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21일자 조선일보 4면
시장경제 커피 백과
한 해 다방서 45억 원어치 마셔
암시장 통한 외국산 활개…한 때 「망국론」까지 대두
커피는 한동안 ‘외화를 낭비하는 소비의 기호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줄곧 많은 사람들이 커피의 독특한 자극적인 맛과 내음에 도취되고 있다.
그 강렬한 미각은 차차 우리나라 가정에까지 파고들어 커피 끓이는 솜씨가 주부학(主婦學)의 주요 항목이 될 만큼 생활화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커피 마시는 습성이 대중 속에 번지고 있는 것은 커피야말로 특별한 ‘다도’(茶道) 없이 자연스럽게 마실 수 있는 기호 음료이기 때문인 듯.
가정까지 연 3,000t 소비
얼마나 마실까?
커피 인구도 다방 수도 해마다 놀랄 만큼 늘어나고 있다. 커피는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10억 인구가 애용하고 있는 기호품인데 우리나라에서도 20여 년 전부터 커피 마시는 습성이 번지고 있다. 해방된 무렵엔 불과 30여 개에 지나지 않았던 다방이 그동안 엄청나게 늘어나 69년 말 현재 4,613개에 달했다.
국세청의 과세자료를 보면 다방의 연간 판매액은 무려 62억 5,500만 원으로 60% 선을 웃도는 45억 원이 커피 판매액이고 20%가 홍차, 주스 및 기타 차류(茶類)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숫자는 세금 자료에서 뽑은 만큼 실제의 커피 소비량은 더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루 평균 다방 한 곳에서 소비되는 커피를 3파운드로 치면 다방에서만 소비되는 커피양은 줄잡아 연간 2,500t, 가정 소비량을 합치면 3,000t이 넘어서리라는 추산이다.
이를 순 커피 가격으로 따지면 연간 35억 2,500만 원이나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이 엄청난 커피 소비량이 거의 PX 유출을 비롯한 부정 루트를 통해 불법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호텔 등 몇몇 관광체(觀光體)에서만 커피를 정식으로 수입해다 쓰고 있을 뿐 우리나라의 커피 수입량은 극히 미미한 실정인데도 연간 3,000t으로 추산되는 수요량이 그럭저럭 메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커피가 거의 미제(美製)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특히 도깨비시장 등 뒷골목의 양품(洋品) 시장에는 미제 분말 커피인 맥스웰, MJB, 힐스브로스, 홀가, S&W 등 불법 밀수 유출품이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고 군용품은 유니버설도 많이 흘러나와 있다.
이 유출품들은 중간 브로커를 통해 각 다방에 공급되고 있으며 양품 보따리장수의 손을 거쳐 가정에도 배달된다. 가격은 1병들이 1파운드당 700원에서 750원. 워낙 수요가 많아 날개 돋힌 듯 팔리는 품목이기 때문에 중간이윤이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정부에서 외화(外貨) 유출을 막기 위해 국산 커피의 제조를 장려했으나 외제에 비해 맛이 덜한 감로(甘露), 왕자(王者) 등 국산은 미제 커피가 휩쓰는 시장 틈바구니에 끼여 쪽도 못 쓰고 있다. 이런 실정 밑에서 ‘커피 망국론’이 줄기차게 대두되고 있지만 커피의 습관성 마력은 점점 더 실생활에 파고들고 있는 실정.
서양산보다 동양산이 고급
원산지 및 생산량
대영백과사전을 뒤져보면 63년 현재의 세계 커피 생산량은 398만t. 브라질은 전 세계 커피의 50%를 생산하고, 미국은 50%를 소비하고 있다(미국의 커피 수입량은 전체의 55%).
미국 이외엔 서구의 선진제국 —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대량 소비되고 있다. 작고한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이 많은 서구인들이 “인생을 티스푼으로 재며 허비한다”고 풍자할 만큼 서양에선 커피 마시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그러나 커피가 곧 ‘서양의 차’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육식을 많이 하는 서구인들이 그만큼 더 마시고 있지만 커피의 원산지는 반드시 서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양 지방보다도 동양에 더 유명한 커피 원산지가 깔려 있어 어떤 면에선 커피는 ‘동양의 차’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의 맛과 내음을 가진 커피 ‘아라비안 모카’는 동양의 아라비아에서 생산되고 있다. 서인도 섬에선 단맛을 내는 블루 마운틴이란 커피가, 인도네시아에선 쓴맛을 지닌 만델링과 자바 로부스타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동양 사람이 커피를 마시는 것은 서양의 습성을 어거지로 따라온 것이 아니라 동양 지역에서 나는 산물을 동양 사람이 즐겨 마시고 있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또 커피가 동양 사람이 즐겨 마시고 있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또 “커피가 동양인의 식물성 위장을 해친다고들 하지만 커피를 물 마시듯 하는 서양 사람에 비해 동양 사람은 불과 하루 몇 잔 정도에 그치고 있으므로 무난하지 않는가?”라는 커피 애호론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커피는 주로 서양에서 생산되고 서양에서 소비된다.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서 신맛이 짙은 커피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멕시코 등이 나오고 있고 기타 엘살바도르와 브라질 산토스라는 커피가 생산되어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으니까. 이밖에 탄자니아에서는 킬리만자로라는 양질의 커피가 나 서구인들의 구미를 돋워주고 있다.
이와 같은 각종 커피는 아라비아 커피, 리베리아 커피, 로부스타 커피의 3가지 품종(커피나무)에서 생산된다. 가장 널리 퍼진 아라비아커피나무는 원래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17세기 초에 자바, 중미, 남미 등지에 전파됐다. 커피는 커피나무에 열리는 짙은 붉은색의 씨를 부숴 가공한 것이다.
하루 10잔 넘으면 질병
커피는 몸에 해로운가?
커피의 주성분은 당분(43%), 지방질(12%), 카페인(1.4%) 등. 커피의 향긋하고 구수한 맛은 휘발성 물질인 카페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커피가 신체에 미치는 약리작용(藥理作用)을 보면 — 카페인은 중추신경과 근육을 자극하는 흥분 각성 작용과 더불어 심장의 활동을 촉진한다. 또 심장혈관과 심장을 둘러싼 관상동맥을 확장시켜 이뇨 작용을 돕고 위를 자극, 위산 분비를 활발하게 하여 피로를 풀어주고 상쾌한 기분을 내게 한다. 두통, 특히 편두통에도 좋다. 그러나 이러한 커피도 지나치게 마시면 몸에 해롭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하루에 1~3잔 정도가 적량(適量). 10잔 이상을 마시게 되면 여러 가지 질병을 불러일으킨다.
지나치게 마시는 경우 밤에 잠이 잘 안 오고 위에 지나친 부담을 주어 위산과다증, 위염, 십이지장궤양 등을 유발한다. 더욱 심한 경우 심장을 지나치게 자극해서 고혈압, 당뇨, 맥박(빈삭)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하루종일 직장에서 과다한 커피를 마시고 퇴근 후에 독한 술을 마시면 아주 해롭다. 또 한 번 끓였다가 식힌 뒤에 다시 끓인 커피는 췌장의 세포를 자극하고 파괴시켜 인슐린 분비에 장해를 가져와 당뇨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흔히 카페인 때문에 커피가 유해하다고 하나 홍차에 카페인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 홍차의 카페인 함유량 3% 정도. 카페인을 제거시킨 커피도 등장했다. 독일에서 만든 이 카페인 없는 커피는 미국에서 그 후 개량되었는데, 미국에서 소비하는 커피의 8분의 1 정도가 카페인이 없는 커피라는 것.
「다방재벌」까지 등장
다방 경기(景氣) 및 랭킹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5,990만 8,000명(연인원)이 다방에 들락거렸다. 전국에 깔려 있는 4,600여 개의 다방에서 인구 한 사람당 평균 208원어치의 차를 팔아줬다는 계산이다. 이와 같은 숫자는 속칭 ‘물장사’라고 불리는 다방의 경기(景氣)가 꽤 괜찮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흔히들 ‘물장사는 곱장사’라고 한다. 50원짜리 커피 한 잔의 원가는 10원 안팎. 인건비와 세금 따위를 합쳐도 한 잔의 판매 원가가 30원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방이 해마다 늘어나고 또 흥청댄다고 한다. 다방업은 사채를 써도 손님만 붐비면 채산이 맞는다는 업종.
그동안 다방 경기 붐을 타고 다방재벌이 생기기도 했다. 왕실 다방에서 출발한 이지재(李智載) 씨는 서울 복판에서 손꼽는 다방과 그릴 8개를 소유할만큼 일약 예비재벌로 성장,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전국의 다방 랭킹을 보면 서울의 ‘해남’이 1위. 다음이 ‘티파니’, ‘팔레스’, ‘올림퍼스’, ‘한일’, ‘동양’, ‘회정’, ‘극동’(부산), ‘성궁’, ‘라일구’의 순위다.
다방은 붐비고 있으나 커피를 제대로 끓이는 다방은 드물다. 대부분의 다방이 커피 애호가들의 구미를 충족시켜줄 만큼 차 끓이는 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정량을 지키지도, 제대로 끓일 줄도 모르고 있다.
산뜻하고 자극적인 맛보다는 덤덤하고 텁텁한 커피 맛에 식상하기 일쑤다.
분말 커피는 드립식으로
커피를 잘 끓이려면
커피를 제대로 끓이려면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철칙이 있다. ①반드시 끓고 있는 물을 사용할 것 ②커피 넣는 시간을 오래 끌지 말 것 ③커피의 분량과 물의 분량은 꼭 규정량대로 할 것 ④커피 끓이는 기구는 항상 깨끗이 할 것 ⑤한 번 끓인 커피는 다시 끓이지 말 것 ⑥한 번 끓인 커피 찌꺼기에 새 커피를 보태어 끓이지 말 것 ⑦끓인 뒤에 되도록 빨리 마실 것 등이다.
어떤 기구를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커피를 끓이든 이 7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 원칙들을 지키면서 끓이는 데 그 방법은 크게 나누어 3가지가 있다. 첫째, 보통 주전자에다 끓여서 만드는 보일드 커피(boiled coffee). 둘째, 걸러서 만드는 필터드 커피(filtered coffee). 셋째, 퍼컬레이터(percolator)나 사이펀(siphon)이라는 커피를 끓이기 위한 특수 주전자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다. 첫 번째 방법은 가장 굵은 분말을 보통 주전자에 넣어 끓일 때 이용하는 방법. 이때 섭씨 95도까지 끓이는 것이 좋다. 95도가 넘으면 커피에 함유되어 있는 탄닌산이 분해되어 변질돼 버린다. 두 번째 걸러서 만드는 방법은 드립(drip) 방식이라고 하는데, 특수한 종이로 만든 주머니형의 필터(여과지)에다 적정량의 커피를 넣고 그 필터를 찻잔에 갖다 넣은 다음 끓는 물을 서서히 부어 필터로 걸러진 커피를 찻잔으로 떨어지게 하여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다.
가는 분말의 커피를 끓이는 데 가장 이상적이고 손쉬운 방법으로서 커피 분말을 직접 끓이지 않고 뜨거운 물로 거르기만 하기 때문에 커피의 짙은 향기를 잃지 않고 그대로 찻잔 안에 보존하여 마실 수 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이러한 필터를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필터는 융(絨)으로 만든 주머니로 대용할 수 있다. 풀기를 말끔히 씻어 말린 융으로 삼각주머니를 만들고 그 주둥이에 철사를 끼워 잠자리채 모양으로 만들어 손잡이도 달리게 한다.
거를 때 커피 가루에서 거품이 많이 나면 더 좋다. 이것은 분말 속에 열탕(熱湯)이 스며들어 가용(可溶)성분이 충분히 녹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퍼컬레이터나 사이펀과 같은 특수 주전자를 이용, 커피를 끓이는 방법은 우리나라 다방에서 많이 애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