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영도"의 단편소설 '키메라'를 거의 그대로 패러디했음을 말해둡니다(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15773&novel_post_id=61896).
전편: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36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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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인류 멸망의 위험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철충도, 심해의 별의 아이도 아닌 오르카의 작은 연구실에서 등장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던가, 젠장. 세상에 인류는 나 하나뿐이고, 여긴 그 인류가 외계 괴물과 악한 바이오로이드들에 맞서 최후로 저항하는 깊은 바닷속 잠수함이다. 그리고 그건 만약 내가 저놈에게 죽거나 저 놈의 난동으로 잠수함이 침몰하면 인류에겐 더 이상 뒤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오...오빠 경호팀 불러! 리리스 언니! 배틀메이드!"
불행히도 그럴 수가 없었다. 닥터의 연말 청소를 돕느라, 경호원을 호출할 수 있는 내 패널은 저만치에 떨어져 있었고 그건 우리와 저 '바이오로이드' 사이에 있었다. 이 연구실은 평소에 닥터의 실험이 일으키는 소음이나 폭음 때문에 철저히 방음처리 되어 있고. 그 말인즉슨, 지금 내가 연구실 외부의 다른 오르카 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연락할 방도는 존재하지 않다는 얘기다. 솔직히 연말 청소에 이런 대재앙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니 나도 별다른 대비가 없었고...결국 우리는 녀석과 협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 진정해, 섹1스? 해줄게. 그러니 잠깐 물러나라고"
닥터의 그 말에 '바이오로이드'는 뜻밖에도 뒤로 순순히 물러났다. 아마도 뒤로 물러나는 동작이 그 '완벽한 섹1스'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닥터에게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닥터야, 지금 니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데, 나 쟤랑 못한다니까."
하면 틀림없이 죽는다. 어떻게 예리한 칼날이 위이잉 하고 돌아가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딱딱 부딪히는 그라인더에 내 거시기를 집어넣는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내 소중한 곳이 쪼그라든다. 반드시 쇼크사할 거다. 아니면 과다출혈로. 닥터는 창백한 얼굴로 대책을 말해보았지만 전부 미덥지 못했다.
"이..일단 시간을 끌자."
"어떻게?"
"뭐든 핑계를 대면서..."
"미봉책밖에 안 될걸. 그러다 쟤가 화내면?"
"그럼 어떡해?"
"저 녀석을 제압해야지“
"아 그래? 오빠는 저거 이길 수 있어? 레아 언니 번개랑 이그니스 언니 불이랑 글라시아스 얼음을 동시에 쓰는데다 덩치는 라비아타 언니보다 더 큰 괴물한테?“
"........"
"끄응....파괴하는 건 좀 천천히 고려해 보자. 지금 성욕을 좀 과격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 빼고는 별다른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니.."
나는 불탄 연구실의 한켠을 돌아보았다. 별다른 해가 없어? 두 번 화냈다간 오르카가 박살나게 생겼는데?
".....게다가 저 언니를 상대하는 것이 결코 쉬울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싸우다가 오르카 부서지고 바닷물 들어오면 우리 다 죽어."
"그럼 어떡해?"
"내게 생각이 있어. 이봐! 언니!"
'바이오로이드'가 즉각 대답했다.
"왜 부르는가, 닥터?"
"완벽한 섹1스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거니까 물을게. 언니 페티쉬가 뭐야?"
"뭐?"
처음으로 '바이오로이드'의 입에서 인간적인 의문문이 터져나왔다.
"페티쉬, 취향 말이야, 성적 취향."
그러자 '바이오로이드'는 오랫동안 침묵한 채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녀석은 놀랍게도 약간 난처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들이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제조자들이 내 취향을 모른단 말인가?"
어쩐지 투입 순서를 다 기억하냐고 묻는 아까 전 닥터의 말투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쟤도 자기 성적 취향을 모른다는 거다. 멸망 전 수많은 인간들과(그리고 때로는 바이오로이드도) 같이. 닥터는 신나서 웃음이 나오려는 표정을 간신히 감추며 말했다.
"아, 물론 우리들이 언니를 만들긴 했지만 바이오로이드의 성격에는 개체차와 고유성이 있거든. 그리고 그런 건 딱히 미리 조율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말야. 그러니 언니가 좀 알려줘야겠는데."
이런 웃기는 대화는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 제조시설에서나 들어볼 수 있을 것이리라. 아니, 이게 무슨 남성 오타쿠 취향 가득 처넣은 삼류 모바일 게임도 아니고. 난처해하던 '바이오로이드'는 마침내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레아의 팬티가 나풀거리고 세띠의 죽었던 식물이 살아나 팔랑거리고 구멍난 요안나의 갑옷이 웅장한 공명음을 내며 울리기를 수분, 마침내 그것은 포기했다.
"나는 내 페티쉬를 모른다"
"뭐라고! 맙소사, 이런 낭패가 있나! 그럼 완벽한 섹1스가 불가능하잖아!"
닥터는 짐짓 경악에 차서 외쳤고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바이오로이드'는 좌절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내 페티쉬를 모른다. 그러면 섹1스가 불가능한 것인가?"
"으음. 일단은 그래. 하지만 좌절하지 마! 좌절해서 괜히 화내지도 말고! 이건 그냥 시간의 문제야. 고찰하고 고민해 볼 수 있을거야"
그 말에 그 '바이오로이드'가 버럭 소리쳤다.
"고찰하고 고민하라!"
난데없는 주문에 닥터는 살짝 당황했다. 여기서 놈을 실망시키면 또 뭔 난동을 부릴지 몰랐다.
"응? 아 뭐...그래..오빠?"
“이런 상황에서 날 불러서 어쩌게. 나도 모르겠는데.”
"으으음. 이 언니가 원하는 건 쾌락이잖아. 그건 여러 남자를 경험해봐야 할 수 있는 거지. 자유분방한 불륜녀 취향이 아닐까? 멸망 전 자료들에서 몇 번 봤어!“
...나는 닥터가 평소에 연구실에서 뭘 보고 지내는 건지 심히 궁금해졌다. 솔직히 라비아타가 아니라 기간테스랑 크기를 비교해야 온당할 저런 괴물과 불륜이 가능할 만한 ‘바람 상대’가 세상에 몇이나 될지도 모르겠고.
”글쎄다, 닥터야. 얘가 원하는 게 정신적인 쾌락일 수도 있지. 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돌보며 얻는 충족감이라든지. 마망 취향인 건 아닐까?”
이제 닥터가 나를 보는 시선 역시 내가 위에서 닥터에 대해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졌다. 아니, 사심 좀 들어가면 어때서!
“마망이면 자기가 마망인 쪽? 어린애를 역강1간하다시피 하는?”
“역강1간이라니, 닥터야. 말 골라서 하렴. 여긴 지금 태어난지 10분도 안 된 순진한 아기가 있어”
그 '순진한 아기'는 라비아타보다 덩치가 크고 타이런트 것만큼 큰 화염을 토하고 레아와 비견될 만한 천둥을 내리꽂지만 말이다.
“지능이 높고 사회적인 생물은 자신보다 약하고 귀여운 생물을 지키고 돌보고 싶은 보호본능이 있잖아. 만약 이 ‘바이오로이드’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쾌락을 얻고 싶은 거라면 사회적인 존재일 거고, 이렇게 강한 바이오로이드라면 그런 사회적 상호작용의 상태한테 보호욕도 있을 거라구”
“오빠 되게 나처럼 말하네”
“오늘 종일 너한테 시달리다 보니 물들었나보지”
누가 저 별의 아이조차 미형으로 보이게 할 만한 몰골의 괴생명체랑 마망플레이를 하고 싶을진 모르지만. 맹세컨대 일단 난 아니다. 난 내 거시기의 안전도 보장하고 싶고.
"음, 쾌락적이고 기분 좋은 성관계에는 흔히 대물이 필수라고들 하잖아? 일단 심리적인 관계성을 차치하고, 생물학적인 욕구만 생각해보면 어린아이 몸은 당연히 취향이 아닐 거고 근육질의 육체적으로 강건한 남자의 초대형 성기를 원하지 않을까?"
"그건 너무 좁은 시각이야, 닥터. 바이오로이드는 여성이고 그 중에는 모성본능이 강한 애들도 있잖아. 쇼타 몸을 해 본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그 경우는 오히려 인형같이 귀엽고 모성애 느껴지는 어린아이 몸에서 쾌락을 느끼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도 안 되어 그 예감은 사실로 드러났다. 지구의 모든 철충이 다 달려들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둘 있다면 하나는 뼛속부터 학구열에 찬 학자인 닥터의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일중독자에다 엉뚱한 것에 과몰입하곤 하는 오르카 총사령관의 성격이다. 그렇다. 잔뜩 이 주제에 빠져들어버린 우리 둘은 어느 새 원래의 목적을 깨끗이 망각한 채 진짜로 이 '바이오로이드'의 성적 취향을 찾아주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물론 그게 몇 명 모이면 기술적 특이점도 일으킬 수 있다는 초 천재 바이오로이드와, 수십 개의 작전임무를 동시에 계획하고 지휘할 수 있는 탈인간급 먼치킨 강화인간이 벌일 법한 토론은 아니었다.
"짐승 같이 강한 나쁜 남자야! 강한 여자는 더 강한 남자를 원하는 게 망가 클리셰잖아!"
"마망 플레이라니깐! 저렇게 크고 강한데 응애마망보호욕이 없을 리가 없잖아!“
”내가 넣은 재료에 타이런트 인공섬유가 있다고! 타이런트 같이 강한 힘을 동경하지 않을 리 없어!“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레스티아 그거도 들어갔잖아!“
....다른 이들이 우리의 열띈 토론을 알게 될까봐 두렵다. 그냥 각자의 취향 논쟁으로 번져버린 이 처참한 토론에 푹 빠진 우리들을 바라보던, 멍한 표정의 – 아니 얘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야 하나 - '바이오로이드'는 몇 번이나 조심스럽게 끼어들려고 했지만 지금 바쁘니까 입 닥치고 가만히 꺼져 있으라는, 잔뜩 흥분한 우리들의 살벌하기까지 한 요구에 그만 포기하고는 의기소침해진 채 물러나 있었다. 어쨌든 우리가 그런 소동을 일으키고 있어기에 방문자는 높은 목소리로 두 번이나 외쳐야 했다.
"왓슨! 제발 내 말 좀 들어 줘!"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우리는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아까 꺼져 있으랬잖아!"라고 외치려다 입을 다물었다. 예의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제삼의 인물이었으므로.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연구실로 들어선 자는 이미 활달한 걸음걸이로 우리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물론 그 사람, 아니 바이오로이드와 우리들 사이에서는 저 최신식, 미증유, 지 페티쉬도 모르는 걸어다니는, 아니 날아다닐 줄도 아는 자연재해가 온갖 흉측한 부속 기관을 흔들거리며 앉아 있었다. 우리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악! 리앤!"
"자비로운 리앤이야. 으아악의 리앤이 아니라."
그녀는 태평하게 대꾸하곤 계속 걸어 내게 다가왔다. '바이로오이드' 곁을 지나다가,
"안녕. 처음 보는 친구네? 좋은 날씨지?"
하고 잠깐 인사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르카는 수중에 있고 날씨를 알 리 없다는 걸 지적하려다가 관두었다.
"여기 있었구나, 왓슨. 뭐 좀 부탁하려고"
"리앤, 여기는 위험, 어, 그러니까, 빨리 가서 증원을 불러야, 어"
당황한 나는 과연 리앤이 나가서 증원을 불러와도 그 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을지, 증원이 온대도 과연 저 라비아타만큼 크고 전격 화염 독성 빙결 속성을 다 가진 중장기동형(이게 말이나 되는 조합인가?) 공격기를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몰라 어버버거렸다. 고개를 갸웃하던 리앤은 한숨을 폭 쉬고 용건이나 말했다.
"하르페이아한테서 빌린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걔 말론 왓슨이 갖고 있다고 들었어. 빌려줄래?"
"읽을려고?"
"아니, 내용이 딱 좋을 것 같아서."
“...누굴 재울려고?”
“드라코. 자꾸 힘이 남아돌아 심심하다고, 오르카에서 날뛰다가 매번 시티가드에게 잡혀오지 뭐야. 재워줘야겠어.”
몽구스 팀과 시티가드의 관계가 찌그락 째그락한 건 유명하다. 그 바보 때문에 시티가드의 일이 불어나면 사디어스는 짜증을 부릴 것이다. 리앤은 그런 일이 터지기 전에 드라코를 잠재울려는 거고. 방법 서설 정도면 확실히 그 바보를 재울 수 있을 거다. 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책은 누굴 재울려고 읽는 게 아니야. 어, 가끔은 침대에서 엄마가 아이들 재울 때 읽어주기도 하지만, 일단 책의 본령은...”
“그럼 피에르 아도의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도 좋아. 그 책은 나도 재밌으니까.”
나는 웃으며 두 손을 들어보였다.
“아이구, 리앤 같이 똑똑한 애는 당할 수가 없네. 그러니까 드라코를 다루는 척하면서 읽고 싶은 책 읽으면서 농땡이 피우겠다 이거구만. 아주 영리한걸.”
리앤은 싱긋 웃었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화산폭발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자는 영리한가?"
나는 겨우 유쾌해지던 기분이 싹 사라지는 것, 그리고 피가 식는 듯한 기분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닥터는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아무래도 자신의 전투용 탈것, 타이탄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타이탄은 이번 연말 대청소 떄문에 치워두느라 오르카 격납고에 가 있었고 여긴 아무런 전투용 무기가 없었다. 당연하잖은가! 누가 여기서 장엄하고 위대한 전투를 기대했겠느냔 말이다. 그런 게 있었으면 닥터가 진작 저 ‘바이오로이드’ 제작...아니, 연말 청소에 투입했을 거고. 리앤은 그 ‘바이오로이드’에게 응답했다.
"나? 음, 글쎄, '똑똑하다'는 것도 정의가 뭐냐, 분야가 뭐냐에 따라 좀 다르고, 뭣보다 상대적인 개념이지. 오르카 안에서도 하르페이아, 레모네이드 같이 똑똑한 바이오로이드가 없는 건 아니지만....뭐어...일단은 나도 웬만큼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 그런데 그쪽은 누구?"
"나는 완벽한 바이오로이드다!“
”나 저 말 지겨워지기 시작했어.“
닥터는 으르렁거리며 신음을 토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리앤은 고개를 가웃할 뿐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무기물 모듈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보통 유기 생물체인데. 넌 좀 특이하구나. 하여튼 내가 영리한지 알고 싶어하는 이유가 뭐니?"
"그대가 영리하다면 답하라. 나의 페티쉬는 무엇인가?"
"당연히 근육빵빵 대물 가진 젊고 짐승 같은 강하고 나쁜 남자지!"
"틀림없이 쇼타보호욕에 충만한 마망이야! 그 아이와 오랫동안 함께할 거라는 확신이 함께하는!“
리앤과 ‘바이오로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 둘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우리들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이자 리앤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좀 제대로 정신 박힌 사람들과 상담해야지. 근데 왜 그걸 알아야 해?“
‘제대로 정신 박히지 못한’ 우릴 뒤로 하고 ‘바이오로이드’는 예의 그 장엄한 태도로 설명했다.
"위대한 기술의 힘이 이토록 완벽한 존재를 지상에 출현하게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불충분하니, 왜냐하면 완벽한 존재가 누려 마땅한 완벽한 행복이 아직 충족되지 못했음이라. 따라서 완벽한 바이오로이드는 완벽한 성교를 통해 지고의 행복으로 나아가야 하나니, 그를 위해 나 완벽한 바이오로이드는 성교를 위한 자신의 페티쉬를 알아야 할지니라.”
장엄할 정도로 장황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었지만 결국 섹1스에 필요한 자기 성벽(性癖)을 알아야 한다는 남사스러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리앤은 너무 쉬운 문제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너 순애 사랑꾼이구나."
그녀는 너무 당연해서 강조할 필요도 못 느끼겠다는 듯이 짧게 말했고 그래서 나, 닥터, 그리고 그 ‘바이오로이드’까지 그냥 다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버릴 뻔했다. 한참 뒤에야 겨우 닥터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먼저 정신을 차렸다.
"자, 잠깐, 언니.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데?"
리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기가 상대방과 하는 성교는 틀림없이 완벽할 거고, 그래야 마땅하고, 그래서 무조건 행복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
닥터는 무슨 말인지 아직 이해 못하는 듯했다.
”아니, 섹1스는, 어, 난 아직 해 본 적 없긴 하지만, 분명 쾌락적이잖아? 그리고 쾌락은 행복이고. 자기 성벽을 알아내서 완벽한 쾌락이 충족되면....행복한 거 아냐?“
지가 하는 말이 야한 건 알아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도 팔을 휘휘 저으며 어떻게든 항변하려는 걸 보니 어지간히 학자로서의 학구열이 동했나 보다. 그러나 리앤은 한 문장으로 그녀의 항변을 일축했다.
“물론 쾌락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긴 하지. 하지만 쾌락이 꼭 행복과 동일 개념인 건 아니잖아?”
“아니긴 하지”
“만약 쾌락이 행복의 전부라면 우리가 예술이다 연애다...혹은 철충을 쫒아낸다 등으로 애쓸 필요가 있어? 그냥 어디 안전한 벙커에 틀어박혀서 뇌에 전극 꽂고 쾌락중추 극한으로 자극하면서 시간 보내면 되는 거 아냐?”
“어?”
“섹1스에서 오는 쾌락이 행복 그 자체가 되려면 감각적 쾌락만으로는 부족하겠지. 완벽한 섹1스가 반드시 사랑과 결부된다고 믿는다면 그게 가능할 테고. 그래서 순애 사랑꾼이라 한 거고.”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리앤은 이 ‘간단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잃었는지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책 빌려 줄 거야?”
“응? 어, 그거 사령관실에 있는데. 갖다줄까?”
“아냐. 바빠 보이는걸. 내가 가서 가져오지 뭐.”
그러고서 리앤은 몸을 돌려 닥터의 연구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 때였다. ‘바이오로이드’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리앤이여, 잠깐만!”
“음?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았니?”
“그렇다.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호오”
이 질문은 리앤도 꽤 의외였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내가 순애 사랑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의 성교는 순애와 사랑이 가득한 것이어야 할 터. 그러나 그러자면 이제 사랑이란 게 무엇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논리적이네, 맞아”
“허나 이 문제 이전부터 나는 나의 제조자들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으니....”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에 처절하게 지성을 격하당하고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대꾸할 말이 없어 우울해졌다.
“그러니, 영리한 그대에게 묻노라.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흐음. 그건 가치 있는 질문이야”
그러나 리앤은 거기까지 말하고 대답 대신 내 쪽을 흘긋 바라보고 씩 웃었다.
“그건 우리가 다같이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인간과 바이오로이드, ‘사람’으로 묶이는 존재라면 모두가 말이야”
‘바이오로이드’와 닥터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던 나는 최대한 애매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고 당연하게도 그 표정은 그 둘 모두에게 별 신뢰감을 주지 못했 다. 그들은 다시 입구 쪽을 돌아보았지만 리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왠지 버림받은 기분인데”
“그러게”
나는 그녀에게 뭔가 더 말할 것이 있었다는 기분을 느꼈지만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조금 뒤에 ‘완벽한 바이오로이드’가 우르릉거리는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나는 그게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제기랄! 리앤한테 나가서 지원 병력 좀 불러오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다행히도 나의 페티쉬가 판명되었다. 그러니 나와 함께 사랑이 가득한 순애 섹1스를 하자!"
오, 안 돼. 내 남성의 종말이여. 허나 내게는 다행히도 닥터는 조금 전 무시당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 언니를 제조했지만 언니에게 별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우리들은 사랑이 뭔지 도통 모르겠는데!"
“리앤의 말대로라면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는 사랑이 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언니도 ‘바이오로이드’ 라매! 언니 말대로라면 언니야말로 사랑꾼이고! 우리 중에 제일 잘 알아야 하는 것 아냐?”
그 말에 ‘바이오로이드’는 침묵했다. 또 한 번의 웅장한 소리와 떨림의 시간이 흐른 후, 녀석은 처량하게 되물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게 뭐냐?“
닥터는 천천히 의자를 당겨 앉았고 나는 빈 물통을 뒤집어 그 위에 걸터앉았다. 우리들의 동작을 바라보던 ‘바이오로이드’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함께 고민해 보자고?"
나와 닥터는 동시에 히죽 웃었다.
“‘다같이’ 풀어야 할 문제니까?”
그러자 녀석도 끙끙거리며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기술적 특이점도 불러오는 초천재 바이오로이드와 우주에 유일하게 남은 오르카 총사령관인 인간과 우발적으로 태어났지만 그 자체로 걸어다니는 자연재해에 필적하는 정체불명의 생물체 – 그러고보니 정작 우리는 얘 정체도 모른다 – 가 더불어 고민하기엔 격이 떨어지는 문제 같아 보이긴 했다. 아무튼 이게 철충을 몰아내고 인류를 재건하는 문제보다는 덜 심각해 보였으니까. 차라리 모쏠 남/녀의 술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문제 같았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계속: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36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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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혼노지에 있다는 대사는 아마 다들 아실 일본 고사 같고...
시티가드와 몽구스 팀 사이에 찌그락 째그락 알력이 있다는 건 공식 설정입니다. 드라코가 바보인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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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소설이 원래 그렇죠 ㅋㅋㅋㅋㅋ 근데 저는 그냥 웃으라고 쓴 개그 패러디물이니까 깊이 생각하실 거 없어요 | 22.12.21 13:40 | |
(IP보기클릭)21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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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ㅅ와 사랑은 다른 것이지만 또한 밀접하기도 하니까여 | 22.12.25 17: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