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교
문교는 화회 유씨로 이웃 오미리 운조루와 한 문중이
다. 문수골에서 오미리를 거쳐 흘러오는 물길이 그의 집
앞에서 맑게 고여 둠벙을 이뤘는데 그 안쪽 깊숙이 수염
덥수룩한 그의 할아버지 방이 있었다. 들큼한 냄새 나는
말코지엔 늘 소의 발 같은 짚신들이 두둑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어린 우리의 놀이터. 우르르 몰려가면 “얘들아,
우리 문교하고 사이좋게 놀아라!” 하고 빈 망태를 들고
나가셨는데 그는 외아들을 지리산에서 잃은 뒤 며느리를
동네 부자인 금산 양반의 후살이 보낸 슬픈 노인.
문교 어머니는 그 집으로 들어가 성이 다른 문교를 동
생들을 쑥쑥 낳아 그렇잖아도 붉은 금산 양반의 얼굴을
더욱 훤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문교가 이복
동생들을 친동생처럼 귀애하고 동생들도 문교를 “형님,
형님” 하며 극진히 따른다는 것. 명절이면 문교는 아예
사랑채에 머물며 금산 양반의 큰아들 노릇까지 했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문교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이 없이 구례에 눌러사는데, 요즘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
니며 읍내에서 식당을 한다고 한다. 시인 박성우가 내 고
향 집을 못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때 “어, 시영이는
내 친구인데!” 하며 오토바이에 그를 태워 옛 우리 집 우
물가에 내려주었다는데 나는 한 번도 그를 찾은 적 없다.
나비가 돌아왔다
이시영, 문학과지성 시인선 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