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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축구를 거쳐간 일본인 선수들 3편

아시아 쿼터 제도가 시행된 2009년 이후, K리그에서 일본인 선수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2부 제도가 신설되기 이전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이른바 K리그 BC 시대의 일본인 선수들을 조명해 보려 합니다.




1. 다카하라 나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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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수원 삼성은 우라와 레즈의 스트라이커 다카하라 나오히로를 영입합니다.
6개월 임대를 추진했으나, 우라와 측에서 연봉 보조를 해주며 결과적으로는 완전 이적.
당초 최대 라이벌인 FC 서울에서 영입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에, 수원 삼성행은 상당히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특히나 일본 국가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출신이었던데다, 분데스리가 경력까지 있는 유명 선수였으니까요.


익히 알려져 있듯, 다카하라 나오히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일본의 대형 스트라이커였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2006년 독일 월드컵 등에서 활약하며 동세대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죠.
A매치 57경기 23골로 현재까지도 일본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 랭킹 10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하기도 했으나, 수원 삼성 입단 직전에는 우라와 레즈에서 사실상 전력외 선수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우라와에서 워낙 경기를 뛰지 못하다보니 실전 감각에 대한 의구심이 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원 삼성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윤성효 감독은 주빌로 이와타 시절 다카하라의 기량을 잘 알고 있기에 영입했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실제로 그걸 보여준 경기가 바로 슈퍼매치였습니다.
2010년 8월 2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19라운드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다카하라는 멀티골을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하필 이적 당시 영입 경쟁을 펼치기도 했던 숙명의 라이벌을 상대로 넣은 골이었기에, 수원 삼성 팬들에게는 더욱 달콤한 승리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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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라는 2010년 시즌 12경기에서 4골을 기록한 뒤, 2011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시미즈 에스펄스, 도쿄 베르디, SC 사가미하라 등의 팀을 거친 후, 2016년에는 자신이 직접 팀을 창설하기에 이릅니다.
오키나와를 연고지로 한 오키나와 SV라는 팀을 만들어, 대표 겸 선수로 현재까지도 뛰고 있습니다.
2019년까지는 감독까지 겸임했으나, 지난해부터는 친구인 야마모토 히로마사에게 감독직을 양보했네요.


오키나와 SV는 아직 5부리그 격인 큐슈 축구리그 소속이지만, J리그 합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1979년생, 한국 나이로 43살인 다카하라가 과연 언제까지 현역으로 남을 수 있을지도 궁금해지는 부분이네요.




2. 바바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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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대전 시티즌은 바바 유타의 영입을 발표합니다.
바바 유타는 FC 도쿄 유스 출신 중 처음으로 도쿄와 프로 계약을 맺은 유망주였습니다.
일본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도쿄에서도 꾸준한 기회를 얻으며 20대 초반에 이미 J리그 1에서 100경기 넘게 뛴 선수였죠.


하지만 무릎 반월판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며 잦은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2007년 도쿄를 떠난 후 마땅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2009년 도쿄 베르디에서 방출된 이후 1년 반 가량 무적 선수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분데스리가 2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계약에는 이르지 못했던 무렵.
대전 유상철 감독에게 전화로 연락을 받은 뒤 대전 시티즌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유상철 감독은 FC 도쿄 시절의 모습을 기억한다며 직접 바바 유타를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6개월 계약에 이르게 됩니다.
2011년 바바는 리그 6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며 짧은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정확한 패스 능력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2년 재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후 2012년 리그 30경기에 나서며 4골 2도움을 기록, 팀의 주축 미드필더로 올라서게 됩니다.
후방에서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면서도 정확한 패스 연결을 보여주며 대전 공격을 이끌었던 시즌.


하지만 2013년, 자신을 한국으로 이끈 유상철 감독이 사실상 경질당한 데 이어, 신임 김인완 감독과의 불화가 불거지게 됩니다.
당시 김인완 감독은 선수단 통제에 실패하며 정성훈과 바바가 팀을 이탈하기까지 했고, 결과적으로 두 선수 모두 시즌 도중 계약을 해지하며 팀을 떠나게 됩니다.
2013년 바바는 대전에서 전반기 리그 7경기 출장에 그쳤고, 이후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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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 팬들에게는 팀의 자줏빛 유니폼과 꼭 닮은 붉은 머리의 선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상철 감독과의 인연이 선수 본인에게도 특별했기에, 유상철 감독의 별세 이후 언론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추모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친정 FC 도쿄의 유스 코치를 거쳐, LUPINUS라는 이름의 축구 교실을 차려 지도자로 활동 중입니다.




3. 시마다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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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소개한 오하시 마사히로에 이어, 강원 FC가 두번째로 영입한 일본인 선수가 시마다 유스케입니다.
일본에서는 주로 J리그 2 무대에서 뛰어온 베테랑이었습니다.
오미야 아르디쟈와 자스파구사츠 군마 등의 팀에서 활약했으며, 2006년에는 J리그 2에서 최다 도움자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2012년 시즌을 앞두고 도쿠시마 보르티스에서 강원 FC로 이적하며 1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강원 FC에서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해서 맡았습니다.
종종 보여주는 날카로운 패스가 인상적이었으나, 후반기에 들어서는 일본 선수들의 고질적 문제인 피지컬과 체력의 한계로 인해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시즌 초반 성남을 상대로 멋진 프리킥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그것이 K리그에서 넣은 유일한 골.
시즌 최종 성적은 리그 23경기 1골 2도움이었습니다.


2012년 강원은 첫 강등제가 시행된 시즌, 아래에서 3번째인 14위로 겨우 생존했습니다.
팀 개편이 필수적인 상황이었다보니 마땅한 활약을 내지 못한 시마다 또한 재계약에 실패.
이후 시마다는 현역 은퇴를 발표하며 강원 FC에서의 시즌이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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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J리그 해설가를 거쳐 뇌병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7인제 축구 일본 국가대표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친정팀 오미야 아르디쟈에서 U15팀 감독으로 재임 중이네요.




4. 이에나가 아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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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소개한 대부분의 일본 선수들은 프로 커리어의 마지막에 이르러 한국에 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독특하게도 이 선수, 이에나가 아키히로는 한창 때 한국에 왔다가, 한국을 떠난 뒤 커리어가 순탄하게 풀린 케이스입니다.
2012년 울산 현대가 라리가의 마요르카로부터 1년 임대로 영입하며 한국 땅을 밟게 됩니다.
당시 등록명은 스페인에서 쓰던 것과 같은 아키.


아키는 감바 오사카 유스 출신으로, 일찍부터 그 재능을 주목받았던 유망주였습니다.
당시 혼다 케이스케와 더불어 감바 오사카의 양대 기대주였고, 고등학교 시절 프로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감바 오사카의 미드필드는 엔도 야스히토, 후타가와 타카히로, 묘진 토모카즈 등 쟁쟁한 선배들이 가득했기에, 오이타 트리니타, 세레소 오사카 등으로 임대를 떠나게 됩니다.
아키는 2010년 세레소 오사카에서 카가와 신지, 이누이 타카시, 키요타케 히로시 등의 동세대 미드필더들과 함께 대활약에 성공했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스페인 라리가 마요르카 진출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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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요르카 입단 첫 시즌 14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로테이션 자원 정도의 출전시간을 확보했던 것과는 달리, 두번째 시즌에는 전반기 내내 단 4경기에 그치며 사실상 전력외 선수가 됩니다.
이 상황에서 울산 현대가 손을 내밀었고, 임대로 K리그에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일찍부터 재능을 보이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뛰었고, 스페인 라리가에서 뛰던 선수가 합류했으니만큼 울산과 팬들의 기대는 상당히 컸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키의 울산 임대는 선수와 팀에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키는 시즌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팀에 제대로 섞여들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리그 12경기에서 1골 1도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당시 울산 현대는 김호곤 감독의 지휘 하에 탄탄한 수비와 롱볼을 이용한 한방을 노리는 철퇴축구의 팀이었기에, 패싱 게임에서 강점을 가지는 아키의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아키는 시즌 도중 친정팀 감바 오사카로 재임대되며 울산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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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키는 2014년 스페인을 떠나 일본으로 복귀합니다.
오미야 아르디쟈에서 폼을 되찾은 후, 카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했고, 카와사키에서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J리그를 지배하는 강팀의 자리에 올라선 카와사키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잡았고, 2018년에는 J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MVP를 수상하며 일본 최고의 선수 자리에 오르기까지.
카와사키 입단 이후 현재까지 일본 내에서 들 수 있는 우승컵은 죄다 들어봤을만큼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미미한 활약에 그쳤던 울산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네요.




5. 에스쿠데로 세르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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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FC 서울은 우라와 레즈로부터 6개월 임대로 에스쿠데로 세르히오를 영입합니다.
당시 데얀과 몰리나, 아디까지 3명의 확실한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고 있던 서울은 화룡점정을 찍을 아시아 쿼터 선수로 에스쿠데로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에스쿠데로는 그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며 아시아 쿼터로 영입된 일본인 선수 중 최초의 성공 사례를 쓰게 됩니다.


에스쿠데로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순수 일본인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인 세르히오 에스쿠데로는 우라와 레즈 2군에서 뛰다 은퇴한 뒤 유스팀 코치로 일했던 바 있는데, 이때 에스쿠데로 또한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이후 아버지의 뒤를 따라 우라와 레즈 유스팀을 거쳐 우라와에 입단했고, 2007년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며 일본 올림픽 대표팀에도 승선하게 됩니다.
우라와에서 꾸준히 뛰며 준주전급 성적을 기록하다, 허벅지 부상의 여파로 2012년 전반기를 날린 뒤 서울로 임대를 오게 됩니다.



입단 초기 몸이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듯한 모습에 팬들의 우려가 있었으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뽑아내며 우려를 불식시켰습니다.
측면에서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뛰어주며 서울 공격의 첨병이 되었고, 시즌 도중 합류했음에도 2012년 리그 20경기에서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서울은 에스쿠데로의 활약을 높이 사 완전 영입하게 되었고, 에스쿠데로는 이후 2시즌 동안 리그 66경기에서 10골 11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습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에스쿠데로는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쑨톈으로 이적하며 서울에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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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쑤에서 한시즌을 보낸 뒤 교토 상가에 입단한 에스쿠데로는, 2018년 후반기 6개월 임대로 울산 현대에 합류하며 다시 한국 무대를 밟기도 했습니다.
교토에서 한시즌 반 동안 득점을 하지 못하다 울산에서 멀티골을 뽑아낸 뒤 라커룸에서 펑펑 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반시즌 동안 14경기에서 3골 1도움을 기록했고, 울산 시절까지 합쳐서 K리그 통산 100경기에서 17골 15도움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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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후 에스쿠데로의 삶은 다소 순탄치 않습니다.
2019년 교토 상가 FC에서 성매매 관련 논란이 터지며 구설수에 올랐고, 이후 토치기 SC로 이적합니다.
하지만 토치기에서는 2020년 내내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는 부진에 시달렸고, 시즌 종료 후 질서 및 풍기 문란이라는 명목으로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일본을 떠나 현재는 태국의 치앙마이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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