠칫하며 앞을 보자 김춘자가 미르를 무릎에 앉히고 놀아주고 있었다. 미르는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배실거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미르 해치지 마세요. 제발요.”
자신의 일신에는 관심없이 오로지 미르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있는 태연을 보고는 김춘자는 자신의 과거 처지와 겹쳐져 풉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름이 미르야? 예쁘네~”
고기 해체용 칼을 든 손으로 미르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태연은 온몸이 떨렸다. 그 떨림은 양손의 쇠사슬에 전해져 큰소리로 진동하였다. 눈치챈 김춘자는 칼을 내려놓고는 다시금 미르를 쓰다듬었다.
“정말 왜 이러시는 거에요”
태연은 비명 지르듯이 물었다.
“왜 이러냐? 왜? 이러냐? 하! 아가씨 누가 미르를 해치려하면 어떡할거야?”
춘자는 어이가 없는 듯이 태연의 말을 곱씹으며 물었다.
“…막을거에요.”
“죽이면?”
태연의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떠돌았지만 어차피 어떤 말이든 결과는 같을 것 같았다.
“…….죽일겁니다.”
한참을 침묵하던 태연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그걸 아는 사람이 우리 아들들은 왜 죽였어?”
눈웃음을 실실치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던 김춘자의 말투는 순식간에 표독스럽게 돌변하였다.
“네?”
“발뺌하지마. 여기 주변 지역에 있는 생존자는 너하고 미르 뿐이었어. 내 아들 왜 죽였어”
김춘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높아져서 마치 비명처럼 들렸다.
“저… 저 진짜 아니.”
‘…….마지막에 엄마를 불렀거든…..’ 순간 태린이 말이 태연의 머리를 스쳤다. ‘시발…’ . ‘좆 됐네’. 김춘자는 체념하는 듯한 태연의 표정을 읽었다. 직후 태연에게 뛰어가 멱살을 잡았다.
“니년 아니면 누구야? 너랑 같이 있던 누구야? 말해! 말하라고 이 쌍년아!!”
‘이태린이 지금 상황도 구해줄 수 있을까? 가능한가? 사람들 거의 20명은 되어 보이는데…. 아 총도 갖고 있네. 어쩌지. 내가 죽어도 미르는 무사할 수 있을까? 아니지 식인하는 인간들인데 보증 못하지. 이태린이 뭐라고 했더라? 배신만 안하면 안전하다 했나? 지금은 뭐 어떻게 해야하지?’
태연의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김춘자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칼을 다시 집어 태연의 팔뚝에 갖다대었다.
“말해!!”
김춘자는 말을 내뱉자마자 서서히 칼날을 팔뚝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태연은 고통에 비명만 질렀고,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고문은 오래동안 계속되었고, 태연의 팔뚝살이 10cm가량 잘려 덜렁거리게 되었다.
태린이 한창 작업을 끝마치려하고 있을때 다마스 앞쪽 트럭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애좀들은 다마스에 묶어둔 채로 오른손에는 권총을, 왼손에는 도끼를 쥐고 천천히 소리없이 트럭으로 다가갔다. 총구를 창문에 들이대며 돌아서는 순간, 태린 앞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차태신?”
“어…그… 하하.. 안녕…”
차태신은 조수석에 어정쩡하게 누운채로 어색하게 인사했다.
“하아~ 내가 눈에… 아니다. 마침 잘 됐네. 내려”
미르와 태연을 데리고 다니는 이상 어차피 나중에 차태신을 찾으려고 했다. 때문에 예전에 눈에 띄지 말라고 했던 말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태신은 차에서 내린 후에 어색하게 태린을 쳐다보았고, 태린은 무표정하게 태신을 쳐다보았다.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지고, 태린은 한숨을 푹 쉰 뒤에 애좀들을 데리고 미니버스로 향했다.
태신은 태린의 눈치를 보다가 쫄래쫄래 쫓아갔다.
“…. 어디서부터 쫓아왔어?”
긴 침묵을 지키던 태린이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그러다가 중간에 엇갈린 것 같아서 쉬고 있었어. 다시 지나쳐 가면 그때 다시 쫓아가려고”
‘나 목욕했을때 어긋났나? 하긴 자기 동생들 보이는데도 계속 몰래 쫓아오려 하진 않았겠지’
“그래 알았다.”
자연스럽게 걷던 태린은 잠깐 주춤하더니 다시 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태신은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그렸지만 괜히 심기 불편하게 하기가 싫어서 입을 다물고 따라 갔다.
“야 온다. 준비해”
식인무리의 사람들 5명이 미니버스 안에서 몸을 숙여 가리고 있었다. 각자의 손에는 k-1소총, 도끼, 칼 등이 들려 있었다.
태린은 미니버스를 나섰을 때 잠금 장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몇가지 표시장치를 만들어 두갖다. 접착면을 밖으로 향하게 해서 둥그렇게 만 녹색 테이프를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장소에 세모 모양으로 배열했었다. 맑은 날에 바람조차 없었기에 사람이나 좀비의 통행을 확인하기에는 간단하고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세모모양으로 놔두었던 지점 가운데 2군데의 모양이 흐트러져 있었다.
또한 미니버스 뒤의 차량 가운데 한대의 백미러를 꺾어서 거울이 미니버스를 향하게 해두었는데 그 거울을 통해 버스안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태연이 나왔으면 이미 나를 봤을텐데..’
‘일은 항상 생기는구나’
“차태신 조용히 들어, 그대로 걷고”
태린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차태신은 대답 대신에 큰 숨을 들이켰다.
“이대로 저 미니버스 뒤로 가서 트렁크 여는척만 해. 진짜로 열지는 말고. 그리고 바로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
이번에 태신은 헛기침을 하며 답을 하였다.
태신은 태린의 말대로 미니버스 출입문을 지나쳐 트렁크 쪽으로 가서 소리를 내었다. 태린은 몸을 숙인채로 소리없이 미니버스 출입문 쪽으로 가서 도끼를 꺼냈다.
“야! 야! 뒤쪽! 준비해”
미니버스안의 5명은 뒤쪽을 바라보며 태린과 태신을 공격할 준비를 하였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출입문이 열렸다. 열리는 소리에 몇몇은 놀라 고개만 돌려 출입문을 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재갈이 풀린 애좀들은 마구잡이로 식인 무리 5명을 물어뜯었다. 솟구치는 피들 사이로 태린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맨 뒤쪽 사람의 멱살을 잡고 미니버스에서 끌어내렸다. 미니버스 안에 있는 자신의 짐이 더이상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태린은 재빨리 애좀들의 목줄을 끌어당겨 통제권을 찾았다.
“허어어 어어 살… 살려…”
목에 구멍이 난 채로 살아있던 한명은 태린에게 목숨을 구걸했지만 태린은 그저 그녀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솟구치는 피 구멍을 태린의 검지 손가락으로 막으니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쇼크로 죽게 되었다.
어느새 미니버스로 돌아온 차태신은 피투성이가 되어 산발로 차에서 내리는 태린을 보며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태린의 피가 아니란 것을 알고 안심하였다.
“자 이제 우리 얘기해보죠”
태린은 스트레칭을 하며 5명 중의 유일한 생존자에게 말했다.
“태연이하고 미르, 아니 여자애하고 애기데려갔죠? 어디에요? ”
고무줄이 끊겨 풀어진 머리를 다시 묶으며 태린이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살육당한 가족들로 인한 충격이 컸는지 미니버스를 그저 빤히 바라만 보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태린은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다음번에는 손바닥이 아니에요. 제 말 들어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유일한 생존자는 태린을 마주하고는 눈물을 쏟아냈다.
“댁들 아지트 어딨어요?”
“저..저.. 저 저저저저.. 저기 밑에 수림 아파트 1단지요”
눈물이 온 얼굴을 뒤덮어 알아듣기 힘들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알아듣게 말하였다.
“수림 1단지?”
“네 네 네네네네”
태린은 확실한 대답을 듣자 도끼로 머리를 내리쳤다. 피는 태린과 태신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태린은 입가의 묻은 피를 핥짝이며 태신을 바라보았다. 그 많은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아직도 놀라울게 남아있는 표정이었다. ‘내 모습 충분히 봤을텐데’ 충격에 빠진 태신을 보며 태린은 헝겁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은 후에 태신의 얼굴도 닦아주었다. 이후 태린은 떠날 채비를 하였다. 태신에게 장전된 K-1 소총과 방탄복, 제리코를 주었다. 태신은 어리둥절했지만 태린은 간단히 조작법을 알려주기 위해 바닥에 시험삼아 총을 쏘았다. 자신과 태신의 채비를 마친 태린은 A팀장과 부팀장, 할아버지에게도 방탄복을 입힌 후에 K-1 소총을 각각 2개씩 어깨 위에 거치시켰고, 마지막으로 방탄조끼 앞에 방탄방패를 덧대었다. 할아버지와 C팀장 내부의 휘발유도 확인한 태린은 수림 1단지로 향하였다.
“정말 저년하고 얘만 있던 것 맞아? 다른 팀은 뭐 찾은 것 없어?”
아무래도 태연이 건장한 사내 두명을 죽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확신했는지 김춘자는 옆에 있던 사촌 남동생을 닦달하였다.
“아까 누나하고 애들은 좀 더 잠복해보고 온다고 했으니까, 좀 있으면 올거야”
“시발, 도대체 어떤 샹놈이 우리 아들들을….”
김춘자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욕지거리를 하였다.
이어서 다른 이들이 더 넓은 반경에 있던 생존자들을 찾아왔다. 생존자들은 총 6명이었다.
“저년 깨워”
춘자는 태연에게 삿대질을 하며 동생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생은 즉시 기절한 태연의 얼굴에 물을 뿌려 깨웠다. 태연은 천천히 눈을 뜨며 의식을 되찾았다.
“저 새끼들 한명씩 일로 데려와”
김춘자의 명령에 조카들은 한명씩 데려와 무릎을 꿇렸고, 김춘자는 잠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상당히 무겁고 큰 칼을 가져왔다.
“하아..시발 또 공놀이 하시겠구만”
김춘자 옆에 남동생이 혼잣말로 작게 읊조렸다. 김춘자의 남동생은 철물점을 하였고, 취미로 대장장이도 하였다. 저 무겁고 큰 칼은 가게 인테리어 후에 기념으로 누나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었다. 다만 너무 무거워서 아무도 쓰지 않았지만 김춘자는 아니었다. 언젠가 한번 김춘자의 핏줄이 아닌 이들이 뭉쳐서 김춘자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을때, 김춘자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 칼을 들어 자신에게 반항한 이들의 목을 모두 베어버린다. 이후로도 김춘자는 가끔 화가 날 때 사냥한 먹잇감에게 그 칼을 휘둘러 머리를 떨구어 버렸고, 떨구어진 머리는 모두 사촌이나 동생이 주서야 했다. 이때 데굴데굴 굴러가는 머리를 잡는게 마치 공놀이를 하는 것 같아서 김춘자의 무리 내에서 공놀이라는 은어로 통하고 있었다.
“똑똑히 잘 봐! 내 아들들 죽인 새끼 찾아내”
김춘자는 사냥감의 목에 칼을 댄 채로 차태연에게 말했다. 차태연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지었다.
“쾅!”
“데구르르”
큰 소리와 함께 칼이 놀이터 바닥에 부딪혔고, 머리는 사냥감의 목에서 떨어져 나가 차태연 앞으로 굴러갔다. 몸에서 분리된 머리의 눈에는 공허만이 가득했고, 그 공허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차태연은 다시금 기절할 것 같았다.
“아니야?”
김춘자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동생들이 또다른 사냥감을 데리고 왔다.
“맞아? 아니야?”
이번에 차태연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춘자는 차태연의 눈을 유심히 봤고, 다시한번 칼과 콘크리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니잖아… 제대로 말해”
이제 차태연은 자신이 뭘해야 할지 몰랐다. 팔뚝의 고통은 잊은지 오래였다. 그저 공포만이 자리잡은 머릿속에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후 모든 사냥감들의 머리는 땅에 떨어졌다.
“야 치워. 피 냄새 맡고 좀비 오기 전에”
춘자의 남동생은 얘기를 듣자마자 머리들을 바로 자루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드럼통으로 가지고 가서 휘발유를 붇고 태우기 시작했다.
춘자는 의자를 끌고와서 차태연 앞에 앉았다.
아무리 어린 미르일지라도 무언가 상황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런 미르를 춘자의 남동생이 안으며 달래려하였다. 태연은 미르가 울자 걱정이 되었는지 눈앞의 춘자보다 미르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춘자는 칼 등을 태연의 뺨에 대고 춘자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게 하였다.
“그래 이제 상관없어. 조금씩 넓혀서 모두 사냥하다보면 그 새끼를 죽일 수 있겠지”
김춘자는 칼을 양손으로 잡고 하늘위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