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한(前漢) 원제 때 궁녀였던 왕장(王嬙)은
흉노의 선우 호한야(呼韓邪)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북방의 흉노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황실에서는 일종의 화친정책으로 궁녀를 시집 보냈던 것입니다.
그녀의 처지를 기구하게 보았던 것인지,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소군원>이란 시를 지었습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땅에는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네
시 내용은 그녀의 한탄이 주된 것이지만
봄에는 역시 꽃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인용됩니다.
그리하여 한 구절 읊어본 것입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벚꽃이 한창일때는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뒤늦게나마 꽃구경을 나갔습니다.
산책로에 아름답게 핀 벚꽃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수놓았습니다.
산뜻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자
마치 개선가를 부르며 환향하는 영웅을 맞이하듯이
꽃비가 흩날려 바닥에 흰색을 수놓습니다
게으름을 부릴법도 하고, 거짓말 한 번을 할수도 있을텐데
하늘은 여전히 높고 푸르며, 꽃은 항상 약속을 어기지 않습니다
사람만 봄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도 얼굴도 낯선 길 위의 인연도
저와 같이 봄을 온 몸에 스미고 있습니다.
벚꽃만이 봄을 알리는 전령은 아닙니다.
길가에 피어난 꽃도, 화단 위의 꽃도 모두 한몸으로 소리칩니다
봄이요, 봄이요.
오늘의 봄은 참으로 따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