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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 캐릭터 메이킹 후기 + 사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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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일러스트


년에도 다양한 TRPG 룰북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공개되었습니다. 개중에는 국내에서 창작된 룰도 있었고, 해외에서 호평받은 룰이 국문판으로 정발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트래블러는 그 후자입니다. 작년 4월 텀블벅에 올라온 트래블러(몽구스 2판)는 해외에서도 메이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1977년에 오리지널이 발매된 이후, 여러 판본으로 긴 시간 검증된 근본 SF 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는 펀딩된 몽구스 2판만 읽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 다룰 내용도 해당 판본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2판도 다 읽지 않았...


아무튼 매년 새로운 룰이 쏟아지는 이 바닥에서 오랜 기간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건 그만큼 특별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죠. 저는 그게 이 룰의 독특한 캐릭터 메이킹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룰북이 초반 1~2 챕터를 할애할 정도로 캐릭터 메이킹은 RPG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 역시 첫 D&D 캐릭터를 만들었던 날의 설렘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그 중요성을 모르지 않지만,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지곤 하죠. 어차피 매번 비슷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시간을 들이기보단 그냥 빨리 모험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런 저에게 트래블러의 여행자 만들기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펀딩 보상으로 선공개된 PDF를 받자마자 빨리 세션을 열고 싶은 생각뿐이었죠.


하지만 연초부터 일이 바빠져서 당분간 마스터(트래블러에서는 심판이라고 합니다)를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럼 캐메만이라도 해보자!'라는 식으로 전개되어, 지난 일요일에 전부터 같이 했던 플레이어 네 분과 여행자 만들기만 진행했습니다. 처음이라 헤매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저희는 일반적인 세션 1회 정도의 시간(3~4시간)이 걸렸습니다. 룰북에서도 다 같이 모여 미니게임처럼 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으니, 아예 하루 정도 날을 잡는 편이 좋겠습니다. 서두가 길었군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단계별로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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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로도 익숙한 배경 시스템


1. 배경 정하기.

가장 먼저 정할 것은 근력, 민첩, 지능... 다들 아시죠? 그다음엔 캐릭터의 배경을 정해야 합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PC가 그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부잣집 도련님? 거리의 부랑아? 외계인 행상에게 입양된 인간 아이? 우주는 무한하고, 여러분의 상상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드는 배경 설정을 만들고 어울리는 기능을 골라보세요. 심판이 플레이어들에게 세계관 정보를 주는 것도 좋습니다. 온갖 범죄가 들끓는 무정부 상태의 행성이요? 아이는 기만에 능하고, 세상물정에 밝겠군요. 해적 꿈나무로 자라기에 딱입니다!


2. 경력 쌓기. 근데 이제 경력 망치기를 곁들인.

실제 인생이 그러하듯 트래블러의 여행자 만들기는 온갖 변수로 가득합니다. 캐릭터들은 자신의 경력을 쌓는 동안 여러 난관, 또는 뜻밖의 행운을 맞이합니다. 주사위를 굴리고 수십 개의 표에서 그 결과를 확인합니다. 실연의 아픔? 동료의 배신? 불운한 사고? 캐릭터의 경력은 인스타 업로드가 끝난 라테아트보다 쉽고 빠르게 망가집니다. 물론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고, 이른 진급을 할 수도 있죠. 주사위만 잘 굴린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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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쉬운 장소인 건 맞다만


3. 여러분은 지금 우주정거장 한구석의 어느 작은 선술집에 있습니다...

같은 도입부가 마음에 안 든다면, 관계성 규칙을 적용해 보세요. 한 캐릭터가 경력 주기를 수행하면서 겪는 사건에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 있습니다. 심판이 먼저 제안할 수도 있고, 플레이어들이 자발적으로 뛰어들 수도 있죠. 이렇게 관계가 생기면 추가 기능을 챙길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우리 왜 같이 다니는 거야?" 하는 질문에 "뭘 새삼스럽게."라고 답변할 수 있게 되죠.


4. 아이고 삭신이야.

요즘 어느 업계나 경력자 우대라지만, 트래블러에서는 최대한 많은 경력을 쌓는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닙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죠. 캐릭터가 34살이 되면 주사위를 굴려 세월의 풍파를 얼마나 격하게 맞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화가 납니다. 34살이면 아직 청춘인데 말이죠. 물론 여러분 캐릭터가 중년이어도 노화 판정 결과만 잘 나온다면 외계 CU에서 담배 살 때 신분증 검사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아 집에 놓고 왔는데~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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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넘치는 여행자 팀 완성


5.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 광고 문구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은 모두 노화 판정을 해주세요. 넝담ㅎㅎ;


이제 정말 떠날 때가 됐습니다. 지난 경력을 뒤로하고 여행자로서 새 인생을 시작할 때가요.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여러분은 미지를 탐험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냐고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팀원들과 상의해보세요. 여러분이 어떤 유형(장르)의 캠페인을 계획하느냐에 따라 적절한 기능 꾸러미를 받아 갑니다.


렇게 다소 울퉁불퉁하지만, 매력적인 질감을 가진 캐릭터들이 완성됐습니다. 저희 팀은 위에 언급한 모든 요소를 재밌게 즐겼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대학을 우등 졸업한 엘리트였다가 동네 뒷산의 자연인이 된 캐릭터, 떠돌이 생활 중 한쪽 눈까지 잃는 역경을 이겨내고 성간 상인으로 성공한 캐릭터... 벌써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만들어졌죠. 아직 세션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죠!


그러나 트래블러의 방식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흔히 말하는 단편을 위한 캐릭터를 만들기엔 품이 너무 많이 들어가죠. 세션 한 번에 그만큼의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세션 도중에 캐릭터가 갑자기 이탈한다면, 다른 팀원들은 그 긴 긴 여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조금 전까지 제국 함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제 새 캐릭터의 공무원 시험 결과를 봐야 한다고요? 사양하고 싶습니다.


추가 규칙을 담은 서플먼트, 트래블러 컴패니언에서는 간소화된 여행자 만들기 방법을 제공합니다만... 저는 그 내용도 코어 룰북 안에 포함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래봤자 하나 늘어나서 선택지 두 개가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것도 (앞서 언급된 여러 이유로) 꽤 필수적인 선택지를 말이죠.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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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구스의 룰북 쪼개팔기와 괴랄한 가격 정책에 분노하는 사람들


금까지 트래블러 캐릭터 만들기 과정의 좋았던 점과 우려점을 꼽아봤습니다. 글 마지막에 부정적인 의견이 들어가긴 했지만, 당시에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혹시 저처럼 본 세션에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계신다면, 캐릭터 메이킹만이라도 해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날이 매우 따뜻해졌습니다. 슬슬 덥기까지 하네요. 더 늦기 전에 꽃구경 하시면서, 밤에는 별을 보며 우주여행 계획을 세워보시는 게 어떨까요? 물론 외계 행성에서 꽃구경까지 하면 금상첨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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